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2 주말 드라마 〈내 딸 서영이〉는 제목부터 의미심장하다. 핵심은 '서영이'(이보영 분)가 아니다. '내 딸'이다. 누구든 엄마 뱃속에서 태어나면 누군가의 딸이거나 아들일 수밖에 없다. 즉, 영원히 누군가의 '가족'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행복의 보장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절망의 굴레가 될 수도 있다.

서영은 무능하고 어리석은 아버지와 빚더미와 씨름하다 굴레를 끊어내고 '행복'을 찾기로 결심한다. 부유하고 다정한 우재(이상윤 분)와 일종의 비밀 결혼. 물론 애초부터 '불가능한 미션'이었다. 누가 가족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겠는가. 잊는다고, 숨긴다고, 끊는다고 '내 딸'이라는 낙인이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예의 모두가 가족이라는 자장 안에서 아파하고 괴로워한다. 행복한 척 하지만 서영의 일상은 불안의 연속이다. 아기조차 마음대로 갖지 못한다. 아버지 삼재(천호진 분) 역시 서영처럼 죄책감을 한 움큼 안고 살아가고, 동생 상우(박해진 분)는 누나의 비밀을 지켜주고자 사랑하는 연인과 생이별까지 한다.

〈내 딸 서영이〉에서 주인공 이서영이 아버지를 속이고 결혼하는 장면.

누군가의 행복이 누군가에겐 고통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행복조차 '거짓 행복'일 수밖에 없다는 것. 그것이 우리를 억누르는 자본주의적 인간관계의 실상이다. 친구, 동료는 물론, 가족들끼리 우애마저 집어삼킬 정도로 그 힘은 막강하다.

최근 두 아들 병역 문제와 부동산 편법증여 의혹으로 국무총리 후보에서 낙마한 김용준 인수위원장. 자식들에게 김 위원장은 군 면제에, 엄청난 부까지 안겨준 누구보다 훌륭한 아버지일지 모른다. 하지만 아버지 마음은 편했을까. 조금이라도 양심이 있다면 말이다. 물려줄 거라곤 가난밖에 없는 힘없는 서민들의 박탈감과 경제적 고통도 아버지의 선택과 무관할 수 없다. 이 모든 사실을 알고도 아들들은 진정 행복할 수 있을까?

이혼을 결심한 서영은 "이제 나만을 위해서 살 것"이라며 홀로서기를 선택한다. 안타깝지만 그런다고 달라질 건 없다. 서영은 한국사회가 '이혼녀'에게 부과한 싸늘한 시선과 온갖 불이익과 마주해야만 한다. 우재를 포함한 가족들의 아픔 또한 계속될 것이다.

〈내 딸 서영이〉는 결국 당신의 선택에 대해 묻고 있다. 경제적으로나 인간적으로 가족에 한 톨도 도움이 안 되는 아버지를 어찌할 것인가. 자신을 속이고 부유한 집 아들과 결혼한 딸을 어찌할 것인가. 서영이가 선택한 또 다른 '가족', 즉 우재네 가족의 선택도 중요하다. 아버지의 존재를 까맣게 감춘 위선자이자 거짓말쟁이 '새 가족'을 용서하고 받아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

물론 명료한 정답은 있을 수 없다. 만일 모두가 화해하고 모두가 활짝 웃는, 오순도순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다면 이 드라마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설령 우재네 가족이 서영을 용서하고 서영이가 아버지와 화해를 한다 해도 그렇다. 배신감, 불신, 무능함, 어리석음, 욕심, 가난 이 모든 건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서영이네 가족과 우재네 가족이 평생 자기 몸속에 안고 살아가야 할 떼어낼 수 없는 '핏줄'과도 같은 것이다.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어떤 선택을 하든 결코 대화를 멈춰선 안 된다는 것. 그것이 모든 인간관계를 생존과 소유의 문제로 귀속시키는 이 잔인한 세상에서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몸부림이다. '내 딸 서영이'는 다시 아버지와, 우재와 그리고 세상의 모든 가족과 대화를 시작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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