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초 서울대 역사학 관련 교수 77%가 자신들의 이름을 걸고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서명을 해 교육부에 전달했습니다. 전달한 오수창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등은 "정치권의 논의가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규정한 헌법 정신과 합치하지 않는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가 국가와 사회를 위해 바람직스럽지 않아 우려하고 있다. 주변 역사학자 중에서 국정화에 찬성하는 이는 찾아볼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한국사회와 학계에서 상징성이 강한 서울대 역사전공 교수 압도적 다수가 정부 정책에 집단으로 반기를 든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이례적 현상입니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우려가 얼마나 크고 엄중한지를 방증하고 있습니다.

역사 교사 2255명도 실명으로 선언문을 발표하면서 "현 정부의 한국사 관련 주요 기관의 기관장이 뉴라이트 계열 인사로 채워져 있어 국정으로 발행되는 한국사 교과서는 친일·독재 미화로 현장의 외면을 받은 교학사 교과서와 비슷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한 바 있습니다.

작년 한국일보에서 진보와 보수를 모두 포함한 역사 관련 학회 임원들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설문 결과 97%가 반대했습니다. 그리고 '역사 교과서가 좌편향인가'라는 질문에는 88%가 좌편향이 아니라고 했으며 6%만 좌편향이라고 했습니다.

역사 관련 대학교수 등 전문가 대부분이 좌편향 교과서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정부의 검정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좌편향이라면 검정을 통과할 수 없습니다. 좌편향인데도 검정에 통과됐다면 통과시켜준 정부의 책임이 큽니다.

김일성 주체사상이 역사 교과서에 실려 있다고 좌편향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북한은 이런 사상으로 독재를 했다는 것을 비판하기 위한 것입니다. 제대로 아는 만큼 비판도 제대로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김일성 주체사상을 찬양하는 사람은 처벌을 받게 됩니다.

지금 역사교육이 비정상이고 잘못됐다고 하는 권력자나 정부 책임자는 자기의 책임을 망각한 이율배반에 젖어있는 사람입니다. 정부에서 검정한 교과서로 역사교육을 정상적으로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교육과 역사를 정략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정치인들보다 더 진정한 역사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전혀 다루지 않고 정쟁으로 몰아서 국민을 우민화하는 방송 뉴스 등을 보면 그 저의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언론인 본연의 역할을 망각하고 있는 그들이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역사나 교육은 정쟁으로 다뤄져야 할 분야가 아니라 전문성으로 다뤄야 하는 분야입니다. 그래서 교직을 전문직이라고 합니다. 다수가 친일파들의 행위는 자신이 살기 위해 한 것으로 괜찮다고 해서, 역사적으로 그 행위가 괜찮은 것이 아닙니다.

핀란드는 1990년대 IMF 금융위기를 겪은 뒤 국가 발전은 교육 발전을 통한 인재 양성에 있다고 하여, 교육은 정권의 변동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제도화했습니다. 정치적인 영향을 받지 않고 교육 발전을 추구해 최고의 교육선진국이 되면서 국가도 선진국이 됐습니다. 교육의 전문성을 인정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식민사관과 식민지 근대화론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출발은 이승만 정부 수립 때부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948년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아니라 '대한민국 수립'으로 여기면서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교과서가 국정화되면 실행되는 것이 아닌가 하여 우려하는 역사 관련 전문가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헌법에도 명시돼 있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독립운동 과정에서 생겨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있는 것을 외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독립운동을 외면하는 사람은 그 나라의 진정한 주인이 아님에도, 우리 사회는 친일파 청산이 되지 못해 이런 주장이 보수인 것처럼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한 교육과정 개발 과정에서 올해 5월 1차 시안, 9월 초 2차 시안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었습니다. 하지만 9월 23일 고시된 교육과정은 '대한민국 수립'으로 기술돼 있습니다. 20여 일 만에 정부 수립이 건국으로 바뀐 것입니다. 대한민국 기록관리 중추기관인 국가기록원과도 배치됩니다. 국가기록원은 8월 14일,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선포됐고, 경축식이 중앙청 광장에서 열렸다"며 '정부 수립'이라고 밝히고 사진과 우표 등을 공개했습니다.

역사 관련 전문가 대부분이 반대하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전문가들 의견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정부에서 전문성을 무시하고 어떤 일이든 못하겠습니까.

전문가들의 이런 반대를 무시하면서 좌익몰이를 하면 결집해 얻을 수 있는 것이 많다는 생각으로 그런다면, 교육과 역사는 하나의 도구로 전락하게 됩니다. 권력은 일시적입니다. 다음 정권은 또 자기들 구미에 맞게 역사 서술을 하려고 할 가능성 때문에 국정화에 반대하는 것입니다.

역사 발전보다 역사 후퇴가 되는 일을 자행하면서 반성할 줄 모르고 일시적인 권력에 도취돼 역사를 오도하면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자신들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역사는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이헌동(김해 영운초등학교 교장)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