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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사 대접 제대로 해야 상생 가능"

[우리가 주인이다]대·중소기업 상생협력 머나먼 길
조선·자동차·항공산업 등 납품단가 조정 매해 반복
외국기업 대부분 다년계약 고위기술력 확보에 협력
수직관계 수평적으로 개선해야

이시우 기자 hbjunsa@idomin.com 2017년 01월 26일 목요일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창원지역 중견 조선·해양기자재(부품)업체의 사내 하청사 대표였던 김모(60) 씨 손을 들어줬다. 원청사가 법이 정한 기준을 넘어선 부당 거래행위를 했다며 재발방지 명령과 함께 감액대금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약 5년간 외로운 싸움 끝에 재판으로 치면 승소한 셈이지만 김 전 대표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이 원청사로부터 일감을 받지 못해 공장을 떠난 지 오래고, 지금은 조그만 가게를 운영한다. 공정위와 법원 등을 오가며 몸과 마음은 피폐해졌다.

공정위 의결서 주요 내용을 보면 이 원청사는 2015년 3월 한 하도급업체에 대금을 지급하면서 145개 품목의 납품단가를 7∼10% 일방적으로 깎았으며, 그 이전인 2012년 2월에는 또 다른 하도급(사내 하청)업체 납품단가를 0.7∼37%까지 일방적으로 깎아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4조 1항을 어겼다며 재발방지 명령을 내렸다. 그뿐만 아니라 이 원청사는 2012년 7월부터 2015년 7월까지 선박 기자재 제작을 3개 사내하청업체에 위탁하면서 각종 검사 제도를 도입해 검사 인력 인건비의 일부인 3950만 원을 정당한 사유없이 하도급 대금에서 깎고서 지급했다며 감액대금(지연이자 포함)을 해당 하청업체들에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기사 내용과 달리 대·중소기업이 상생 협력을 보여주는 사례도 있다. 사진은 지난달 22일 창원 한화디펜스 본사에서 열린 '2017년 협력사 경영설명회' 모습. 한화디펜스 신현우 대표이사와 협력사 대표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화디펜스

김 전 대표는 "원청사가 사내 하청업체 하나 죽이는 것은 일도 아니다. 조선해양산업 경기 침체로 대기업이 3∼5% 정도 납품 대금을 깎으면 원청사는 한 술 더 떠 10∼20% 이상을 깎는다. 재계약을 생각하면 제대로 말도 못한다"며 "현실이 이런데 한국에서 대-중소기업 상생 협력이라? 꿈 같은 소리"라며 혀를 찼다.

◇우리나라는 = 완성품을 만드는 대기업을 정점으로 한 원-하청업체 간 수직적인 분업 구조의 폐해는 한국 자동차산업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한국의 대표 완성차업체인 현대기아차그룹은 판매량(금액) 기준으로 2015년 세계 5위다. 하지만, 이 산업의 근간인 자동차부품사 상황은 다르다. 같은 해 기준 세계 100대 자동차부품업체 중 한국 기업은 단 4개사였다. 세계 6위 자동차부품사인 현대모비스는 현대기아차 순정부품 생산업체로 공장은 창원에 단 한 곳이 있으며 나머지는 국내외 납품업체 부품에 현대 마크를 단 OEM 방식 전문업체다. 그나마 만도㈜(45위)를 제외하면 100대 사 중 나머지 한국업체 세 곳(현대모비스·현대파워텍(50위)·현대다이모스(65위))은 현대기아차그룹 계열사다.

◇외국 사례는 = 이와 달리 세계 100대 자동차부품사 중 29개사로 가장 많은 일본은 일부 도요타 계열사를 제외하면 대부분 독자 브랜드 부품 전문업체다. 일본 다음으로 25개사로 많은 미국 업체들도 존슨 컨트롤즈나 델파이처럼 독자 브랜드 부품 전문사이다. 100대 자동차부품사 중 18개사, 세계 10대 부품사 안에는 3개사(Robert Bosch GmbH·Continental AG·ZF Friedrichshafen AG)로 가장 많은 업체를 가진 독일도 상황은 같다. 대기업 중심으로 단기간 성장을 이룬 한국 자동차산업의 이면이자 해마다 이어지는 납품 단가 조정 등으로 부품업체가 독자 브랜드를 지니고 세계적인 업체로 성장할 수 있는 토양 자체가 척박함을 방증한다.

◇경남은 = 경남의 미래 먹을거리로 상당한 관심을 받는 항공산업도 처지는 비슷했다. 국내 유일 완제기 생산업체인 한국항공우주산업(이하 KAI)과 납품업체 간 관계가 수평적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현장 목소리가 더 크다. 도내 한 항공산업 업체 관계자는 "KAI가 글로벌 완제기 생산업체로부터 수주를 할 때 협력사와 논의 없이 자체 견적을 낸다. 수주 단계부터 협력사와 사전 논의하며 견적을 내야 단가 경쟁에서 앞설 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며 "세계 항공시장에서 한국 점유율은 겨우 1%다. 99% 시장이 남아 있다. 1%를 두고 국내에서 물량싸움을 시킬 게 아니라 중소기업인 납품업체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그러려면 납품업체가 직접 국외 수주를 해도 KAI가 기존 물량을 안 줄여야 하는데, 쉽지 않다. 국내 조립업체, 부품·부분품 생산업체가 국제 경쟁력을 갖추면 장기적으로 KAI도 이득을 본다는 점을 알았으면 한다"며 협력사에 대한 태도 변화가 필요함을 시사했다.

◇단가 후려치기 고질병 = 대·중소기업 상생 협력을 논하기 이전에 납품 단가 후려치기로 단기 가격경쟁력 제고에만 의존한 대기업 관행부터 전면 수술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부품 국산화와 기술력 향상에 따른 가격 경쟁력 제고, 고위기술력 확보를 위해서도 대기업의 달라진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엄진엽 경남지방중소기업청장은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법과 동반성장위원회 등 각종 법·제도가 있지만 최우선 과제는 대기업 자세 변화다. 경남 중소기업 현장을 제법 돌아봤는데, 거의 모든 산업의 대기업이 해마다 납품 단가를 조정한다. 해마다 이런 식이면 납품업체가 어떻게 고위 기술을 지닌 업체로 성장하겠는가"라고 비판했다.

이어 엄 청장은 "외국 기업은 기술력과 생산 능력이 검증되면 원-하청(납품)업체 간 대부분 다년 계약을 맺는다. 7년을 기준으로 1·2년차에는 단가 조정을 하지 않고, 기술력·생산 노하우 향상을 고려해 3∼6년차에 매년 2.5%씩 단가를 인하한다. 마지막 해 혹은 6·7년차에는 단가 조정을 하지 않아 7년간 최대 7.5∼10%를 깎는 식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매년 정기적인 단가 인하는 기본이고, 원청사 노조가 임금을 올리면 그해 그만큼 협력사 단가에 반영하지 않느냐"며 "협력사면 협력사로서 대접해줘야 한다. 요즘 기술력 좋은 중소기업을 가면 되도록 국내 대기업 거치지 말고 국외 직접 수출을 권유한다. 국내 기업문화가 워낙 척박하니 말이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대표 지원 기관이자 중소기업 현장 목소리를 경남에서 가장 많이 듣는 기관장의 이 말은 2017년 한국과 경남의 대·중소기업 상생 협력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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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우 기자

    • 이시우 기자
  • 직전 자치행정1부(정치부) 도의회.정당 담당 기자로 일하다가 최근 경제부 (옛 창원지역) 대기업/창원상의/중소기업청 경남지역본부/한국산업단지공단 경남지역본부 등을 맡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