일·가정 양립 정책 더 고민해야
낮은 출산율 이미 공감대 충분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2015년 기준 1.24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정부는 심각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고 막대한 예산을 들여 각종 정책을 쏟아냈지만 출산율은 높아질 기미가 없다. 우리나라 출산 정책의 문제는 무엇일까.

여성이 출산을 결정하기까지는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다고 한다. 경제적 성장을 이룩한 선진국에서 여성이 출산을 꺼리는 주요 원인은 성 불평등에 있다. 오늘날 OECD 국가 대부분은 여성해방을 통해 양성평등 가치관이 확립된 근대화사회로 출산과 자녀 양육을 결정할 수 있는 사회의 규범적, 행위적 구조가 변화되어야 함을 제안한다.

선진국의 심각한 저출산 문제는 개인중심적 사회제도 안에서의 높은 양성평등수준과 가족중심적 제도 안에서의 지속적인 성 불평등 간의 갈등 또는 불일치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가정과 사회에서의 성 평등이 출산율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사회적 성 평등과 일·가정 양립지원 정책은 직접적으로 출산율에 영향을 주지 않더라도 여성의 출산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많은 연구결과를 통해 드러났다.

최근 낮은 출산율로 고민하다가 높은 출산율을 회복한 나라들은 이러한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여성이 차별받지 않고 사회구성원으로 존중받는 사회를 만드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출산정책을 폈다. 즉, 육아를 위한 연금정책, 공공기관의 여성할당제나 여성친화적 대중 캠페인들이 출산율과 정비례한다. 여성이 육아의 짐을 모두 지지 않아도 된다는 캠페인을 하는 것만으로도 여성들은 심리적 안정감을 느껴 출산율은 높아진다고 한다.

반면 행정자치부가 출산장려 정책의 하나로 발표한 지역별 가임기 여성의 수치를 시각화한 지도는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켰다. 대한민국 출산지도는 국민이 출산 통계와 출산 지원 서비스를 쉽게 찾도록 만든 웹사이트다. 이 웹사이트는 가임기 여성의 숫자를 지도로 시각화해 시민에게 잘 볼 수 있도록 해 논란을 빚었다. 이 지도를 두고 '여성을 가축 취급한다', '저출산의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결국 공개 당일 사이트는 폐쇄됐다.

문제는 출산율을 올린다는 이유로 일반 국민에게 가임기 여성 숫자를 보기 쉽게 만들어 내놓은 점이다. 이에 더해 지역별로 순위까지 매겨 공개했다. 행자부는 이 사이트의 목적을 "대한민국 출산지도를 통해 저출산 극복의 국민적 공감대를 높이기 위해"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출산율이 낮다는 것은 이미 국민적 공감대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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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자부가 말하는 공감대는 결국 '이만큼 여성들이 많이 있는데 출산율이 낮다'는 인식의 확산이다. 수만 명의 가임기 여성이 있으니 마음껏 비난해 달라고 말하는 것이다. 아이를 낳지 않는 여성을 비난의 대상으로 삼아 여성의 신체, 국민의 인식을 교묘히 통제하려 든다. 출산 후 경력단절, 낮은 가사 분담률, 현실에 맞지 않는 출산 정책 등 대한민국은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는 좋은 사회가 아니다. 정부는 이런 문제를 해결할 대안도 없이 여성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출산율을 회복한 선진국들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듯, 국가는 이제 여성을 한 개인으로서 존중받는 자아로 인정하고, 현실적인 일·가정 양립지원 정책을 고민해야만 한다. 성 평등 없이는 출산율 회복도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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