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거기고, 거기가 여기였습니다.”

낙동강 살리기 도보순례단 단장으로 1300리 낙동강을 온몸으로 껴안고 마침내 부산에 도착한 수경스님이 부산시민 환영대회에서 하신 말씀이다. 시민대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 속에서 나는 무슨 선문답처럼 들렸던 이 말씀을 곰곰 생각해 보았다. ‘여기가 거기고, 거기가 여기라….’

수경스님은 낙동강 1300리를 도보로 순례하면서 무엇을 보았을까. 황폐한 산하와 죽어 신음하는 낙동강을 보면서 그 파괴된 현장이 이 몸이요, 이 사회라고 생각하신 것일까. 그렇겠다 싶다. 늘 세상만물이 하나의 유기체로 결합되어 있다고 말씀하셨으니까. 그리고 그 말씀은 진리였으며, 진실이니까.

지금 전라북도 서해안의 새만금 간척사업 문제로 시끄럽다. 우리는 세계 3대 갯벌 중의 하나요, 생태계의 보고라는 견해로 사업의 즉각 중단을 요구하고 있고, 농림부와 농업기반공사는 국토확장이다, 식량증산이다 하면서 사업을 강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환경보다 경제적 가치를 우선해야 한다는 논리는 상당부분 설득력을 가지는 듯하다. 그러나 갯벌을 매립해 경작지를 확보한다는 논리에 마음 편안해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갯벌도 국토요, 갯벌에서 생산되는 모든 먹거리도 식량의 가치를 가진다. 뿐만 아니라 갯벌이 가지는 경제적 가치가 경작지에 비해 90배나 된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인정된 바이다. 특히 새만금 갯벌에서 생산되는 조개류는 한국 조개생산량의 30%를 차지한다고 한다. 이러한 생산적 가치를 떠나 새만금 갯벌이 가지는 중요한 가치는 지구 역사와 함께 해온 생태적 가치다. 갯벌은 하루아침에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랜 세월 속에서 생성된 것이기에 주변 생태계가 지속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경남지역 공유수면 매립 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제2차 설명회가 지난 11월17일 마산지방해양수산청에서 개최되었다. 이날 제출된 자료에 의하면 창원·고성·거제 등 35개 지구에 96만평을 매립한다는 계획이다. 이 계획을 액면 그대로 바라본다면 상당부분 환경과 생태를 생각한 듯하다. 도내 지방자치단체는 마산지방해양수산청에 79개 지구에 무려 56.6㎢를 신청했고, 지방청은 총 신청면적의 6%정도만 반영했다고 하니 그럴 듯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계획은 경남의 공유수면 매립 기본계획일 뿐 전국 해안에서 추진되는 공유수면 매립 계획은 실로 엄청날 것이다. 항만건설을 위해 갯벌을 매립한다는 계획은 타당한 듯 보이지만 기존의 항만이 능률적으로, 효과적으로 운영되고 있는지를 먼저 조사해야 한다. 국토확장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갯벌을 매립한다고 주장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국토를 훼손해 왔는지에 대해 진단하고, 반성하는 절차를 거치지 않는 개발사업은 더 이상 용납될 수 없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다닐 때 사회과목 수업을 받으면서 우리는 갯벌을 메워 국토를 확장한다는 정부의 정책에 갈채를 보낸 바 있다. 남해안과 서해안의 리아스식 해안을 직선으로 연결하면 한국의 국토가 두 배로 늘어날 수도 있겠다는 우스꽝스런 생각도 했었다.

지난 30여년 동안 진행된 갯벌간척사업은 그처럼 국민을 기만하면서 감행해온 것이다. 이제 아무리 보잘것 없는 한 뼘 갯벌일지라도 국민적 합의와 동의를 전제하지 않고 매립해서는 안된다. 갯벌은 지구와 민족의 역사를 함께 하면서 우리에게까지 이어온 값진 자연유산이기 때문이다.

여기가 거기고, 거기가 여기라는 수경스님의 말씀은 이처럼 분별없이 잘려나가는 국토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느꼈기 때문이리라. 여기 흐르는 물이 오염되면 저기 흐르는 물도 오염되고, 여기 숲이 병들면 저기 숲도 병든다는 말씀이리라. 아니 더 나아가 저기 한 마리 풀벌레가 신음하면 여기 서 있는 우리 인간도 고통스럽고, 여기 흙 한 줌이 사라지면 저기서 살아가는 인간도 함께 사라진다는 것이리라. 갯벌을 메우고, 거기서 살아가는 생명체를 다치게 하는 것이 바로 우리 스스로를 다치게 하는 것이요, 이 국토와 역사를 병들게 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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