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 미술관 문턱 낮췄지만 상업성 더 짙어져

'나도 화가, 팔방미인 뽐내볼까'

'구혜선, 이번 명함은 화가'

'주체할 수 없는 예술 혼, 나는 그림 그리는 연예인'

'나는 스타 화가다, 전시회 잇달아'

연예인 화가 전성시대다. 언론에선 앞다퉈 '연예인 ○○○가 화가로 데뷔한다', '실력이 범상치 않다', '호당 가격이 몇십만 원에 팔렸다' 등 내용을 보도한다.

이들 기사를 보면 연예인들 그림 실력은 매우 뛰어나고, 화가로 인정받을만하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이들이 그린 그림이 정말 화단에서 인정을 받을만하고 또 고가에 팔릴만한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의문점을 풀고자 현재 그림을 그리는 연예인은 누가 있고 또 그들에 대한 평가는 어떤지, 일반인과 미술계 종사자들 의견을 들어봤다.

◇연예인 화가 누가 있나 = 가수 조영남은 그림을 그리는 연예인의 원조다. '화투작가'로 알려진 그는 1973년 서울 인사동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고, 이후 지금까지 40여 차례 개인전과 단체전을 열었다. 조영남은 그림을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다. 고교시절 미술반장을 지낸 것이 전부다. 하지만, 자신을 스스로 화가 겸 가수 즉 '화수(畵手)'라 부르며 아트페어에도 참가하고 미술 서적 <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 등도 펴냈다. 호당 가격은 약 30만 원 정도.

배우 하정우는 2003년부터 그림을 그렸고, 2010년 첫 개인전을 열었다. 그의 아버지인 배우 김용건은 오치균(서양화가) 등을 좋아하는 소문난 컬렉터. 덕분에 하정우는 어렸을 때부터 미술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그는 배우라는 직업을 빗댄 '피에로'를 소재로 한 연작을 주로 선보였다. 이에 대해 김종근 미술평론가는 "경쾌한 표현으로 광대의 본성을 파고드는 날카로움이 보인다"고 평했다. 호당 가격은 약 15만~20만 원 정도.

지난해 한 인터넷교육매체가 꼽은 '연예인 화가 1위'에 오른 배우 구혜선. 2009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지난해 예술의전당에서 두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오는 5월 열리는 국제 아트페어 홍콩 컨템포러리에 초청 작가로 참여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구혜선 작품은 자유분방하고 몽환적인 것이 특징. 디자인적 요소가 적지 않다.

이 밖에 그림을 그리는 연예인으로 배우 김혜수·조재현, 가수 나얼·솔비, 개그맨 임혁필 등이 있다.

   

◇"대중의 관심을 미술로 이끈다" = 연예인이라는 '유명세'와 연예인이 그림도 그린다는 '희소성'은 언론의 주목을 받는다. 연예인 '누구'가 전시회를 연다고 하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고, 대중의 관심은 집중된다.

회사원 최종수(35) 씨는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미술관이나 갤러리를 자주 가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일 년에 한 번 갈까 말까 한다. 만약 가수 조영남이 경남에서 전시를 연다고 하면 호기심과 궁금증에 '한번 가볼까'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미술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시발점'이 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또 다른 회사원 고은주(31) 씨는 "그림도 잘 그리는 연예인을 보면, 예술의 끼는 장르를 초월해 존재하는 것 같다"고 했다.

'미술은 어렵다'고 생각하는 일반인에게 연예인 화가 전시는 미술관 문턱을 낮추고, 예술의 경계를 낮춘다는 의미에서 긍정적이다.

그럼 전시를 여는 미술관이나 갤러리 입장은 어떨까? 최정은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 관장은 "연예인은 명성과 인지도가 있기 때문에 미술을 활성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박재민 갤러리 예당 실장은 "전시 관람문화가 활발하지 않은 경남에서 연예인 화가 전시는 많은 이의 관심을 끌 것이기 때문에 갤러리 입장에선 좋다"는 견해를 밝혔다.

◇"상업적이다" = 오랜 세월 작업에만 매달려온 기성 화가에게 연예인 화가 전시는 달갑지만은 않다. 기성 화가는 연예인이 조금 유명하다는 이유로 어느 날 갑자기 '화가'라 불리고, 작품의 예술성보다는 경제적 가치를 따지는 풍토가 힘겹다.

익명을 요구한 화가 ㄱ 씨는 "연예인이 전시회를 성황리에 개최하고 많은 이슈를 양산하는 것을 볼 때 상대적으로 많은 화가가 허탈감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다"고 고백했다. 또한 "연예인이 그림을 그리는 것을 과도하게 띄워 주는 미디어도 문제다"고 덧붙였다.

화가 ㄴ 씨는 "현대미술에서 미술은 더는 특별한 사람만이 하는 게 아니므로 연예인이 그림을 그린다고 해서 그것을 비판할 것은 못 된다. 안타까운 점은 명성을 빌미로 작품을 팔고, 작업을 쉽게 생각한다는 것이다"고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실제로 연예인 화가가 '연예인'이라는 이름을 떼고 순전히 '화가'로서 작품을 평가받기는 어렵다. 전문적인 실력을 갖추지 않았는데 지나치게 여론몰이를 한다는 점, 작품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다는 점, 조형적으로 완성도 높지는 않다는 점 등이 그 이유다.

이에 대해 박은주 한국예술문화비평가협회 부회장은 "연예인 중 미술전공자가 많고 그들이 그림을 그려서 전시회를 여는 것에 대해선 왈가왈부할 것은 아니다. 문제는 언론이 지나치게 과대포장을 하고, 백화점 등에서 고객 유치를 위해 연예인 화가의 작품을 상업적으로 이용한다는 점이다"면서도 "(대중 문화와 고급 문화 간 경계가 허물어지는 시대인만큼) 화가가 예술성은 물론 상업성도 겸비해야 하는 것이 시대적 상황임을 암시하는 한 사례로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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