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 경남에서 길을 묻다] (1)새정치민주연합

경남의 야권이 위기다. 지난 6·4 지방선거에서 노동당·녹색당·정의당·통합진보당 등 이른바 진보정당은 몰락했다.

녹색당은 후보를 내지 못했다. 통합진보당은 경남도의원 5명에서 0명, 기초의원 25명에서 6명으로 줄었다. 노동당도 도의원 2명에서 1명, 기초의원 3명에서 2명으로 줄었고, 정의당은 기초의원 후보 3명을 냈지만 모두 떨어졌다.

이런 진보정당과 달리 새정치민주연합은 기초의원이 두 배나 늘고, 광역의회 비례대표 지지율이 10%나 오르는 등 비교적 약진했다.

하지만 약진의 기쁨도 잠시, 미니 총선으로 불린 7·30 재보선에서 참패한 새정치는 당 전체가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이런 위기는 경남도 예외가 아니다. 이대로라면 2016년 총선에서 야권 참패는 불 보듯 뻔하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지방선거 결과는 새누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야권이 너무 못해서 나온 것"이라는 한 야권 성향 유권자 말은 야권 전체가 새겨들어야 할 뼈아픈 지적이다.

야권은 과연 자기반성을 하고 있을까? 경남 도민은 지금 야권에 어느 때보다 진지한 자기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6·4 지방선거 직전인 올 3월 옛 민주당과 안철수 진영의 새정치연합이 전격 합당해 새정치민주연합이 탄생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여러 정치적 상황이 야권에 유리하게 흘러갔지만 지방선거에서 합당 시너지 효과가 없었다. 오히려 뒤이은 7·30 재보선에서는 참패했다.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 사퇴, 박영선 비상대책위원장 체제로 당 위기를 추스르려고 했지만 세월호 특별법 협상 과정에서 공회전하며 정치력 부재 등으로 허약한 야당 이미지만 강화한 꼴이 됐다.

이는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지난달 31일 발표한 정당 지지율 조사에서 창당 최저치인 20.1%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새누리당(45.9%)과 간극이 더 벌어지는 등 위기 수습은 아직 멀어 보인다. 경남의 정치 지형도 예외는 아니다.

6·4 지방선거에서 경남의 결과만 떼놓고 보면 새정치는 도내 제1 야당으로 자리를 확실히 굳히는 고무적인 성과를 냈다.

◇제1 야당 위치 확고히 한 6·4 지방선거 = 옛 민주노동당 등 진보정당이 민주노총과 전국농민회를 중심으로 2000년 초부터 일찌감치 당세를 확장한 탓인지 새정치는 노무현 전 대통령 고향인 김해를 뺀 도내 주요 도시에서 제1 야당이라고 말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이번 지방선거에서 진보정당을 밀어내고 제1 야당으로 자리매김했다.

지역구 도의원을 한 명도 내지 못했지만 비례대표 도의원이 한 명에서 두 명으로 늘었고, 비례대표 지지율도 2010년 17.89%에서 28.86%로 약 11%포인트 상승했다. 또한, 기초의원 당선인은 2010년 17명에서 34명으로 두 배나 늘었다. 지역구 기초의원은 창원 6명, 김해 7명, 사천 2명, 양산 4명, 거제 2명 등으로 21명을 배출했고, 비례대표는 도내 18개 시·군의회 중 남해·산청·의령·함안·함양·합천을 제외한 12개 시·군에서 한 명(창원은 2명)씩 당선돼 여러 지역으로 지지 기반이 확대됐다.

진보정당 핵심 지지 지역이던 옛 창원과 거제에서 당선인·지지율 모두 앞선 점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도지사 후보로 뒤늦게 선거에 뛰어든 김경수 후보가 36%를 득표한 점도 정치적 자산으로 삼을 만하다.

◇'반새누리'에 그치는 정당 이미지 극복 과제 = 이런 약진에도 새정치는 아직 새누리당을 넘어설 대안정당으로는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지방선거 결과도 자체 실력보다는 10년 가까이 도내 제1 야당을 자처한 진보정당의 사분오열과 자멸에 따른 반사이익이라는 시각도 없지 않다. 새정치가 내건 정책이나 인물은 여전히 예전 수준이고, 정책은 오히려 지난 대선 때보다 후퇴했다는 평가도 있다.

최근 세월호 특별법 정국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정치력 부재도 이런 이미지를 더 강화했다. 여기에 새누리당보다 상대적으로 처지는 인물도 문제다. 야권 지지층은 각종 선거 때마다 인지도와 인물에서 이른바 '한 급' 처지는 후보를 애써 선택해야 하는 아쉬움을 겪는다.

경남도당 당직자·정치인·당원 모두 당이 혁신해야 한다는 데는 공감한다. 하지만 그 내용은 제각각이었다. 도당 차원의 숙의는 아직 부족해 보였다.

허성무 경남도당 위원장은 핵심 과제로 공천제도 투명성 확보를 들었다. 허 위원장은 "지방선거와 7·30 재보선 참패의 한 원인이던 전략 공천을 최대한 배제해 '오픈 프라이머리(개방형 국민경선) 제도'를 도입·정착시켜야 하며 이런 공천제도 변화가 계파 정치를 약화시킬 것"이라고 했다.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 후보는 공천제도보다 더 큰 틀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김 전 후보는 "우리 당은 크게 두 가지 변화가 필요하다. 하나는 지역 정당화다. 특히 영남권, 그중에 당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큰 경남·부산에서는 시·도당 역할과 권한을 지금보다 훨씬 많이 줘야 뿌리를 튼튼히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시민참여형 정당으로 변모다. 당원·당직자만 당권을 행사하는 게 아니라 영국 노동당처럼 비당원 시민에게도 정당 참여의 길을 넓혀줘야 조직력 약세를 극복할 수 있다. 이런 변화를 두고 계파별 유·불리를 따져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진보적 가치 강화 목소리 '눈길' = 새정치는 7·30 재보선 참패 뒤 국회에서 당 변화를 모색하는 토론회를 잇달아 열었다. 이 중 기존 진보정당 영역으로만 여겼던 '노동자 정치 참여'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자주 나와 주목할 만하다.

당내 정치인 중 노동현장을 가장 많이 방문한 정동영 상임 고문, 486 대표주자인 이인영 의원 등이 주로 이런 주장을 한다. 이를 통해 새정치로 통합하면서 급격히 보수화한 당헌과 강령, 정책을 진보정당 수준으로 바꾸고 실천하자는 게 핵심이다.

김갑수 한국사회여론연구소장(전 창원시 의창구 위원장)은 "공천제도 변화로 예측 가능한 당 내부 시스템 확립이 절실하다. 또한, 우리 당이 어느 계급·계층을 대변할지 이제는 명확히 해야 한다. 당구성원 모두가 노동자와 자영업자 투쟁 현장에 함께 한 을지로위원회화하는 게 필요하다. 서민 삶의 현장에 당이 있어야 한다. 이런 내용을 당헌·당규에 못 박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경수 전 후보도 "경남도당에도 을지로위원회 같은 상시 기구를 만들어 서민 생활에 다가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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