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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가받지 못한 삶] (1) 창원 가포동 사람들

창원 가포5통, 60여 년 살았지만 내 집이라 부를 수 없는 동네 개발구역 한가운데 살아가는 '무허가촌'

이창언 김해수 기자 un@idomin.com 2016년 01월 04일 월요일

창원지역에 거의 유일하게 남은 무허가촌 마산합포구 가포5통. 가포5통은 한국전쟁 이후 가난했던 이들이 모여 적게는 50년, 많게는 70년 가까이 삶의 터전으로 삼고 지낸 동네입니다.

수도 하나를 6~7가구가 함께 사용하고 집이 낡아도 수리조차 하지 못하지만 이 동네에서 그런 불평은 사치입니다. 오갈 곳 없던 주민에게 안식처가 되고 내 집이 된 것만으로도 감사한 곳이죠. 그러나 이곳이 곧 개발된다고 합니다. 이들이 사는 곳 앞길에는 '개발로 인한 분묘연고자 신고 알림 현수막'이 걸려 있고 맞은편에는 아파트 공사 소리가 요란합니다. 매일 아침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참혹한 미래를 마주해야 하는 주민 공포와 불안감도 커지고 있죠. 집이 무허가라고 이들의 삶도 무허가인 것일까요.

비단 가포5통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과거 전국 각지 빈민촌들이 이렇게 하나둘 쓰러져갔습니다. 우리는 마지막 남은 무허가촌 가포5통 주민 모습을 통해 무허가촌이 왜 형성됐는지, 이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이런 식으로 삶의 터전을 내놓았던 이들은 현재 어떻게 지내는지 기록하려고 합니다. 그 속에서 대안도 함께 고민해보려 합니다.

높게 솟은 크레인이 말하듯 아파트 건설 공사가 한창인 옛 한국철강 마산공장 터 뒤로 창원시 마산합포구 가포동 가포5통 '무허가촌'이 희미하게 보인다. /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올해 일흔셋. 길막순(가명) 할머니는 스물세 살 되던 해에 '이 동네'로 왔다. 옛 한국철강 마산공장을 세운다는 소식에 일거리를 찾아온 게 발단이었다.

할머니는 남편과 한국철강 마산공장 건설 현장 막일, 복숭아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이어왔다. 쉼 없이 일했지만 풍족하진 않았다.

이 동네에서 할머니는 딸 둘, 아들 하나를 키웠다. 대신 말단 비대증과 뇌종양을 얻었다. 3번의 무릎 수술로 장애 4급 판정을 받기도 했다. 젊었을 적에는 늘 '집이 언제 뜯길지 모르는 불안감'을 안고 살았다. 여기에 이제는 달마다 의료비도 더해졌다.

마을 곳곳에 설치된 '경작금지 및 지장물 자진 철거' 안내문.

"평생 이 고생 할 줄 알았으면 애초 자리 잡지도 않았어. 처음부터 앉기를 더럽게 앉았지. 그래도 살아서는 못 나가. 죽어야 나갈 수 있어." 할머니는 그래도 웃으며 말한다.

거리는 휑하고 오가는 사람은 드물다. LPG 충전소로 향하는 시내버스, 이름난 커피숍으로 향하는 승용차만이 2차로 위를 이따금 지나간다.

길옆으로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옛 '한국철강 마산공장' 터를 아파트 단지로 만들기 위한 토목 공사가 한창이다. 토지 정화를 둘러싸고 말 많던 싸움도 이제는 잠잠해졌다. 공방이 지나간 자리는 중장비가 움직이는 소리, 대형 트럭 엔진음이 채웠다.

공사장 뒤편으로 아파트가 즐비한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학교 건물도 보인다. 마산 앞바다와 한적한 공원도 어렴풋이 눈에 들어온다. 조금만 걸으면 그곳으로 갈 수 있다.

하지만 이곳은 다르다. 아파트는커녕 2층 집도, 층층이 쌓아 올린 벽돌 담장과 곱게 칠한 외벽도 보기 어렵다.

마을 주민 쉼터 역할을 하는 지장물.

녹슨 철판, 깨진 유리창, 무너진 담장이 콘크리트벽을 대신한다. 인기척 대신 개 짖는 소리, 고양이 울음소리가 익숙하다. 자물쇠로 굳게 잠긴 몇몇 집은 말이 없다. 오르막길에 걸쳐 있는 집, 한 대문을 쓰면서 방만 다른 가구, 대문조차 없는 집, 녹슨 계단을 고개 넘듯 올라가야 하는 집 풍경이 즐비하다. '백숙, 삼계탕, 영양탕'. 낯익은 간판이 몇 군데 보이나 찾는 발길은 끊긴 지 오래다. 그 흔한 동네슈퍼 하나 없다. 산 정상까지 빼곡히 차 있는 복숭아나무만이 삶의 흔적을 비춘다.

개인 수도 대신 몇 가구씩 모여 공동 수도를 쓰는 곳, 마을 회관을 컨테이너가 대신했던 곳, 60년 넘게 살아왔지만 내 집이라 부르지 못하는 곳. 여기는 2016년 1월 창원시 마산합포구 가포동 가포5통. 사람들은 이곳을 '무허가 촌'이라 부른다.

◇가포5통, 가난한 동네 = 5통은 가포동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동네로 꼽힌다. 주민은 204가구 417명. 5통 안에서도 격차는 있다. 가포5통은 총 6반까지 있다. 가포로를 사이에 두고 옛 대중교통 차고지 근처인 5·6반이 비교적 안정적인 삶을 사는 반면 1~4반 살림살이는 넉넉하지 못하다. 1~4반이 바로 '무허가 촌'이다.

마을 입구 쪽에 1·2반이 있고 마을 안쪽과 길 아래로 3·4반이 있다. 주민은 11월 말 기준 총 275명. 주민 일부는 마을 뒷산에서 과수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생활수준이 탐탁지는 않다. 주민 대부분은 "안 해 본 일이 없다", "복숭아 농사라도 지어야 한다"는 말로 소득 수준을 대신했다. 막노동·식당일·장사 등 한평생 일을 해 왔지만 '질병밖에 남지 않았다'는 한탄도 많다. 가포5통 주민 중 기초생활 수급 대상자는 20가구 30명이다. 이는 가포동 전체의 61%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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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포5통 무허가촌 위치.

◇가포동, 변화의 바람 = 가포동은 총 6통 25반으로 나뉜다. 비움고개 넘어 주민센터가 있는 가포본동에 1·2통이, 결핵병원과 가포고등학교가 있는 곳이 3통, 장어골목을 포함하는 4통, 옛 한국철강 마산공장터, 월영동과 맞닿은 곳에 5~6통이 있다. 주민은 총 574가구 1234명.

밤나무가 많고 지역이 굽어 있어 오래전부터 율구미·밤구미로 불린 이곳은 해안선을 따라 마을이 형성돼 있다. 농업·어업·상업이 공존하며 바다와 산림이 조화롭게 이루어져 있는 청정구역으로 일제강점기엔 상이군인요양소가, 해방 후 1946년부터는 국립마산병원이 개원해 결핵연구·치료 산실이 되기도 했다.

1960~70년에는 가포해수욕장이 개장해 인산인해를 이뤘다. 2008년 7월에는 마창대교가 개통하고 2015년 1월에는 마산신항 개항으로 새로운 변화도 일어나고 있다. 1·2통은 '가포본동 보금자리 주택 사업예정지'로 3128가구가 들어설 아파트 공사가, 4통은 가포신항 배후도로 터널(길이 960m) 공사가 예정돼 있다. 5·6통은 (주)부영이 946가구를 공급하는 공공임대 아파트 단지 조성이 이미 시작됐다.

하지만 가포5통 주민은 변화의 바람에 끼지 못한다. 그들에게 변화는 아픔이다. 임대아파트, 공원이 들어선다는 소리가 괴롭다.

가포5통 골목 풍경.

경남도민일보 취재팀이 처음 가포5통을 찾은 것은 2013년 2월 11일, 설 연휴 마지막 날이다. 개발 지역에 속해 '언제 쫓겨나도 이상할 리 없는 공간'을 알고자 무작정 들어갔던 때다.

그리고 2년 뒤 다시 가포5통을 찾았다. 2차로 한쪽에 빼곡히 섰던 나무는 사라졌고 길 아래 몇몇 집은 헐렸다. 마을 회관을 대신하던 컨테이너도 사라졌다. '철거 대상 지역'이라는 안내문은 더 늘었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이 살았다. 낡고 녹슬어도 내 집이 있었다. 아직 살아나가야만 했다.

지금은 철거된 집의 예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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