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송전탑 대집행 1주년을 '기억'하는 문화제가 지난 18일 열렸다. 정부의 공권력을 앞세운 한전과 이에 대항한 주민들의 격렬한 저항이 있은 지 일 년이 지났다. '기억'문화제가 우리 사회에 중요하게 부각되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밀양 주민들이 공권력에 대항한 것 때문만은 아니다. 밀양 송전탑 인근 주민들이 정부와 한전에 대항하여 힘든 싸움을 벌일 때, 일부 언론과 사회적 분위기 중 보상금 문제로 좁게 보려는 시각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송전탑을 둘러싼 갈등은 결코 일부 주민만의 문제일 수가 없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가권력에 의한 강압과 폭력이 유일한 해결책이었다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었다.

1960~70년대 우리 국민은 국가에서 결정하면 무조건 따르는 것이 법도인 것처럼 되어 있었다. 엄연한 사유지인 논 한가운데 전봇대를 꽂는 데도 저항할 엄두를 못 냈다. 이런 분위기에서 국가권력을 빙자한 무분별한 주민 동원도 많았다. 밀양 송전탑 건설을 밀어붙인 정부와 한전의 의식 속에서 이 같은 독재적 국가권력시대의 못된 찌꺼기가 남아 있는 것은 아니었는지 되짚어봐야 한다.

정부와 한전이 1960~70년대와 달라진 것은 보상과 회유 정도였다. 이 같은 행태는 피해 주민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오히려 속만 터진다. 현지 주민사회가 보상을 받은 측과 안 받은 측으로 갈라져 등을 돌린 현실을 보면 차라리 모르고 당할 때가 나았을 수도 있다. 그래도 그때는 향촌사회답게 이웃 간 정리가 있었다. 정부와 한전이 대집행 이후 공사를 완료했다고 하여 밀양 피해 주민들을 외면하는 것은 국민을 버리는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권력은 오로지 국민에게서만 나올 수 있다. 밀양 송전탑 주민을 비롯한 전국의 송전탑 및 원자력 갈등을 겪는 주민들도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국민이다. 정부와 한전은 '기억'문화제를 제대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낡은 기억을 버리고 진정 민주화시대에 걸맞은 자세가 무엇인지부터 고민하고 보여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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