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렇게 결혼했어요] 정광석·허지혜 부부

"친구 아는 오빠였어요. 잘 생겼다는 말만 익히 들어왔었죠. 직접 얼굴을 보지 못해 궁금해 하던 찰나, 오빠를 보게 됐죠. 노란 머리에 하얀 얼굴. 물론 잘 생긴 편이었지만 제 스타일은 아니었어요. 못 돼 보였거든요."

지난 2009년 11월에 결혼한 정광석(28)·허지혜(26) 부부는 옛 추억을 되새겨본다. 지혜 씨가 중학교 1학년일 때 처음 만난 둘. 그렇다고 '첫눈에 반하거나 운명을 만났다'는 영화 같은 이야기는 없었다.

"지혜처럼 저도 첫 만남이 딱히 기억에 남지는 않아요. 같이 어울려 놀긴 했지만 그게 다였어요."

하지만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지금. 둘은 한 이불 안에서 아침을 맞이한다. 티격태격 말을 주고받으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부부. 연애 시절보다 지금이 훨씬 더 좋다는 지혜 씨 말에 광석 씨도 환하게 웃는다.

   

흐지부지한 첫 만남이 있은 후 지혜 씨는 중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광석 씨도 무난하게 학교생활을 이어갔다. 서로 잊은 채 살아가길 꼬박 2년. 유학에서 돌아온 지혜 씨는 우연하게 광석 씨 소식을 접하게 된다.

"버스에서 예전에 오빠랑 어울려 놀던 다른 오빠를 만나게 됐죠. 여전히 오빠랑 연락을 주고받는다는 말에 연락처를 물었어요. 유학 갔다 온 후 또래 친구들과 제대로 연락하기 어려웠던 터라 새 친구가 필요했었죠.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하기도 했고요. "

그렇게 어렵사리 연락이 닿았다. 다행히 광석 씨도 지혜 씨를 잊지 않고 있었다. 수줍게 건넨 문자는 통화로, 만남으로 이어졌다. 여전히 어리긴 했지만 첫 만남 때보다 한층 성숙해진 둘. 둘은 자연스레 연락을 주고받으며 만남을 지속했다. 그러던 어느 날 광석 씨가 아무 말 없이 이틀간이나 연락이 끊겼다.

'혹시 무슨 사고를 당한 건 아닐까', '갑자기 연락하기 싫어진 걸까'. 지혜 씨는 온갖 생각에 잠겼다. 이미 오빠 이상의 감정이 싹 터 있었다.

"휴대전화가 고장 났었어요. 저도 지혜에게 연락을 못 해 끙끙 앓았죠. 생각해보니 그동안 서로 말은 안 했지만 사귀는 거나 다름없었어요. 이럴 바에야 진짜 연애를 해 보기로 마음먹었죠. 정식으로 고백했고, 지혜 마음을 얻었어요."

정식 연인이 되고서도 자주 보지는 못했다. 지혜 씨는 여전히 학생이었고, 광석 씨는 고등학교 졸업 후 곧바로 사회로 나간 까닭이다. 대신 주말만큼은 제대로 즐겼다. 함께 여행을 떠나고 문화생활을 즐기며 추억을 쌓아갔다. 그 사이 서로 몰랐던 부분을 알아갔고, 채워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우습지만 오빠에게 아는 여동생이 너무 많은 거예요. 괜한 욕심에 철저하게 단속했죠."

광석 씨도 그때를 떠올려 본다.

"지금도 그렇지만 성격이 정말 꼼꼼해요. 하나 딱 잡으면 그것만 집중해서 하는 스타일이죠. 아는 여자 동생들 연락을 다 끊어버린다든지, 연락 안 했으면 좋겠다고 문자를 남긴다든지…. 물론 그럴 때마다 지혜의 진심 어린 마음을 느꼈죠. 나름 무섭기도 했지만요."

그렇다고 마냥 웃고 넘긴 것은 아니다. 동생들 부탁을 잘 들어주는 광석 씨 모습에 화가 난 지혜 씨가 심한 다툼 끝에 '헤어지자'고 한 것이다. 그 뒤 괜한 자존심에 서로 모른 척하고 지내길 4개월. 하지만 이번에는 광석 씨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집 앞에까지 찾아가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나서 둘은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지혜 씨가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다시 위기가 찾아왔다. 한창 대학 생활에 열중인 지혜 씨와 사회생활에 바쁜 광석 씨. 장거리 연애로 근근이 만남을 이어왔지만 광석 씨는 서서히 멀어져 감을 느꼈다.

"이렇게 떨어져 지내다간 평생 지혜를 못 볼 것 같았어요. 특히 지혜가 어느 미팅에 자리를 채우려 나갔다는 소식도 들었었죠.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죠. 그 길로 새 직장을 구하고 지혜 곁으로 왔어요. 평생 지혜 옆에 있겠다고 다짐했죠."

그렇게 둘은 위기를 넘겼다. 그리고 2009년 9월 광석 씨는 정식으로 프러포즈했다. 촛불 이벤트와 미리 준비한 반지, 청혼가로 마음을 표현했다.

"어릴 적부터 오빠 아닌 다른 사람과는 연락 한 번 제대로 안 해 봤어요. 뒤돌아 보니 오빠가 제 인생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죠. 기분 좋게 받아줬어요. 그때 받았던 반지는 오 년 연애하면서 처음으로 받은 반지였어요. 첫 커플링이 결혼반지가 된 셈이죠."

둘이 결혼한 2009년 11월 29일은 두 사람의 연애 5주년이기도 하다. 여전히 연애의 연장선이겠지만 결혼하고 나서 더욱 사랑이 깊어졌다는 둘. 다른 부부들이 연애하는 기분으로 살아간다면 둘은 현재 진행 중인 결혼 이야기에 더 무게를 뒀다.

"씩씩하게 자라는 우리 아이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야죠. 이제 싸울 이유도, 떨어져 있을 이유도 없어요. 친구를 대신해 몰래 미팅 나갈 필요도 없죠. 사실 어느 자릴 가나 우리 오빠가 최고라 느꼈지만요. 오빠나 저나 지금이 가장 행복해요."

결혼 기사를 매주 월요일 6면에 게재하고 있습니다. 사연을 알리고 싶은 분은 남석형 기자(010-3597-1595)에게 연락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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