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짧다 한탄하는 대신 최선을…죄와 업을 쌓는 대신 바른 마음을

어느 새 매미 울음소리는 바람결에 사라지고, 끼르륵, 끼륵…끼르륵…달빛 머금은 귀뚜라미 울음소리에 천지자연이 살아 숨을 쉬고 가을을 불러들이기에 분주하기만 하다. 이곳 망운사 산사에도 나뭇잎이 붉은 색으로 타들어가고 가을이 실감날 만큼 하늘은 드높고 한가로운 들녘에는 누렇게 익은 벼가 농부의 수고로움에 고개 숙이며 10월을 재촉하고 있다. 수확을 거두는 시월이 오면 오곡백과와 고색창연한 단풍들이 한데 어울려 울긋불긋 꽃대궐을 차려 오가는 귀한 길손 맞이에 분주하리. 이렇듯 삼라만상(森羅萬象)이 온통 광명을 수놓는 황홀한 광경을 볼 수 있어서 해마다 즐겁고 좋은 호시절이 아니런가? 그래서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이라. 날마다 좋은 날이라 했다.

옛날 중국의 팽조라고 하는 팽씨 노인은 하(夏)왕조에 태어나 은(殷)왕조 말경에 767세였다고 하니 800여생을 살다 간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초나라 남쪽 바다에 사는 장수 거북이는 자그마치 500년이라는 세월도 그에겐 한갓 한철에 불과했다. 또 상고시대의 한 느티나무의 8000년은 그에게 있어 한 계절과 다름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하루살이'라는 벌레는 아침에 나서 저녁에 죽어버리니 하루살이에겐 한 달이 무언지 아무리 설명을 해도 도저히 알아듣지 못한다.

매미라는 곤충은 또 어떠한가? 봄에 나서 여름까지 살다 죽으니 무엇을 가리켜 사계절이라 하고 한 해라고 하는지 흘러가는 세월이 그저 무상하다고만 탓할 수밖에 없다. 하루살이와 매미를 가리켜 '짧은 삶'이라고 한다면 거북과 느티나무는 '긴 삶'이다. 팽씨 노인이 비록 800살을 살아도 우리가 130살을 살아도 거북과 느티나무 입장에서 보면 하염없이 짧은 삶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고 하루살이나 매미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상상도 못할 긴 인생을 사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이 인생이란 짧니 기니 하거나 하는 일 없이 나이만 먹어간다느니 등 한탄의 말을 할 것이 아니라 이 자리에서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허무주의나 감상주의에 빠져 있을 것이 아니라 우리들은 바로 여기 이 자리에서 할 일이 태산같다. 한 해 두 해 등등은 인간들이 만들어놓은 하나의 약속이자 굴레에 불과하다. 오래 사는 것이 행복이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가 중요한 것이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도 반은 광명이요, 반은 어둠, 즉 무명이다. 

사람들은 일곱가지 색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동물들은 사람보다 훨씬 폭이 좁은 세계의 광명밖에 못 본다. 하등한 세계로 내려갈수록 광명의 폭은 좁아지고 암흑만이 가득할 뿐이다. 지옥에 이르게 되면 광명은 전혀 기대할 수가 없다. 반대로 승화된 세계로 나아가면 광명만이 찬연한 세계가 있을 수 있다. 극락세계를 무량수라고 부르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에겐 매일같이 젊은 날이고 매일이 좋은 나이이다. 매일매일 바로 이 자리에서 이루어내야 한다. 감상에 젖어 있을 여가가 없다. 우리는 참된 의미의 견성성불이 되기 위해서는 바로 여기 이 자리에서 광명의 마음이 되어야만 한다. 마음 한 가운데 자리한 두터운 무명을 걷어내야 한다. 하루를 살면 하루의 죄와 업장이 쌓여간다. 억겁을 두고 쌓아온 것도 녹이기 힘든 판에 또다시 매일매일 죄와 업장을 쌓아가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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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죄가 있으면 참회하고, 잘못된 일을 부끄러워할 줄 아는 데에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그리고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되면 그 죄업도 마음을 따라 없어진다. "마음은 언제나 똑바른 줄과 같아야 한다"고 했다. "바른 마음이 곧 도량이다"라고 했거늘 이 몸에 탐착하지 않는다면 어디를 가나 거리낌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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