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복원 후 1호 유지하자 밀양·진주 국보 환원운동 추진
건축분과위, 영남루 승격 부결…문화재위 촉석루 지정 부정적

숭례문(남대문)이 불에 탔다가 복원되고 나서 국보 1호 지위를 유지하자 2013년부터 밀양과 진주에서 영남루와 촉석루를 국보로 환원하자는 운동이 벌어졌다.

2년여가 지나면서 운동 열기가 약간 식었지만 우리나라 3대 누각인 영남루와 촉석루가 동시에 국보로 지정되길 바라는 지역민의 염원은 그대로다. 결론부터 말하면 문화재청 검토 결과 영남루는 부결됐고, 촉석루는 아직도 건축문화재분과위원회에 안건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있다.

◇국보 환원운동 추진 과정 = 촉석루는 고려 고종 26년(1241년)에 건립됐으며 여러 차례 보수와 중건을 거쳐 1948년 국보 276호로 지정됐다. 하지만 한국전쟁 때 폭격을 받아 원형이 완전히 소실됐으며 1956년 국보에서 해제됐다.

소실된 촉석루가 방치되자 지역에서 재건운동이 벌어졌고, 1957년 이승만이 진주를 방문했을 때 재건을 요청한 것을 계기로 1959년 공사를 시작해 1년 만에 완공됐다. 1983년에 지방문화재 자료로 지정됐다. 지방문화재 자료는 지방 지정문화재 중에서 가장 낮은 등급이다.

진주 촉석루

첫 환원운동은 2004년 시작됐지만 당시 문화재청이 '문화재로 지정되려면 적어도 50년은 지나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하면서 추진력을 얻지 못하고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러나 숭례문 복원을 계기로 환원운동이 2013년 다시 시작됐다. '50년' 기준을 맞췄고 촉석루처럼 소실됐다 복원한 숭례문, 보물인 영남루 등과 형평성 차원에서도 환원은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진주시도 문화재청에 국가지정(국보나 보물)으로 승격시켜달라고 요청했다. 경남도 문화재위원회를 통과하면서 기대를 높였고, 문화재청에서 현장 조사까지 마쳤지만 아직도 심의 안건으로 상정되지 못하고 있다.

영남루는 신라 경덕왕 때 창건돼 본루와 좌우에 부속 익루, 층층각을 거느린 조선시대 대표 누각이다. 고려 공민왕 14년에 작은 누각을 철거하고 규모를 크게 개창했다. 현재 건물은 순조 34년(1834년)에 실화로 불타버린 것을 헌종 10년(1844년)에 재건한 것이다.

1948년 국보 245호로 지정됐지만 1962년 문화재보호법이 제정·공포되면서 보물 147호로 격하됐다.

밀양시민이 중심이 돼 국보 환원운동이 시작됐으며 밀양시가 학술조사와 함께 용역에 착수하면서 의욕을 보였다.

경남도는 2014년 5월 국보승격 신청을 했으며, 10월 밀양시는 승격 당위성을 알리는 밀양시민포럼을 열면서 분위기를 돋웠다.

김재경(새누리당·진주 을) 국회의원은 "국보 재지정을 위해 학계와 시민단체가 수년간 노력했지만 문화재청은 재지정 노력보다는 국보 지정 불가 사유만 되풀이하는 실정"이라며 "현 상태에서 재지정이 불가능하다면 '잘못 복원된' 촉석루를 아예 헐어버리고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에 이르렀다.

밀양 영남루

◇현재 상황은 어떤가 = 문화재청은 2014년 11월 20일 제12차 건축문화재분과위원회를 열고 영남루를 '검토사항'에 넣어 정식 안건으로 올렸다.

현지 조사 의견은 3명의 문화재위원 중에서 2명은 지정 가치가 미흡하다, 1명은 지정 가치가 있다고 주장했지만 결국 부결됐다. 밀양시는 3, 4년 뒤에 다시 신청할 예정이다.

촉석루는 지정을 위한 기본 절차를 모두 마친 상태다. 문화재위원회 결정만 남았다. 5, 6월쯤 상정할 예정이다. 하지만 진주시민 바람과는 달리 문화재위원들 사이에서는 부정적인 기류가 흐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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