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사람]서귀포 명소 '중섭공방' 통영에도 연 장창섭 작가

제주도 이중섭 거리는 여행객들이 빼놓지 않고 찾는 명소 중 하나다. 그리고 그곳에 거리만큼 유명한 중섭공방이 있다. 이 공방에서는 천재화가 이중섭의 작품을 활용한 지우개, 명함 꽂이, 열쇠고리 등 다양한 문화상품을 만날 수 있다. 그 중섭공방이 지난 4월 통영에 왔다.

5월의 푸른 하늘과 그보다 더 푸른 통영 바다가 있는 강구안. 화사한 노란색 간판이 유난히 눈에 띈다. 바로 중섭공방 통영점이다. 초록 문을 열고 들어가 장창섭(60) 작가와 부인 이미경(54) 사장을 만났다. 제주도 공방보다 훨씬 널찍한 공간 한편에는 작은 카페도 운영하고 있었다.

"처음 제주도 공방을 만들 때 작은 공간이지만 손님들에게 사랑방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유명세를 타면서 그 역할에 소홀해지게 됐죠. 그래서 이번에는 손님들이 차도 마시고 편안하게 작품 감상하도록 하고 싶어 조금 무리해서 규모를 키웠습니다."

통영 중섭공방에서 만난 장창섭 작가와 아내 이미경 씨. 장 작가는 이곳에서 통영을 주제로 한 작품을 만들어 개인전을 여는 목표도 세웠다고 한다.

장 작가가 공방과 관련된 일을 시작한 것은 30년 전이다. 그때는 작품 활동을 했다기보다 공예사 일을 하면서 인사동에 금속으로 만든 공예품을 납품했다. 어느 날 인사동을 지나다 우연히 한 그림과 마주쳤다.

"그때는 이중섭 작품인지도 몰랐어요. 물고기 두 마리를 잡고 아이가 앉아서 잠을 자는 그림이었는데 그 그림이 정말 행복해 보여서 내가 그 작품명을 '행복'이라고 붙였어요. 동판에 그린 그림이었는데 묘사가 아주 잘 되어 있어 그 그림을 샀죠. 그때부터 그림을 동판에 그리기 시작했어요. 나중에 국립도서관 가서 자료를 찾아봤더니 이중섭 작품이더라고요."

그렇게 서울에서 이중섭 작품으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던 어느 날 면목동 용마산 약수터에 갔다가 길이 미끄러워 망우리 공동묘지 쪽으로 내려왔다. 터덜터덜 걷는데 길 바로 옆에 이중섭의 묘라는 묘비가 있었다. 초라한 그 묘를 보고 장 작가는 순간 굳어버렸다.

"우리나라 예술계에 큰 획을 그은 분인데 그 묘가 너무 초라하지 않나 하는 생각과 한편으론 그분에게 의사도 묻지 않고 작품을 그려 판 것에 대한 미안함이 동시에 들더라고요. 그래서 나름대로 그분에게 은혜를 갚고자 그분을 대중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그는 공예사로 일을 하다 다른 사업으로 손을 뻗기도 했다. 그러던 중 아내와 결혼 초에 했던 약속이 문득 생각났다.

"아내와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임에서 처음 만났어요. 이상하게 많은 사람 중에 아내만 선명하게 보이는 거예요. 첫눈에 반한 건지. 그래서 교제한 지 1년 만에 결혼했어요. 그리고 아내가 몸이 불편해 추위를 많이 타는데 노후에 돈을 많이 벌어 제주도에 가서 살자고 약속했습니다. 사실 약속을 지키기 위해라고 말은 했지만 삶에 지쳐 있던 때에 기왕 이렇게 된 것 약속이라도 지키자는 심정이었죠."

하지만 연고도 없는 곳에서 사업을 하기란 쉽지 않았다. 몇 번 포기하려 했지만 그때마다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한 것은 부인 이미경 사장의 응원이었다.

   
  작품을 만드는 장창섭 작가 뒤로 유리창의 이중섭 작품이 눈에 띈다. 1956년 <문학예술> 10월호에 황순원 작가의 글과 함께 실린 삽화라고 한다. /김해수 기자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무슨 일을 하다가 좌절하거나 실패했을 때 제 탓을 하지 않고 오히려 격려를 해줬어요. 그런 점이 아직도 참 고맙죠."

두 사람은 서로 도와가며 제주도에 정착했고 가게는 1년 만에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4년 동안 잘 키운 공방을 동생 내외에게 맡기고 왜 통영으로 옮겨 왔을까.

장창섭 작가는 새로운 에너지가 필요했다고 한다. 그래서 떠올린 곳이 이중섭 작가가 제주도 다음으로 찾은 통영이었다. 사실 부산을 먼저 찾았지만 통영에서 유명한 작품을 많이 남겨 이중섭과 인연이 깊은 곳이다.

"통영에서 몇 달 지내다 보니 사람들이 예술가들과 인연이 많은 것에 대한 자부심은 있는데 그에 비해 피부에 와 닿는 문화생활을 하고 있지는 못한 것 같아요. 예로 우리 공방이 들어오니까 굉장히 좋아하더란 말이죠."

이들 부부는 제주도에 있을 때 서귀포시에서 표창을 받았던 경험을 말했다.

"당시에 서귀포시에서 이중섭 미술관, 이중섭 거리 잘 만들어 놨는데 사람들이 모이지 않았어요. 그런데 관련된 예술작품을 하는 작가가 들어가서 활동을 하니 사람들이 모였거든요. 예술가들을 한자리 모아둔다고 거리가 조성되는 것이 아니에요. 자발적으로 하나 둘 모여야 해요. 통영에서도 우리 공방을 시작으로 문화거리가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은 통영에 있지만 믿을만한 후임이 있다면 이 공방을 맡기고 이중섭 작가의 자취를 따라 부산으로 가고 싶다는 장창섭 작가. 아내가 허락할 것 같냐는 질문에 "아까도 말했잖아요. 됐나 하면 됐다라니까요"하며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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