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절단기 등 동원 진압…곳곳서 충돌·부상자 속출에도 인권위 '뒷짐'

끌려나온 할매들은 "이렇게는 살 수 없다"며 오열했다.

할매들을 지키겠다며 함께했던 수녀들도 사지가 들리고 두건이 벗겨지는 수모를 당했다. 한 수녀는 "이게 어떻게 대한민국이야"라며 울음을 터뜨렸다.

11일 새벽 6시부터 오후 5시까지 진행된 밀양 송전탑 강제철거 현장은 통곡으로 가득했다. 국책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주민들의 생존권을 강압적으로 짓밟은 정부의 '민낯'이 드러났다.

주민들의 '살려 달라'는 애원은 무시됐다. 밀양시는 경찰을 앞세워 부북면 화악산 임도 입구 장동마을, 부북면 평밭마을(129번)과 위양마을(127번), 상동면 고답마을(115번), 단장면 용회마을(101번) 등 5곳 송전탑 반대 농성장을 차례대로 뜯어냈다. 한전은 철탑을 세우기 위한 터 닦기에 들어갔다.

일사천리였다. 목숨을 건 투쟁을 10년째 이어온 노인들은 쇠사슬을 목에 감고 알몸으로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끝장을 내겠다고 달려든 이들을 당하지 못했다. 농성장 한 곳을 '점령'하고 '해체'하는 데 한 시간을 넘기지 않았다.

11일 오전 밀양 송전탑 127·129번 현장으로 올라가는 부북면 장동마을 농성장이 철거됐다. 주민들은 경찰에 둘러싸인 채 포클레인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남석형 기자

129번 현장에 있던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대표 나승구 신부는 "결국은 대국민 사과니 국민안전을 위한다고 한 게 거짓말이라는 걸 그대로 보여줬다. 70~80대 노인들을 무자비하게 끌어내고, 법치라는 게 이런 것인지"라고 말했다. 밀양 765㎸ 송전탑 반대대책위원회 대표 이준한 신부는 "이렇게까지 할 줄 몰랐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행정대집행을 할 수 없는 경찰이 앞장서 절단기, 가위, 칼로 움막을 뜯었다. 밀양시청 공무원들은 경찰 정리가 끝나면 뒤처리를 했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가 권고한 사복경찰 채증문제도 그대로였다. 주민들을 밖으로 내보내는 과정에서도 문제가 있었다. 129번에서 알몸인 할매들을 끌어낼 때 여자경찰이 아니라 남성들이 투입됐다.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변호사 12명이 조를 나눠 행정대집행 과정 위법과 인권침해감시, 주민 연행을 대비해 농성장에 있었다. 그러나 경찰은 철거과정에서 변호사도 끌어냈다. 이정일 변호사는 "행정대집행 절차상 경찰은 현장 안전사고에 대비하는 보조적 역할인데 공무집행방해 아닌 상태에서 농성자를 끌어냈다. 철거는 공무원이 해야 하는데 경찰이 먼저 한 것은 위법이다"며 "고착 자체가 체포행위인데 변호사에게 주민 접근을 막는 자체가 변호인 조력을 침해한 것이다. 알몸인 할머니를 남자들이 끌어낸 것도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인권 침해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경남경찰청 서성목 홍보계장은 "가스통 등 위험물이 있기 때문에 밀양시청과 협의해 바람을 통하게 하려고 천막을 뜯은 것이다"며 "주민의 안전한 격리를 위해 남성이 들어갔고, 인권을 보호하고자 모포를 덮었다"고 밝혔다.

129번 밀양 부북면 평밭마을 송전탑 농성장 강제철거 현장에서 경찰에 끌려나온 수녀들이 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있다. /표세호 기자

이날 강제철거 과정에서 주민 1명이 체포됐다. 특히 다리뼈가 골절되는 등 주민 9명, 수녀 6명, 연대자 3명 등 18명이 병원으로 이송됐다. 경찰은 5명 다쳤다. 127번 현장에서 주민 1명이 숨을 제대로 못 쉬는 상황이었으나 구급차가 20분 뒤에야 도착했다. 이 때문에 응급체계도 갖추지 않고 강제철거를 했다는 원성이 쏟아졌다. 현장을 지켜본 인권위원회 한 조사관은 "처참하다"고 했다. 그러나 조사관 13명이 현장에 배치됐으면서도 인권침해를 막아내지 못했고 소극적이었다.

밀양 대책위원회는 이날 강제철거 과정에 대해 "총체적 불법"이라고 규정했다. 새정치민주연합 경남도당은 "국가가 자행한 폭력 앞에 밀양 어르신의 인권이 무참히 짓밟힌 것이다. 삶의 터전을 지키고자 했던 밀양 어르신은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며 정부에 공사중단과 대화를 촉구했다.

통합진보당 김미희·김재연, 정의당 김제남 국회의원 등 3명이 철거현장을 지켰다. 김제남 의원은 "오늘 박근혜 정부에 송전탑에 반대하는 밀양 주민들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쳐부숴야 할 '적'일 뿐이었다"며 "'살고 싶다'는 처절한 외침조차 귀를 닫은 대통령은 바로 나만 살자고 수백 명 목숨을 외면한 세월호 선장의 또 다른 모습이다"고 말했다.

한전은 이날 농성장을 모두 철거함에 따라 나머지 5기 공사를 거쳐 신고리~북경남 765㎸ 송전선로 공사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그러나 주민들은 농성장이 없어도 저항을 계속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밀양 대책위는 "우리는 오늘 자행된 폭력,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다. 대체 이 나라가 누구의 것인가"라고 물었다. 이어 "싸움은 끝이 아니다. 주민들은 다시 분노와 오기로 똘똘 뭉칠 것이다. 이 싸움의 진실과 정의를 밝히고, 끝까지 주민들을 지키고 지지하고 연대의 손길을 놓지 않는 '밀양 송전탑 시즌 2'를 열어젖힐 것이다"고 밝혔다. 전국대책회의도 이날 오후 7시 한전 서울본부 앞에서 행정대집행 규탄 촛불문화제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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