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인지·기억 능력 '허점투성이'…정치·대중매체 다시 생각해보게 돼

1999년 미국 하버드 대학의 심리학과에서 재미있는 실험이 실시되었다. 실험 참가자들에게 흰 옷을 입은 사람 셋과 검은 옷을 입은 사람 셋이 농구공을 패스하는 동영상을 보여준다. 동영상을 보여주기 전에 흰 옷을 입은 사람의 패스 횟수가 몇 번인지 세라는 주문을 했고 동영상을 보여준 후 몇 번이었는지를 묻는다. 주의를 기울여서 보면 패스하는 횟수를 아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실험 참가자들이 답을 하자 두 번째 질문을 한다. "동영상에서 고릴라를 보셨나요?" 이 동영상에는 고릴라 분장을 한 사람이 농구공을 패스하는 사람들의 가운데를 지나간다. 그 시간이 9 초나 되고 한가운데 서서 가슴을 몇 차례 두들기는데도 실험 참가자의 반은 고릴라를 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KBS에서 만든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 동영상을 인터넷에서 찾아보라. 빨간 커튼이 쳐진 무대 위에서 흰 옷 입은 여자 셋과 검은 옷 입은 여자 셋이 공을 패스하는 장면인데,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고릴라는 잘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궁금하다면 동영상을 보기 바란다.

이런 현상은 사람들이 무언가를 볼 때 예상하고 있는 것에만 주의를 기울이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사물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현상으로 무주의 맹시(Inattentional blindness)라고 부른다. 흰 옷 입은 사람이 공을 패스하는 것에만 주의를 기울이느라 그 이외의 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고 그래서 고릴라를 못 본 것이다.

무주의 맹시 현상은 주의력이 떨어지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이다.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이 그렇다는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도 이 현상을 나타내는 말로 생각할 수 있다.

주의를 기울여서 보았다고 해도 우리는 사실을 그대로 기억하지 않는다. 같은 자리에 함께 있었던 사람이라도 전혀 다르게 기억할 수 있다. "네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느냐?"라는 말에 "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라는 대답을 하는 경우는 일상생활 속에서도 드물지 않게 발생한다. 그 당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느냐에 따라 기억이 달라지는 것이다. 일어난 일에 대해 전혀 기억을 못하기도 하고 심지어 일어나지 않은 일을 일어난 것처럼 기억하기도 한다.

이것만이 아니다. 우리는 모르고 있는 것을 안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보자.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영어가 우리말보다 우수하다고 말한다면 아마 발끈하면서 우리말이 세상에서 가장 과학적이라고 반박할 것이다. 그럴 때 그 사람이 "뭐가 어떻게 과학적인데?"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답하겠는가? 설명할 수 없는 사람은 우리말의 과학성을 모르면서 알고 있다고 착각한 것이다.

지금까지 설명한 것처럼 우리의 인지와 기억에는 많은 허점이 있다. 이 글에서 설명한 것 이외에도 허점은 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신의 능력이 실제보다 더 뛰어나다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고, 자신의 지식에 대해 과대평가 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자신의 기억에 근거해서 다른 사람이나 세상을 평가하고 그 평가가 옳다고 생각한다.

정확한 데이터를 제시하고 그 데이터를 얻은 정확한 정황과 방법을 객관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과학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우리의 인지와 기억에 대한 의존도를 최소화해야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과학적이지만은 않다. 우리의 삶에는 사람의 인지와 기억이 작용할 수밖에 없고, 정치에서는 이것을 이용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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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정치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사건 중 하나가 발생한 지 6년이 되는 이때, 우리의 인지와 기억, 그리고 대중매체와 정치에 대해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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