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또 한번 아래층과 마음이 상한 뒤로 결국 이사를 결심했다. 괜스레 억울한 마음에 한동안 잠이 오질 않았다. 게다가 같은 시기에 학교에서도 부적응 학생 때문에 마음고생을 하느라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쳐 있는데 또 사건이 터지고야 말았다.

아파트 입구에 세워 놓은 비싼 외제차를 받아 버린 것이다.

차 앞을 지나는 '길냥이'를 피하려다 낸 사고였다. 노발대발하는 주인에게 죽을 죄를 지었다며 몇 번을 고개 숙여 사죄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왜 자꾸 이런 일이 나한테 일어나는 거지?' 남들에겐 한번도 일어나지 않을 일들이 연속적으로 나만 강타한다고 생각하자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내렸다.

딸 아이는 쏟아지는 고민거리에다 얼마 전에 치료했던 치아까지 아프기 시작했다. 설상가상, 해야 할 일들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행하게만 느껴졌다.

평소 같으면 누군가에게 이런 '머피의 법칙' 같은 사건들을 나열하며 위안 삼으려 했겠지만 그조차 힘겹게 느껴질 뿐이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불행한 생각들과 해결해야 할 산더미 같은 과제들에 파묻혀 몸속의 모든 에너지가 다 빠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넋나간 사람처럼 있는데 거짓말처럼 오랜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갑자기 목소리가 듣고 싶더라며 전화한 지인에게 두서없이 나의 불행을 쏟아냈다. '그래도 다행이다, 사람은 안 다쳤잖아'라는 한 마디가 들려왔다. 갑자기 온몸에 전류가 흐르는 것만 같았다.

'그렇구나, 사람은 안 다쳤잖아. 유치원 아이들이 하교하는 시간이었는데 사람이라도 있었으면 어쩔 뻔했어? 정말 다행이었구나.'

그렇게 생각하자 거짓말처럼 모든 상황이 고맙고 감사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도 층간 소음으로 인한 범죄가 뉴스에 나왔지만 우리 집 이야기는 아니었고, 한 달여 나를 힘들게 하던 학생 문제만 해도 그 아이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게 아니라 내게 의지하며 나를 붙잡고 있다는 사실이 눈물겹게 감사했다.

사춘기 딸 아이 역시 내게 힘겨운 과제를 안겨 주지만 청천벽력같이 아이를 잃은 많은 부모들 앞에서 어찌 이런 것 따위를 고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세상의 일들은 나에게만 불공평하게 불운을 가져다 주지는 않는다. 단지 나에게 일어난 일들을 나 스스로 한쪽 눈을 감고 보고 있을 뿐이다. 피해자 역할에만 충실한 채 자기 연민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부끄럽기도 하고 즐겁기도 했다. 비록 비싼 비용을 치른 깨달음이었지만 결코 아깝지 않았다. 어마어마한 차량 수리비가 나를 압박하긴 했지만 가만히 세워둔 멀쩡한 차를 받힌 사람의 억울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리라. 게다가 길냥이도 무사했으니 더 감사한 일이다.

   

지금 이 순간부터 하루 하루를 감사하며 보낼 것이라는 즐거운 다짐을 하며 건강하게 잠든 아이의 얼굴을 쓰다듬어 본다.

/이정주(김해분성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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