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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유산·지리산이 끌어안은 땅, 그곳에서 사람이 피었네

[경남의 산] (3) 함양
큰 산줄기 뻗어나간 자리에서 우뚝 솟아난 백암산과 무이산
남덕유산서 흘러나온 황석산, 선비의 고장 빚어낸 '명산'들

이서후 기자 who@idomin.com 2017년 01월 20일 금요일

함양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고장이다. 무려 78%가 산지다. 남쪽에서는 지리산이, 북쪽에서는 덕유산이 줄기를 뻗쳐 감쌌다. 그것도 대부분 험한 바위산이라 농사지을 땅이 적다. 함양지역 물가가 은근히 비싼 이유다. 사람이 먹고살고자 기댈 땅은 부족해도 산 골짜기와 계곡 곳곳에는 정자와 누각 같은 유교 문화재가 많다. 김종직, 유호인, 정여창, 박지원 등 출중한 조선의 선비가 많았던 고장이어서다.

◇함양 진산 백암산

고산자 김정호가 만든 <대동여지도>(1861)를 보면 백두대간의 덕유산에서 뻗어나 온 줄기가 봉황봉에서 한 번 크게 용을 쓰고 남쪽으로 뻗어내려 간다. 봉황봉은 지금의 남덕유산(1507m)이다. 남덕유를 지난 줄기는 영취산(1075m)을 지나 지금의 함양군 서상면 백운산(1279m)에서 지리산 줄기와 만난다. 백운산에서 동쪽으로 줄기가 하나 뻗어나가는데, 요즘 지도를 보면 서래봉(1076m), 대봉산 천왕봉(1246m)으로 이어지는 산맥이다. 이 줄기의 중간쯤, 지금 이름으로 도숭산(1041m)에서 다시 작은 줄기가 남북으로 뻗어나간다. 남으로 향해 제법 길게 뻗어 내린 산맥은 옛 함양의 진산, 백암산(621m)이 된다. 옛 함양은 지금의 안의면, 서하면, 서상면을 뺀 지역이었다. 함양의 읍치(邑治·수령이 거주하는 고을의 중심)는 백암산 아래, 지금의 함양읍 상리 주변이다.

함양의 진산 백암산./유은상 기자

<1872년 지방지도>, <광여도>, <해동지도> 등 대부분 옛 지도는 함양 고을에서 백운산을 가장 크게 그려 놓았다. 이름 그대로 백운(白雲) 즉, 흰 구름 산이다. 산 정상에 항상 흰 구름이 걸려 있대서 얻은 이름이다. 전국에 백운산이 30좌가 넘는다는데, 덕유산 줄기에서 뻗어나온 함양 서상면 백운산이 가장 높다고 한다. 남쪽으로는 지리산이 다 보이고, 북쪽으로는 덕유산이 훤히 보이니 그 기백이 남다르다. 함양 읍치를 둘러싼 산은 모두 백운산에서 뻗어나온 줄기다. 함양 고을의 진산 백암산은 산 중턱에 흰 바위가 있어 얻은 이름이다. 함양읍에서 백암산을 바라보면 오른쪽으로 바위를 망토처럼 두르고 솟은 모양새가 우뚝하니, 과연 한 고을의 진산이겠구나 싶다. 지금도 함양 사람은 백암산 정상에서 새해 일출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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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의 진산 무이산

조선시대 지도에 나오는 안의는 지금의 함양군 안의면, 서하면, 서상면과 거창군 마리면, 위천면, 북상면을 포함하고 있다. 거창, 함양과 분명히 구분되는 독자적인 행정구역이었다. 안의의 원래 이름은 안음이었다. 영조 43년(1767년) 당시 산음 고을에서 7살 된 아이가 아기를 낳았는데, 왕이 이를 불길하게 보고 산음을 산청으로 고치라고 명한다. 이때 옆 고을 안음도 같은 음(陰)자를 쓴다고 해서 안의로 바꾸라 했다. 지명이 안의냐 안음이냐는 조선시대 지도 작성 연대를 추정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안의 고을의 진산은 진성산(鎭城山)이다. <대동여지도>를 보면 앞서 말한 도숭산에서 북쪽으로 뻗어나간 줄기가 도착하는 곳이다. 현대 지도에서는 산맥이 북쪽이 아니라 거의 동쪽으로 향하고 있다. 진성산은 성산(城山)이라고도 했는데, 성이 있는 산이라는 뜻이다. 현대 지도에서는 안의면 월림리에 있는 무이산(475m)이 옛 진성산이다. 중국에 있는 천하절경 무이산(武夷山)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라는데, 그곳과 비교를 할 만큼 산세가 빼어난 것 같지는 않다. 안의 고을의 읍치는 무이산 아래 안의면 금천리와 당면리 주변으로 지금도 면사무소가 있다.

안의의 진산 무이산./유은상 기자

안의 고을의 진산은 현재 주민에게 거의 잊힌 산이다. 젊은이도 나이 든 이도 무이산이나 성산, 진성산을 물어보면 모두 처음 들어본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히려 무이산 자체를 산 반대편에 있는 월림마을의 산으로 생각하는 이도 있었다.

◇황석산과 안의 고을 사람들

안의 고을의 향교는 진산인 진성산이 아니라, 강 건너 황석산(1190m) 아래에 있다. 덕유산과 지리산 모두에 지맥이 연결된 백암산이나 진성산과는 달리 황석산은 남덕유산에서 독자적으로 뻗어나온 줄기의 끝이다. 함양지역 산세를 오래 살펴온 박갑동 지관은 안의 고을의 주산을 이 황석산으로 본다. 무이산 쪽에서 바라보면 황석산은 화려한 돌산이다. 풍수에서 말하는 화산(火山)이다. 산봉우리가 뾰족하고 멀리서 보면 마치 타는 불꽃처럼 생긴 산을 뜻한다. 실제 황석산 산줄기는 마치 활활 타는 모닥불 같다. 아름다운 화산에서는 뛰어난 문장가나 예술가가 많이 나온다고 한다.

박 지관은 함양에 인물이 많은 것은 이런 황석산의 산세와 안의 주민의 성품에 기댄 바가 크다고 말한다. 화산 아래 사는 이들은 거칠고도 솔직담백하다. 안의 사람의 성격도 대체로 화통해서 이와 통한다. 조선 전기 인문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은 당시 안의 사람을 두고 '강하고 사나우며 다투기를 좋아한다'고 적었다. 이런 기질을 잘 다스려 사람들을 교화해 낸 이가 일두 정여창(1459~1504)이다. 조선 후기 편찬한 <여지도서>에는 '정여창이 고을의 원을 지내고 나서, 유현이 배출되어 풍속이 크게 변했다'는 기록이 있다. 실천유학자로 불리는 정여창은 실제 안음현감을 지내는 5년 동안 고을 백성을 위해 부역을 줄이고, 노인에게 봄가을에 잔치를 베풀었으며, 똑똑한 아이를 모아 손수 글을 가르쳤다. 정여창이 정한 고을을 다스리는 규칙은 이후 80년 동안 지켜졌다고 한다. 그로부터 함양에서 인물이 나도 주로 옛 안의 지역에서 많이 난다는 게 박 지관의 설명이다. 그는 '안의 송장 하나가 거창 사람 열을 당해낸다'는 옛말을 소개했다. 안의 지역 인물이 그만큼 유달리 출중하다는 뜻이다.

※참고 문헌

<함양군사>(함양군사편찬위원회 2012)

<조선선비들의 답사일번지>(경상대 출판부 최석기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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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후 기자

    • 이서후 기자
  • 문화체육부에서 문학/영화/연극/출판 등을 맡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