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금강미술관 '명품 판화' 전시 복제품 논란

"와~! 교과서에서 보던 이중섭 작가의 '소'다."

창원 금강미술관을 찾은 관람객이 탄성을 지른다.

꼼꼼하게 작품을 살펴보고, 널리 알려진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한다.

'판화로 보는 한국의 거장들'이라는 전시다. 지난 7월 7일부터 오는 14일까지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 작가 등의 작품을 판화 형태로 보여주고 있다.

미술관 측은 이들 작품에 에디션 번호, 관련 미술관 보증 표시까지 있다고 설명했다. 작가가 직접 만든 것은 아니지만, 작가의 저작권을 가진 미술관에서 보증을 하는 사후에 만든 '명품 판화'라고 했다.

그런데 열거한 작가들이 '한국의 거장'들은 맞지만, 전시하는 작품을 과연 '판화'로 볼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해서는 판화가와 관련 협회 측은 '판화가 아니다'라는 분명한 입장이다.

창원 금강미술관 '판화로 보는 한국의 거장들' 전시 모습.

◇판화란 무엇인가 = 판화의 정의는 무엇일까. 사전마다 '나무, 금속, 돌 등의 면에 형상을 그려 판을 만든 다음, 잉크나 물감 등을 칠하여 종이나 천 등에 인쇄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지난 5월 '조영남 대작 사건' 관련 한국현대판화가협회의 성명서를 읽어보면, 판화의 정의를 판화가 아닌 것과 대조해서 적었다. "판화란 작가가 직접 그림을 그리고 판을 만들어 프레스나 손으로 압력을 더하여 잉크를 종이에 찍는 것이다. 이는 원화를 사진을 찍어 디지털이나 옵셋 인쇄로 제작된 복제판화와도 다르다. 복제라는 단어는 원본을 베낀다는 의미다. 판화와 복제는 엄연한 구분이 필요하다"고 쓰여 있다.

◇"복제 판화라고 밝혔어야" = 현재 금강미술관에서 전시되는 판화는 작가의 친필 사인이 있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복제물'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일었다.

미술관 측은 전시품에 대해 거장들이 유화로 만든 작품 원본을 '지클레(giclee)'라는 새로운 판화기법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사진 매체를 통해 찍어낸 것으로, '원본을 판화로 만든 진품'이며 '디지털 판화'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 이번에 전시하고 있는 것이 '고품질 인쇄물이 아니냐'는 지적에, '고품질 인쇄물인 판화'라고 주장한다.

이중섭 '달과 까마귀'

하지만 전문가들은 디지털 복제 인쇄물(고품질 인쇄물)과 판화는 분명하게 다른 것이라고 말한다.

남천우 한국현대판화가협회 부회장은 "유화를 판화로 제작했다는 데서 모순이 생긴다. 지금 전시하는 작가의 유화를 가지기도 어렵고, 전시하기도 어렵다. '지클레'는 표면의 질감을 준 인쇄방식이다. 기본적으로 복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지클레로 작업을 하고자 의도한 게 아니라면, 판화라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창원에서 활동하는 정원식 판화가도 "현재 전시하는 것을 판화로 인정하기 어렵다. 작품 사진을 찍은 것과 뭐가 다르냐"고 반문했다.

김용식 성신여대 판화과 교수는 "이중섭 작가는 판화 제작을 한 적이 없다. 그 시대에 불가능하다. 원작을 가지고 촬영하거나, 베껴서 판화를 제작한다. 복제판화라고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이중섭 '황소'

◇아트숍에서 판매하는 아트상품 = 현재 금강미술관 측이 판화를 구입했다고 밝힌 곳은 서울의 한 유명 갤러리가 운영하는 업체다. 이곳은 홈페이지를 통해 '프린트(Print)'라는 카테고리에 금강미술관에서 전시하는 작품과 동일한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업체 측은 '프린트'는 판화를 뜻한다고 했다. 업체 관계자는 "우리는 '디지털 프린팅 판화'를 판매한다. 작가의 작품을 원화가 아니라 판화로 만든 아트 상품"이라고 전했다. 한정 수량을 찍어서 에디션 넘버도 있다.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 작가의 미술관 측에서도 작가의 작품들이 판화 형태로 찍혔지만, 현재 판매하고 있는 것은 '아트상품'이라고 못 박았다. 실제로 온라인 아트숍을 운영하는 해당 작가 미술관들은 금강미술관에서 전시하는 것과 동일한 것을 판매하고 있다. '미술관 문화상품-옵셋 판화' 등의 이름이 붙어 있다.

박수근 '노상'

◇판화에 대한 잘못된 이해 불러올 것 '우려' = 금강미술관 이성석 관장은 "이번 전시는 미술관의 교육적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기획 전시다. 지역에서 접하기 어려운 대한민국의 거장들의 숨결을 지역민과 공유하기 위해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전시품에 대한 설명이 부족해 좋은 의도였더라도 '잘못된 교육'을 할 수 있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정원철 추계예술대학 판화과 교수는 "작가가 판화로 제작한 게 아니라면 판화라는 이름을 붙이면 안 된다. 판화가들이 노동력이 가미된 작업을 하는데, 일반 대중이 인쇄물과 판화를 구분 못 하게 되는 폐해를 낳는다. 좋은 의도라 하더라도 판화라는 말을 쓰지 말았어야 한다"고 말했다.

남천우 한국현대판화가협회 부회장은 "미술관이 복제 인쇄물을 판화라고 하면서 가치상승을 노렸고, 그것을 보는 대중이 오리지널 판화와 인쇄물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해서 판화가가 인쇄물을 제작하는 작가로 오인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런 개념 때문에 특히 교육적 목적으로 찾은 어린이들이 판화를 잘못 이해할 수 있다. 판화가 인쇄물로 전락하는 게 안타깝다"고 탄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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