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긋하게 솟아올라 옷의 맵시를 살려주는 가슴. 2년 전만 해도 나는 가슴의 기능을 반밖에 모르는 아가씨였다.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고 모유수유를 하고 있는 지금. 나는 가슴보다는 젖이라는 말에 익숙하다.

12시간을 진통하고 아기를 낳았다. 세상에, 내 몸에서 사람이 나오다니. 아기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감정은 곧 지나가고 허기가 밀려왔다. 찢어진 회음부의 고통보다 배고픔이 먼저라니. 아침에 나온 미역국을 허겁지겁 먹다가 체하고 말았다. 덕분에 나는 철분제나 영양제 대신 장촉진제를 맞았다. 숭고한 출산과는 거리가 먼 냄새나는 육아의 시작. 그 와중에도 "엄마, 수유하러 오세요"라는 신생아실의 전화는 줄기차게 울렸다.

주변 사람들은 아기와 산모의 건강 다음으로 젖의 안부를 물었다. 아주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그래, 젖은 잘 나오니?" "아기가 젖을 잘 빠느냐" "많이 먹어야 젖이 잘 돌지". 조금 오지랖이 과한 사람은 "물젖이냐, 참젖이냐"라고도 물어본다. 몇 번의 염증과 젖몸살을 거치고 나서야 노련한 수유가 가능해졌는데 평온한 마음에 태클을 건 사건이 생겼다. 바로 EBS 다큐멘터리 <모유 잔혹사>. 다른 엄마들은 어떻게 모유수유를 하고 있나 궁금한 마음에 봤다가 충격을 받았다. 현대 엄마들의 모유를 분석한 결과, 중금속은 물론이고 세정제 성분까지도 검출 되었다는 이야기. 물론 수유해도 상관없을 만큼의 미량이긴 하지만 모유를 먹이는 입장에선 뜨악할 수밖에. 그만큼 모유가 환경의 영향을 예민하게 받는다는 이야기로 결국에는 환경의 중요성을 말하는 다큐멘터리였지만 내게는 그저 충격뿐인 잔인한 다큐멘터리였다. 실제로 방송이 나간 직후 많은 논란이 일었다.

아기를 낳고 나서 우리 부부는 많은 것이 변했다. 집에 있는 세제를 모두 베이킹 소다, 과탄산으로 바꾸고, 먹거리도 유기농을 우선으로 고른다. 하지만 봄철 불어오는 황사 속 미세먼지와 중금속, 거리로 나가면 맡게 되는 배기가스와 터지면 속수무책인 원자력발전소를 부모의 힘만으로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그날 밤, 쭉쭉 젖을 빨아먹는 아기의 입을 보며 심란해질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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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가 태어나 본능적으로 찾게 되는 어미의 젖. 그 속에는 나의 식습관뿐 아니라 지구의 건강까지도 같이 녹아 있다. 어느 농부가 지은 쌀, 어느 축사에서 자란 소, 깊숙한 바다에서 자란 미역…. 엄두도 못 갈 거리에서 난 것들이 한 밥상에 올라 김을 내면 한 숟가락 드는 일이 예사로 느껴지지 않는다. 오늘 먹은 것은 다시 아기의 밥이 되고 허기진 아기는 온 힘을 다해 젖을 빤다. 가장 가까이 있는 세계를 빨아 당긴다.

젖을 먹이는 게 단순히 내 아이를 위한 일일까. 후손이 먹을 음식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하며 살고 있나 한 번쯤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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