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논란 끝에 시행…청렴사회 위해 성장통도 필요

공정하고 투명한 사회를 만들려고 만든 부정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이 10여 년간의 논란 끝에 완성돼 시행에 들어간 지 100일이 지났다. 국민은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행정연구원 설문조사 결과 성인 남녀 3562명 중 85.1%가 청탁금지법을 잘 도입했다고 평가했다. 연착륙했다고 할 수 있겠다. 이 법이 좀 더 일찍 제정됐더라면 권력 주변 비선실세들의 국정농단도 막았을 것이란 아쉬움도 없지 않다.

국민권익위원회의 전신인 부패방지위원회 시절부터 무려 7년 동안 이 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밤낮 홍보했던 기억이 새롭다. 누구나 대가성 유무를 불문하고 직무 관련자에게 금품을 수수하거나 부정한 청탁을 하면 처벌받는다는 내용이 핵심 홍보메시지였다.

이런 요지의 청탁금지법 시행은 생활에 큰 변화를 주고 있다. 우선 저녁 술자리 약속 감소다. 음주나 식사 대신 공개된 사무공간에서 차 한잔으로 대체하고 퇴근 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거나 취미생활과 문화생활을 하는, '저녁이 있는 삶'으로 바뀌고 있다. 또 병원과 학교마당에는 '마음만 받겠습니다'란 문구와 함께 촌지나 사례물품을 정중히 사양하는 규정들이 흔히 보인다. 식당가에서는 음식값 각자 내기가 많아졌고, 대학가에서는 학생들이 돈을 모아 교수에게 선물을 주고 고급식당에서 음식을 대접하던 관례를 없애고 다과회로 많이 바뀌었다. 갑질행세하는 끗발 센 기관들의 협찬 구걸 행태는 거의 사라진 것 같다. 대신 행사비용을 기관별로 공동부담하는 사례도 부쩍 늘었다.

꼼수도 꽤 등장했다. 승진이나 영전한 공직자들은 직무 관련자들로부터 화환이 들어오면 남들이 보기 전에 보낸 이의 이름표를 잽싸게 떼어내 버린다고 한다. 아예 들어온 화환의 모든 이름표를 제거하는 공직자도 많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식사약속이나 업무청탁 문자를 주고받을 때 직책을 표기하지 않고 '형님' '언니' 등의 친척 호칭을 쓴다.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국민권익위에 접수된 청탁금지와 금품수수 금지 위반 건수는 100여 건에 이른다. 법을 위반한 경우도 있지만 음해성도 있고 경쟁관계에 있는 사업자나 업체가 상대방을 골탕먹이려고 신고한 사례도 있다고 한다. 권익위가 상시 운영하는 부패공익신고센터(전화 1398)에는 연간 4000여 건이 접수된다. 이에 비하면 청탁금지법 위반 신고는 시행 초기에 많이 몰릴 것이라던 예상보다는 매우 적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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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긍정적인 평가 속에서도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지적은 해결해야 할 숙제다. 특히 선물수요 감소에 따라 한우·화훼 등 농수축산물의 소비 위축이 걱정이다. 법 제정취지에 적절한 해석을 통해 좀 더 구체적으로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금품 수수가액기준을 상향 조정할 것을 검토해보자고 했으니 결과가 주목된다.

어쨌든 청탁금지법은 한동안 적용을 놓고 논란이 일 전망이다. 40~50년간 초고속 압축성장 산업화를 지속하는 동안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을 구분 못 하는 관행적 부패를 양산해 왔는데 이를 하루아침에 법으로 걷어내자니 어려움이 큰 것이다. 청탁금지법은 핀란드 덴마크 등 북유럽 수준의 청렴 선진국으로 성장하기 위해 청소년이 어른이 될 때 겪어야 하는 성장통과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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