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기념일이 많다. 이번 주만 해도 20일은 장애인의날, 21일은 과학의날, 22일은 정보통신의날, 지구의날이다. 달력에 잘 나오지 않지만 23일은 '세계책의날'이다. 책의 날은 스페인의 '세인트 조지 축일'에서 유래한다. 이날은 사랑하는 남녀가 책과 장미꽃을 선물하는 풍속이 있다. 그리고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와 <돈키호테>의 저자 세르반테스가 세상을 떠난 날이기도 하다.

유네스코는 1995년 지구촌 독서 문화 확산을 위해 4월 23일을 세계책의 날로 정하고, 해마다 '세계 책의 수도'를 선정해 발표한다. 우리나라는 인천시가 2015년 세계책의 수도로 지정된 바 있다.

문화대국은 국민이 책을 많이 읽는 나라이다. 우리 선조들은 글 쓰는 일을 소중히 여기고, 책 읽는 것을 권장하였다. 원효대사는 118부 261책을 지었고, 다산 정약용은 650권, 혜강 최한기는 무려 1000권이 넘는 책을 저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책을 쓴 다음에는 많은 사람이 읽을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인쇄술이 발달하였다. 우리가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인쇄술을 사용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 민족이 책을 소중히 여겼던 일화가 있다. 병인양요(1866년) 때 강화도를 침입한 프랑스 군대는 연이은 패배로 철수를 결정하고 약탈을 자행하였다. 그런데 금은보화가 가득할 것이라 여겼던 외규장각에는 책이 수북하였다. 관아 밖 허름해 보이는 초가에서도 서책이 발견되었을 뿐만 아니라, 난을 피해 달아나는 사람들의 보따리에도 책이 있는 것을 보고 놀라워했다고 한다. 세상에 듣기 좋은 것 중의 하나가 책 읽는 소리이다. 자녀가 책을 읽는 소리는 부모에게 가장 듣기 좋은 소리이고, 집집마다 책 읽는 소리가 담을 넘어 나오면 온 동네에 생기가 돌았다. 유교 경전이나 불경을 읽는 데에는 일정한 독법(讀法)이 있어서, 글을 가르치는 스승은 제자의 글 읽는 소리를 듣고 뜻을 제대로 파악하고 읽는지 그냥 소리만 내고 있는지를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요즘 학교 선생님들이 관심을 가지는 수업 방법으로 하브루타가 있다. 유대인의 교육방법인 하브루타는 책을 읽고 짝을 이루어 대화하는 교육법이다. 유대인 가정은 어려서부터 탈무드를 소리 내어 읽고 식탁이나 잠자리에 누워 대화하는 것을 중시한다. 이들에게 좋은 아버지는 자녀에게 책을 읽어주고, '왜?'라는 질문과 함께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이라 한다. 최근 한 일간지는 아버지가 책을 읽어준 아이가 성적도 높고, 정서적 문제도 적다는 조사 결과를 소개하고 있다. 교육 선진국 영국은 '아버지가 매일 책 읽어 주기(Fathers Reading Every Day)' 운동을 펼치고, 오래전부터 북유럽 국가는 가족중심 공간인 거실을 북카페 형식으로 꾸미고 있다.

책읽기는 아이들의 뇌를 자극하여 고차적 사고력과 창의력을 기르는 데 도움을 준다. 책을 읽고 대화하는 것에 익숙해지면 논리적 사고력과 표현력이 발달하게 되고, 타인에 대한 이해력은 물론 자존감이 동반 상승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동안 우리는 성장위주의 정책 속에 인문학을 등한시했다. 인문소양의 결여는 지성과 철학의 빈곤, 문화의 황폐화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이러한 문제를 예방하는 첫 번째 방책은 책읽기이다.

1.jpg
경남교육의 4대 역점과제 가운데 두 번째가 '행복한 책읽기 문화 조성'이다. 지난 주말에는 이동도서관 버스 3대를 준비해 야구경기장을 찾았다. 우천으로 경기는 취소됐지만,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행사는 예정대로 진행하였다. 재미있는 분장을 하고 아이들의 맑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동화를 읽어주는 동안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예나 지금이나 책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친구이자 선물임에 틀림없다. 자녀에게 책 읽어 주는 부모. 일에 지친 이 땅의 아버지들께 지나친 바람일까?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