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사회적경제] (7) 동피랑 사람들

통영 동피랑은 벽화만으로 채운 마을이 아니다. 여행객 눈길을 먼저 사로잡는 것은 수많은 작가의 손으로 꾸며진 벽화이겠지만, 동피랑은 이제 마을 공동체로서 전국 마을의 이목이 쏠린 곳이다. 마을 만들기나 도시재생 사업 대부분이 행정에서 기획해 주민 설득을 거쳐 사업에 들어간다. 이와 달리 동피랑 벽화 마을은 주민의 절박함에서 출발했다.

◇절박한 처지에서 경제활동 주체가 되기까지 = 2006~2007년 통영시에 의해 동피랑 일대 매입과 공원화가 계획돼 있었다. 그러나 이곳 주민 대다수가 저소득층이어서 공시지가를 토대로 보상을 받고 다른 곳으로 간다면 제대로 살기 어려운 형편이었다. 주민 일부는 오랫동안 머물렀던 마을에서 그대로 살 방법을 찾다가 '푸른통영21'이라는 민관 추진협의회에 사정을 이야기한다.

푸른통영21을 통해 동피랑 도시재생에 관한 고민이 시작됐다. 도시재생은 유무형 특정 자산이 없으면 이뤄지기 어려웠다. 최소 비용과 최단 시간에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이 '벽화'였다. 전국 수백 개 마을이 벽화를 그렸지만, 성공 사례는 드물다. 벽화는 짧은 시간에 흉물이 되는 단점도 있다. 푸른통영21은 벽화 등을 지속해서 관리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다. 2년마다 한 번씩 벽화가 바뀌니 동피랑을 다시 찾는 사람도 늘었다.

동피랑 생활협동조합 유용문 사무국장이 '동피랑 점방'을 설명하고 있다. /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벽화는 예상 밖에 흥행했고, 주민들은 동피랑을 떠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한 해 100만 명 가까이 너무 많은 여행객이 동피랑으로 몰려든다. 주민은 생활 터전에서 소음이나 쓰레기 등으로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에 주민 스스로 경제활동을 벌여 불편에 대한 보상을 받자는 의견이 제기된다.

이후 주민 협의회가 결성돼 기념품 판매 가게인 '동피랑 점방'을 연다. 어엿한 사업 주체가 필요해 주민 협의회는 '동피랑 사람들'이라는 마을기업으로 지정됐고, 이를 공정하게 운영할 필요성이 커져 협동조합(동피랑 생활협동조합)으로도 등록했다. 마을 주민만 조합원이 될 수 있는데, 현재 조합원은 41명.

마을기업이 돼 행정자치부에서 지난해까지 2년 동안 8000만 원을 지원받아 재정 토대가 마련됐다. 점방에서 파는 물건 품질도 높여 2013년 1억 원에서 지난해 2억 원으로 매출은 배가됐다. 점방 수익금은 매장 직원 인건비와 물품 대금 등을 빼고 전액 마을에 재투자된다. 또 일부는 주민 전기·수도요금 등으로 쓰인다.

동피랑 생활협동조합 유용문 사무국장이 '동피랑 점방'을 설명하고 있다. /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많은 숙제를 안은 동피랑 = '할머니 바리스타'로 이름나 TV에도 출연한 적이 있는 박부임(65) 씨는 동피랑 골목에서 아메리카노, 유자차, 빼때기죽 등을 손수 만들어 내놓는다. 박 씨는 9살 때 동피랑으로 이사와 지금까지 이곳에 살고 있다. 그저 커피가 좋아서 바리스타 교육도 들었고 장사를 시작했다. "주위에서 도움을 주니까 장사할 수 있지. 20년 막노동하면서 커피는 내 피로 씻어주는 보약이고, 외로움 달래주는 친구고 그렇다. 요즘도 아메리카노, 카푸치노, 믹스커피 등 여러 가지를 마신다."

이처럼 '동피랑 점방'뿐만 아니라 동피랑 일대에는 커피 등 먹거리와 기념품을 파는 가게가 모두 8곳이 있다. 이 중 5곳은 주민이 꾸려가고, 3곳은 외지인이 운영한다. 그래서 최근 들어 무분별한 영업 행위를 자제하고, 가게 사이 형평성을 두려는 자체 규약도 만들어지고 있다. 이 같은 규약을 다듬는 것도 앞으로 과제다.

9살 때부터 동피랑에서 살아온 '할머니 바리스타' 박부임(왼쪽) 씨가 장사하게 된 계기를 이야기하고 있다. /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점방에는 통영 출신 혹은 통영과 인연이 있는 예술가 작품이나 통영지역 이야기를 담은 액세서리, 동피랑 벽화 타일, 통영 누비 제품 등이 있다. 지역 작가한테 의뢰해 만든 제품이 많다. 주민이 직접 물품을 만들면 리스크 부담이 커지고, 전문가 위탁 제작 이후 판매가 매출 증대에도 더 낫다는 조언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익 모델 다각화로 주민 소득을 창출하려는 고민도 있다. 동피랑 생활협동조합 유용문(52) 사무국장의 설명이다. "벽화 기념품이나 컵 등을 만들 때 검사 또는 공정 일부를 대부분 60세 이상인 마을 주민이 가내수공업 형태로 생산 환경을 갖춰 맡으면 일자리 창출이 될 것이다. 추도 물메기나 고구마 등 통영 수산물과 특산물을 원산지에서 사들여 마을에 덕장을 두고 작업하면 새로운 풍경도 되고 역시 일자리 창출이 될 것이다. 이걸 인터넷으로 유통도 하고, 다양한 수익 증대 방안을 고민 중이다."

마을기업으로서 지원이 종료됐고, 올해는 자립해야 하는 첫해다. 마을 조합원과 푸른통영21은 매달 한 차례 합동 회의를 열어 동피랑의 앞날을 고민하고 있다. 마을기업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아픔을 동피랑은 8년 세월을 거치며 숱하게 겪어왔다. '예방주사'를 맞은 셈이다.

유 국장이 던지는 메시지는 와 닿는다. "선진지 견학을 온 이들에게 늘 해주는 얘기다. 마을기업은 '성공'이란 게 없다. 사람이 성장하고 죽음에 이르듯이, 동피랑도 성장 과정이다. 'Best 1'보다는 'Only 1'이 돼야 생명이 길어진다. 자발성과 내적인 힘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행정이나 중간 지원 조직이 개입하지 않고 방관했다면 오늘날 동피랑은 없었을 것이다. '운영은 투명하게, 분배는 공정하게'라는 교훈을 느낀다. 마을 주민 공동 사업으로 인식하면, 마을기업에 관한 기본 지식이 없어도 악용하는 사례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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