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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것·배운 것 없는 내 인생은 고생이 밑천

[가족인터뷰]딸 권보애가 쓰는 아버지 권명준 이야기

권보애 객원기자 webmaster@idomin.com 2013년 08월 07일 수요일

가난한 집 장남으로 태어나 돈 버는 일이라면 도둑질 빼고는 다 해봤을 거라는 우리 아버지. 무뚝뚝하고 담담한 어투의 아버지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실까? 딸 권보애(30·회사원)가 아버지 권명준(58·기업체 운영) 씨 이야기를 들어봤다.

-아빠는 일찍부터 일했다고 들었는데, 몇 살 때부터 돈을 벌었어요?

"14살 즈음인가? 초등학교 때도 하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졸업하고 오디 따고, 고사리랑 칡 캐고, 나무해다가 팔아서 돈을 벌었어! 어린 나이에 밑천 없이 돈 벌 수 있는 일이 그런 거였어."

-왜 그렇게 일찍부터 돈을 벌었어요? 할아버지·할머니도 계셨고 농사일도 하셨잖아요?

"할아버지가 술 좋아하고, 화투 좋아하고 가족생계에는 관심이 없었어. 농사지어서 추수하면 그날 온 가족이 목을 빼고 기다리는데…. 할아버지는 그 돈으로 날이 새도록 술을 드셨거든. 식구는 많은데 먹고는 살아야겠고, 땅은 산골짜기 비탈에다 볕도 안 드는 곳에 조금밖에 없었어. 다 남의 땅이었지."

-아빠도 어렸으니까 할아버지 원망도 많이 했을 것 같은데, 어땠어요?

   
  내 결혼식 때 아빠와 엄마.  

"어려서는 원망도 많이 했지. 다른 아빠들은 자식들 먹여 살리느라 바쁜데…. 내가 17살 즈음인가? 네 할아버지가 우시며 '너라도 객지 나가서 편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셨어. 그 어린 나이에도 뼈가 시리더라. 그래도 지금은 네 할아버지 살아생전에 '왜 좀 더 따뜻하게 대해 드리지 못했나'라는 후회가 들어. 같이 술도 한 잔씩 하고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 그땐 나도 너무 힘들어서 좋은 거 맛난 것도 못 사드렸지. 술 마시는 게 너무 싫어서 닮지 않으려고 27살까지 술은 입에도 안 댔거든! 그런데 사회생활하니까 그게 아니더라고. 지금은 애주가지만…."

-아빠도 객지에서 살기 힘들었을 텐데 고모·작은 아빠까지 데려다 공부시킬 생각은 어떻게 했어요?

"당시에 남의 형제들 가방 들고 다니는 게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어. 나는 못 배웠지만 동생들만이라도 가르치고 싶었어. 공부도 곧잘 했고 말이다. 그래서 부산 와서 4년쯤 되니깐 자리도 잡히고 해서 네 고모랑 작은 아빠를 데려와서 공부시켰지. 928명 중 1·2등 하는데 그게 보람이었지. 월급 타오면 쌀 사고 네 삼촌·고모 공부하는 데 내고 나면 닭 한 마리랑 오징어 한 마리 사서 온 식구가 먹었지. 외식은커녕 껌 한 통도 돈 아까워서 못 사 먹었거든. 그래서 네 엄마는 월급봉투는 구경도 못 해봤지. 그래도 네 엄마는 그런 것에 성질 한 번 낸 적 없어. 그게 고맙고 미안하지."

-엄마도 힘들었겠다. 근데 엄마랑 결혼은 어떻게 하게 됐어요?

"회사에 12년 정도 근무하니 거기서 연봉도 제일 많고, 성실하고 그러니 사장 조카가 사돈처녀를 소개해 주더라고. 돈 잘 버니 배경은 모르고 말이다. 그래서 엄마도 고생 많이 했지. 워낙 없는 집에 시집와서…."

-아빠가 살면서 제일 행복했던 기억은 뭔가요?

"아들·딸 태어났을 때지 뭐. 바빠서 태어나는 것도 못 보고, 돌봐준 것도 없어 미안하지만, 그래도 그때가 제일 기뻤어."

-제일 힘들었을 때는요?

"연봉이 너무 높아지니까 회사에서도 부담스러워 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퇴사하고 공장을 했지. 가진 것 없이 시작하다 보니 2~3년 후 연달아 부도를 맞으면서 금전적으로 정말 힘들었지. 그때는 너무 힘들어서 물가에 뛰어들려고도 했지만 집에 있는 가족 생각을 하니 그럴 수는 없었어. 그래서 더 열심히 했지. 부도나고 돈이 없어서 공장을 김해로 옮겼어. 집은 창원이니 버스로 출·퇴근했지. 지금은 김해 가는 버스도 많고 길도 좋아졌지만, 그땐 버스를 세 번 정도 갈아타야 했지. 출·퇴근하는데 진이 빠지더라고. 그래서 집도 공장 옆으로 옮겼지. 그때 공장에 찾아오는 사람은 거의 다 빚쟁이였어. 밀린 월급 때문에 멱살도 잡혀봤지. 엄마랑 같이 정말 빚 갚느라 밤낮 휴일도 없이 열심히 살았어. 특히 엄마가 고생했지. 직원들도 같이 살다 보니 밥·빨래·청소·일 모두 엄마 몫이었거든."

-아빠가 늘 말씀하시잖아요? 사람은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이에요. 힘든 시간을 겪으면서 가장 고마운 사람은 누구예요?

"누구긴 누구야, 네 할머니지! 다른 집에서는 남편들이 하는 궂은일을 모두 할머니 혼자 하셨어. 가을에는 부지깽이로 콩을 때려 까서 시장에 팔아 겨울옷도 사주고, 겨울에는 추워서 소나무 가지를 꺾어다 군불로 났지."

-지금까지 살면서 제일 잘했다고 생각되는 일은요?

"배운 거 없고, 가진 거 없이 공장 시작해서 힘든 일도 많았고 부도도 몇 번이나 맞았지. 그러면서도 포기 안 하고 40년 가까이 남들에게 폐 끼친 적 없이 꿋꿋이 여기까지 온 거지. 물론 고생도 말 못하게 했지만 지금 웃을 수 있으니 '고생이 밑천'이 된 셈이지."

-앞으로 바람이 있다면요?

"큰 공장은 아니지만 온전한 내 공장 갖고 우리 가족 행복하게 건강하게 살고 지켜보는 거지. 그거 말고 뭐 있겠냐. 큰 욕심 없다."

어렸을 때는 원래 어른들은 다 우리 엄마·아빠처럼 사는 건 줄 알았다. 또 부부 싸움은 돈 때문에 하는 거고, 다들 힘들게 사는가 보다 했다. 내가 어른이 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느꼈다. 엄마 아빠는 정말 힘들었겠다고 말이다. 감사했다. 다른 게 아니라 이혼 안 하고 살아준 거…. 늘 남들처럼 못 먹이고, 못챙겨 줬다면서 미안해 하시는데, 힘든 환경에서도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지켜 주신 두 분께 감사하다. 앞으로도 우리 옆에서 행복하고 건강하게 계셔서 이제는 내가 두 분께 튼튼한 울타리가 되어드리고 싶다.

/권보애 객원기자

경남건강가정지원센터-경남도민일보 공동기획으로 가족 이야기를 싣습니다. '건강한 가족이 건강한 사회를 만든다'는 취지로 마련한 이 지면에 참여하고 싶은 분은 남석형 (010-3597-1595) 기자에게 연락해주십시오. 원고 보내실 곳 : nam@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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