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학 뒤 북새통 같은 교실 바라보며…그 속 멍드는 교사들 상처 보듬어야

'왜요?, 왜 안돼요?, 싫어요, 헐, 대박, 지겨워요, 잼 없어요, 재수 없어요.' 온종일 아이들과 부대끼며 듣는 말들입니다. '개'라는 접두어로 시작하는 속어는 귀를 '쩔게' 만들기도 합니다. 개학 첫날부터 교실은 혼돈 그 자체입니다. 창문을 닫은 채 선풍기가 켜져 있으니 먼지와 휴지가 뒤섞여 매캐한 냄새가 진동합니다. 버려진 휴짓조각이 먼지 속에서 살랑살랑 춤을 춥니다. 깨진 분필 토막은 칠판 앞에 일렬로 드러누워 있습니다. 분필 먼지도 뒤질세라 다른 먼지들 틈에 끼어듭니다. 

첫날 첫 시간에 접한 교실 풍경입니다. 이런 와중에 아이들 짜증은 극에 달합니다. 어떤 아이는 책상에 앉지도 못한 채 한참 동안 서 있기만 합니다. 막무가내로 책상 바꿔 달라며 울상을 짓습니다. 이유를 물으니 책상에서 냄새가 나 도저히 앉아 있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방학하기 전에는 괜찮았던 책상이었는데 방학 끝나고 오니 냄새가 진동한다고 하소연합니다. 이유를 알아보니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책상 안에 남겨 놓았던 과자 부스러기랑 우유 찌꺼기가 썩어서 난 냄새였습니다. 그런데 분명 자기 책상이 맞습니다. 그러면 스스로 치워야 하지 않느냐고 했더니 인상을 찌푸리며 교실을 나가버립니다. 교실 바닥에 어지러이 널려있는 휴지, 칠판의 낙서와 분필 토막들, 꽉 닫힌 창문. 누구 하나 치울 생각도, 열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원래 그렇지 뭐!' 위안하며 말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내친김에 아이들 흉을 좀 더 까발려야겠습니다. 교무실 한편에 마련된 분실물 코너에는 잃어버린 물건이 자꾸만 쌓여갑니다. 교과서, 신발, 교복, 체육복, 교통카드 같은 다양한 분실물들이 버림받은 아이처럼 웅크리고 앉았습니다. 잃어버렸다는 것조차 잊어버리는 아이들도 꽤 많습니다. 부모에게 다시 사달라고 조르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라는 생각이 더 큰 모양입니다. 껌이나 과자 부스러기를 교실, 복도, 계단 바닥에 아무렇지 않게 버리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바닥에 붙어서 시꺼멓게 썩어가는 껌 딱지가 설치 미술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혼돈스러운(?) 아이들이 모두 돌아간 오후 텅 빈 교실에 앉아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왜 그럴까? 예전에도 그랬을까? 요즘 아이들만 그런 걸까? 혼돈의 원인은 인내심 부족과 자율성 결여에 있습니다. 곰곰이 생각한 끝에 내린 결론입니다. 괴로움이나 어려움을 참고 견디는 마음의 힘. 인내심을 길러주는 가정교육의 부재를 실감하게 됩니다. 자기 스스로 원칙에 따라 어떤 일을 하거나 자기 스스로 자신을 통제하여 절제하는 힘, 즉 자율성 결여도 혼돈의 원인 중 하나입니다.

인내심 부족과 자율성 결여는 수업 시간에도 이어집니다. 아이들에게 학교에 오는 이유를 물어보면 거침없이 대답합니다. 부모가 가라고 하니까, 학교에 안 가면 달리 갈 만한 곳이 없어서, 친구 만나러, 밥 먹으러. 아이들 대답은 의외로 간단명료합니다. 그래서 재미없는 수업 시간엔 잠만 자다 밥때 되면 어김없이 일어나 급식소로 달려갑니다. 부모님이 이런 교실 상황을 알면 기막힐 일이지만 선생님 입장에선 짜증 섞인 표정과 말투를 감내할 자신이 있을 때만 자는 아이를 깨울 수 있습니다. 심지어 수행평가를 하는 상황인데도 잠만 자는 아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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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일어나 수행평가 점수를 받아 달라고 애원하는데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이런 아이들과 온종일 실랑이하며 부대껴야 하는 교사들 마음은 시커멓게 타들어갑니다. 마음의 상처로 다가와 멍이 듭니다. 자꾸만 상처가 깊어집니다. 퇴직 결심의 벼랑 끝에 몰리기도 합니다. 이제라도 '교사 상처'를 보듬어 안아야 합니다. 모두가 머리 맞대고 문제의 근본 원인을 찾아 나가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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