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도가 최근 수도권 대학에 다니는 경남 출신 서민 자녀를 위해 재경 기숙사인 '남명학사' 건립을 추진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개천에서 용 나오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홍준표 도지사의 의지가 담긴 사업입니다. 이와 관련해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본지에 칼럼을 보내왔습니다. 그는 홍 지사와 반대로 '개천에서 용 나오면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나는 택시아저씨의 좋은 이야기동무다. 아마도 다른 사람 말을 들을 때, 습관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버릇 때문일 것이다. 오늘도 택시아저씨는 학교 가는 길에 '저기 풀밭에 핀 꽃 이름을 아느냐'부터, '우리는 저것을 먹고 자랐다' 등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택시아저씨는 피곤함이 가득한 젊은 친구의 모습이 안쓰러워서 힘을 내라고 한 말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손에 들고 있는 책이 화근이 되었다. '개천에서 용 나면 안 된다'라는 책을 들고 있었던 것이다. 젊은이를 응원하던 아저씨는 책표지를 보시고는 불온서적을 보듯 화를 내셨다. 아니, '젊은 사람이 열심히 해도 모자랄 판에…' 아저씨는 자신의 성공한 친구부터, 친척의 친척까지 어려운 환경에서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러니 열심히 공부해야지, 자네 학생인가?' '아니요. 졸업했어요.' '그럼 학교를 왜 가….' 차마 이 책의 저자가 하는 강의를 듣는다고 말은 못했다. 강의실까지 쫓아오실까 봐."

▲ 강준만 교수.

내가 매주 하는 '글쓰기 특강'을 듣는 김모 군이 쓴 글이다. 지난 2월에 졸업을 한 김 군은 이른바 '언론고시'를 준비하면서 내 특강을 듣고 있다. 읽다가 웃음을 빵 터뜨릴 정도로 재미있게 읽은 글이라 길게 소개했는데, 독자들께서 공감을 하실지 모르겠다.

나는 <개천에서 용 나면 안 된다>는 '불온서적'을 출간한 이후 새삼 놀라고 있다. 책에서도 "개천에서 용 난다"는 단순한 속담이 아니라 한국사회를 움직이는 심층 이데올로기라고 했지만, 그 이데올로기를 시민 반응을 통해 직접 체험하는 건 전혀 색다른 경험이었다. "개천에서 용 나면 안 된다"는 말을 계층 이동과 평등에 반대하는 수구 꼴통 논리 비슷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왜 한국 사회에서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많은 이들이 '개천에서 용 나는 세상'을 예찬하면서 그걸 정치적 슬로건으로까지 이용하는지 알 것 같았다.

내가 책 제목을 너무 선정적으로 붙인 걸까? 아니다! 나는 문자 그대로 "개천에서 용 나면 안 된다"고 굳게 믿고 있다. 왜 그런가? '개천에서 용 나는' 모델은 사회적 신분 서열제와 더불어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왜곡된 능력주의, 즉 '갑질'이라는 실천 방식을 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천에서 용 나는' 모델은 개천의 모든 자원, 특히 심리적 자원을 탕진할 뿐만 아니라 전 국민으로 하여금 개인과 가족 차원에서 용이 되기 위한 '각자도생(各自圖生)'에 몰두하게끔 함으로써 지역사회와 공동체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전국의 여러 지역이 도·시·군 단위로 서울에 학숙을 지어 지역 인재의 서울 유출을 장려하는 게 그 좋은 예다. 가족 단위에선 자식을 서울 명문대에 보내는 게 가문의 영광으로 통한다는 걸 잘 아는 지역 정치인은 학숙 건립을 공약으로 내걸면서 그걸 지역발전전략이라고 우기고 있다. 정말 그런가?

모든 이들이 지역발전을 위해선 지역대학을 키우는 게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젠 기업이 대학을 따라간다며 산학협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차라리 이런 주장에 대한 반론이 나오면 모르겠는데, 그런 반론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면서도 지역인재 유출을 장려해 사실상의 '지방대 죽이기'를 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지난 수십 년간 결과적으로 '지방 죽이기'를 한 주역이 누구인가? 다 서울에 사는 지방 출신이다!

"개천에서 용 나면 안 된다"는 말은 용과 미꾸라지를 구분해 차별하는 신분 서열제를 깨거나 완화시키는 동시에 '개천 죽이기'를 중단하고 개천을 우리의 꿈과 희망을 펼칠 무대로 삼자는 뜻이다. 개인적인 차원에선 용이 되려는 이들에게 뜨거운 격려와 성원을 아끼지 말자. 그러나 '개천에서 용 나는' 모델을 공적 차원에서 장려하고 지원하는 것이 과연 괜찮은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지방민이 서울 하늘 바라보며 '전쟁 같은 삶'을 살 게 아니라 지방민 스스로 지방을 살만한 곳으로 만들어보자. 지방을 개천으로, 서울을 용의 서식지로 여기는 '개천에서 용 나는' 모델은 지방민 스스로 지방을 죽이는 희대의 '국민 사기극'이다.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