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엔 두 부류의 사람만 있는 것 같다. 박근혜를 어떻게든 권좌에서 끌어내리고 싶은 자와 어떻게든 지키고자 하는 자. 다르게 표현할 수도 있다. 노무현을 두 번, 세 번 계속 죽여야 사는 자와 반대로 노무현이 영원히 살아야만 자신도 살 수 있는 자. 요즘 국정원, NLL 정국을 보며 드는 생각이다.

국정원 정치 개입 진상과 책임자는 명명백백 밝혀져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것이 박근혜 정권 '정통성' 시비까지 가려면 박근혜 측의 관련 여부 등 더 구체적인 증좌가 나와야 했고 재판과 국정조사 결과도 지켜봐야 했다. 야권 일각은 인내하지 않았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을 적극 지지한 지식인·정치인을 중심으로 '시국선언'을 쏟아냈고 '이명박근혜 게이트' '노무현 NLL 발언 공작설' 등 실체가 희미한 의혹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박근혜 하야' 구호까지 등장했음은 물론이다. 예의 여권은 막가파식 대응으로 맞섰다. 지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불법적 공개가 그것이었다.

모든 상황이 지난 대선을 연상시킨다.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대선공화국이다. 1년 내내 대선만 치르는 나라. 10년 넘게 박근혜(이명박)와 노무현의 권력 쟁투만 계속되는 나라. 네거티브엔 네거티브로, 박근혜 죽이기엔 노무현 죽이기로. 상대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한 승자 없는 치킨게임은 이렇게 무한 반복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과연 누구를 위한 전쟁이냐는 것이다.

지난 6월 25일 오후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국정원 정치 개입 규탄 촛불집회의 한 장면. /연합뉴스

국정원이 '해체' 대상까지 오른 건 인터넷 댓글 등으로 대선 결과를 왜곡했다는 혐의 때문이다. 박원순 등 야권 정치인도 비하했고, 2009년 노무현 서거 때 댓글 공작도 했단다. 딱 거기까지다. 오직 엘리트 정치인들의 명예만 중요할 뿐, 국정원이 사회적 약자들 문제는 어떻게 왜곡했는지, 반대로 재벌 등 강자들은 어떻게 옹호했는지는 관심 밖이다. 국정원이 노동운동 진영을 '국내 내부의 적'으로 규정하고 공작을 펼쳤다는 정황도 나왔지만 누구도 더 깊이 파헤치지 않았다. 바로 얼마 전까지 국민을 공분케 만들었던 '갑의 횡포' 문제, 경제민주화 이슈 등은 왜 여야 모두 지금처럼 사활을 걸고 싸우지 않는지 그것도 궁금할 따름이다.

민주당의 한 주요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국정원이 대통령을 만드는 나라." 정말 그럴까. 일면 진실일 수도 있지만 숱한 약점을 지닌 박근혜에게 대통령 자리를 헌납한 야권의 무능력과 오만은 철저하게 은폐하는 언술이다. 친자본·친재벌적인 정책으로 노동자·서민들을 고통스럽게 했던 참여정부 시절과 분명 다를 것이라는 확신을 주었다면 대선 결과는 달랐을지 모른다. 현 국면도 그렇다. 네거티브만으론 '이명박근혜'조차 꺾을 수 없음이 확인됐다. 박근혜를 뛰어넘는 대안적 모습은 없이 오직 '노무현'만 붙잡고 있다면 국민들은 쉬이 촛불을 들지 않을 것이다.

박근혜를 권좌에서 끌어내리고 싶다면 박 대통령이 내세운 경제민주화, 민생 정책과도 정면으로 맞서 싸워 이겨야 한다. 여권도 마찬가지다. 노무현을 총체적으로 부정하고 싶다면 그가 이 나라에 남긴 정치·사회적 변화 이상 무엇을 해낼 수 있는지 입증해야만 한다. "진정한 비판은 적의 가장 복잡하고 심오한 부분과 맞서는 일이다. 그럴 때 나의 비판 또한 가장 복잡하고 심오한 수준에 이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칼럼 '나의 소중한 적'(경향신문 6월 25일 자) 일부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