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대국민 사과문, 연설문 유출과정 등 해명없어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 운영에 최순실 씨가 개입했음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하지만 누가 연설문을 유출했는지 등 국정 농단에 대한 국민의 궁금증을 풀어주지 않아 의구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박 대통령은 25일 오전부터 청와대를 향한 전국 주요 언론과 인터넷 매체, 누리꾼의 해명 요구가 빗발치자 오후 4시 긴급 사과문을 발표했다.
박 대통령은 먼저 "일부 언론보도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제 입장을 진솔하게 말씀 드리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고 말문을 열었다.
박 대통령은 최순실 씨를 두고 "과거에 제가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 준 인연이 있다"고 소개했다. 박 대통령은 "최순실 씨는 지난 대선 때 주로 연설이나 홍보 등 분야에서 선거운동이 국민에게 어떻게 전달됐는지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이나 소감을 전달해주는 역할을 했다"면서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물도 같은 맥락에서 표현 등에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이런 도움은 JTBC 보도대로 취임 이후에도 계속됐음을 인정했다.
박 대통령은 "취임 후에도 일정 기간은 일부 자료에 대해 의견을 물은 적이 있으나 청와대 보좌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좀 더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맘으로 한 일인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치고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 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과 드린다"고 말한 뒤 고개를 숙였다.
박 대통령의 이 같은 사과에도 최순실 국정 농단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많은 국민은 이번 사과가 순수한 마음에서 이뤄졌는지에 의문을 품고 있다.
이날 긴급 대국민 사과문 발표는 JTBC 보도 이후 만 하루 가까이 지난 시점에서 나왔다. 사과 방송도 생중계가 아닌 녹화 화면에 지나지 않았다. 200자 원고지 2.3매 분량에 불과한 내용에 발표 시간도 채 2분이 되지 않았다. 사전 녹화로 이뤄져 기자들의 질의도 없었다.
박 대통령 스스로 국정운영의 비선 개입을 인정했음에도 그 개입의 폭과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특히 연설문 유출 최종 지시자가 누구이고, 어떤 인물을 통해 전달됐는지 그리고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할지 등 꼭 밝혀져야 할 사안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이번 '국정 농단' 관련 사안이 밝혀지게 된 계기인 미르·K스포츠재단에 대한 국민적인 의혹 규명 요구를 어떻게 받아 안을 것인지에 대한 생각도 밝히지 않았다.
이 탓에 대국민 사과 이후에도 정치권과 시민사회, 나아가 일반 국민에 이르기까지 이번 국정 농단 의혹 사건의 박 대통령 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더욱 확산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김두천 기자 kdc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