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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IT·서른 살 야망 뒤로하고 농촌 택한 이유

[청춘은 바로 지금부터] (7) 함양군 운림농원 대표 손영현 김미정 부부

안병명 기자 hyabm@idomin.com 2016년 01월 04일 월요일

백운산 자락 함양군 백전면 동백마을에서 소담스럽게 운림농원을 만드는 손영현(41) 씨는 귀농 10년 차 베테랑 귀농인이다. 누가 봐도 어엿한 전문농업인이 되었고, 농원에서 생산한 가공품도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비정규직 직장생활 청산, 500만 원으로 함양 정착 = 손 씨는 원래 부산사람이고 함양은 외가가 있는 곳이다. 대학교는 진주에서 다녔고, 대학졸업 후 직장생활은 서울에서 했다. 농업을 전공했지만 정보통신계열 동아리 활동을 한 것이 계기가 돼 직장을 IT 계열로 잡았다. 대학시절 농업정보 119라는 봉사활동을 했던 게 계기가 됐다.

청운의 꿈을 안고 과감하게 서울에 직장을 잡았지만, 비정규직에 워낙 집값도 비싸 거처를 인천에 마련했다. 지하철과 버스를 몇 번씩 갈아타고 왕복 4시간 걸려 출퇴근을 했다.

이렇게 열심히 살다 보면 길이 열리겠지 했다. 비록 비정규직일지라도 열심히만 하면 언젠가 정규직이 되고, 돈도 더 벌고 삶의 질이 나아지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2~3년을 다녔지만 길고 긴 인생길 꿈도 없이 거대한 도시의 부품처럼 이렇게 꼭 살아야 하는가 하는 회의가 들었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서른 한 살에 함양으로 귀농한 손영현 씨./안병명 기자

생협(Icoop 생협)이란 곳을 알게 되면서 생협과 함께하면 한국농업도 발전하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귀농에 대한 결심을 굳혔다. 대학에서 만나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와 의논했다. '귀농을 하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귀농 바람이 불기 전이었다. 어릴 적 뛰어놀던 외가동네 지리산 오매실, 볕 좋고 인심 좋은 함양으로 귀농지를 택했다. 그렇게 그는 달랑 500만 원 들고 함양으로 왔다.

◇첫해 매출 300만 원…"땀·땅은 배신하지 않아" = 물론 귀농만 하면 모든 게 술술 풀릴 것이라고 자신했던 것은 아니었다. 한발 한발 나아가기로 했다. 경상대학교 농업정보 119 활동과 정보화마을을 통해 알게 된 사람들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정착하는 데 도움을 주신 많은 분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때가 2006년 5월이었다. 먼저 감잎차 생산부터 시작했다. 모르는 일 배워가며 매달리며 노력했지만 첫해 매출은 달랑 300만 원. 그래도 실망하지 않았다. 땀도, 땅도 배신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달랑 가마솥 하나 걸어 놓고 시작한 운림농원은 10년 나이를 먹고, 165㎡ 가공시설에다 저온창고 냉동고 비닐하우스까지 갖춘 규모로 자랐다. 매출도 100배 늘었다.

현재 운림농원에서 생산하는 것은 당귀·황기·건오미자·은행·밤·호두 등 약재(건재)류 6종과 헛개나무 열매·오미자·복분자 등 액상 차류 4종이다.

부부가 꾸려가는 운림농원에서는 당귀(왼쪽) 등 약재와 오미자 등 액상 차를 생산한다./안병명 기자

돌이켜 보면 '잘할 수 있을까?' 하던 마음이 '반드시 잘할 수 있다'로 바뀐 결정적인 계기는 결혼이었다. 아내(김미정·36)는 도시생활 청산을 제안할 때도 흔쾌히 응했고, 농촌으로 들어가 살고, 농부의 아내가 되는 것에도 망설임이 없었다. 자기가 보기에 가족들 굶길 사람은 아니었다고 했다. 손 씨보다 더 용기백배했다.

부부는 서로 닮은 만큼 금슬도 좋다. 9살, 8살, 6살, 두 살배기 등 2남 2녀가 금슬 보증인이다.

부부는 아이들이 맘껏 놀고 상상력을 발휘하며 자랄 수 있게 하자는데 동의했다. 말이 쉬워 자식 4명을 기르는 것이지,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살아야 했다. 그래도 웃음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욕심을 내려놓고 자연과 조화롭게 아이와 눈 맞추며 살 수 있어서다. 도시에서라면 꿈도 못 꿀 일이다.

자식 뒷바라지하느라 새벽부터 출근하고, 상사 비위를 맞춰가며, 야근을 밥 먹듯 해도 살림은 빠듯하고 식구들끼리 오붓하게 밥 한 끼 먹기도 어려웠을 테다. 귀농을 택한 건 인생의 갈림길, 최선의 선택이었던 거다. 저녁이 있는 삶 바로 그걸 원했던 것이다.

◇각종 자격증 취득, 취미생활도 하며 계속 도전 = 원래 손 씨는 다소 내성적인 면도 있고, 낯가림도 있는 사람이었다. 귀농하면서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 일부러 노력한 것도 아닌데 좋은 이웃을 만나 붙임성이 좋아졌다. 삶이 행복해지니 늘 미소 짓고 인사도 잘해서 동네 어르신들도 좋아한다.

어르신들이 특히 좋아하는 건 그의 부지런함이다. 손 씨는 농원을 일구며 자녀 넷을 키우며 바쁘게 살면서도 늘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는 부지런한 귀농인으로 통한다. 스스로 귀농하면서부터 해마다 한 가지 이상 자격증을 따자는 목표도 세웠다. 농기계 정비기능사, 유기농 기능사, 장아찌 제조사, 장류 제조사 등의 자격증을 땄다.

농사일이 바쁘긴 해도 바쁜 시기가 지나면 짬이 나기도 하는데 그런 시간을 허투루 보내기 싫어서이기도 했고, 농원운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믿어서다. 실제로 그는 항상 '배우려는' 자세로 충만해 있다. 스마트폰을 활용하며 관련 정보를 수시로 알아보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보다 앞서가는 농민이나 기술력이 있으면 한달음에 달려가 배우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아내 김미정 씨와 2남 2녀./안병명 기자

가장 중요한 건 여유다. 그는 10년째 밀리터리 프라모델(조립식 장난감)을 하고 있다. 유일한 취미다. 술 담배를 하지 않고, 가끔 머리를 식히고 싶을 때 2만~3만 원짜리 탱크나 장갑차를 쉬엄쉬엄 만들며 한 달 이상 즐긴다. 일에서 얻는 기쁨과는 또 다른 여유다. 그렇게 모은 작품도 꽤 된다. 언젠가는 전시를 해볼까 생각해본다.

"목표를 세우고 철저한 준비와 노력으로 열심히 살아왔고, 또 열심히 살아갈 겁니다. 사람이 하는 일에서 안 되는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안 할 뿐입니다. 결과를 이루지 못할지언정 목표를 이루고자 노력합니다. 도시든 농촌이든 어디를 가든지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은 뭔가 달라도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꿈을 꾸고, 가족들과 더불어 같은 꿈을 만들어가는 재미가 참 좋습니다. 귀농 귀촌 덕분에 이런 기쁨을 남보다 먼저 알게 된 것이 큰 축복이지요. 하지만,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습니다. 많은 어려운 점이 있지만 철저히 준비를 하신다면 원하는 삶에 좀 더 다가가 있는 자신을 보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그렇게 오늘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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