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갔지만삶·예술향기 남아…자연 속 섬세한 움직임 주목, 상상력·위트 넘쳐

지난 7월 1일, 그가 떠났다. 수줍은 듯 해맑게 웃던 그 미소를 더는 볼 수 없다. 바람에 따라 움직이는 그의 작품처럼 그도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희미한 향기만 남았다. 그는 작업실 침대에서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누구보다 재능있던 작가라 주변에선 슬픔과 안타까움이 동시에 쏟아지고 있다.

백성근 작가는 1971년 고성에서 태어나 부산 동아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했다. 그는 '움직이는 조각' 키네틱 아트(kinetic art)를 20여 년 동안 해왔다. 첫 개인전은 지난 1998년 부산 수영구 민락동 스페이스 월드에서 열렸다. '새-비상을 위한 준비'라는 이름으로.

좀 더 높이, 멀리 날고 싶었던 마음일까? 그는 쇠와 나무, 스테인리스 스틸 등을 재료로 좌우 대칭성이 강한 새를 만들었다.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엄격한 균형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그것은 오직 자연의 힘에 움직였다.

42세에 갑작스레 생을 마감한 '키네틱 아트' 작가 백성근.

백 작가를 20년 동안 알고 지낸 이영준 김해문화의전당 전시팀장은 "백 작가가 키네틱 아트에 집요하게 매달린 이유는 한국 현대조각의 전통에서는 보지 못했던 '자유로움'과 '가벼움'을 그 속에서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연의 의지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의 섬세한 움직임에 주목했다"고 해석한다.

백성근 작가는 순수하고 천진난만했다. 작품 좋다는 말에 그냥 배시시 웃기만 했다. 수줍어했다. 그런 성격은 작품에도 투영됐다.

"너무나 뻔한 명확한 형상을 잡는 일은 재미가 없고, 알아보기 어려운 추상적 작업은 사람들에게 늘 어렵다. 이 두 가지를 아우르는 작업을 한다", "의미보다는 부담 없이 보고 재미를 느끼면 된다"고 줄곧 말한 백 작가는 조각의 엄숙함을 걷어내고 재미와 즐거움을 작품에 심었다.

지난 1995년 마산 돝섬 야외수영장에 설치됐던 '조각배-군무'는 각각의 작품 밑에 닻이 달려서 일정한 공간 안에서 자유로이 떠다닌다. 물의 흐름에 따라 움직이면서도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고 있다.

부산 APEC 나루공원에 설치된 '태고'는 원기둥에 매달린 코뿔 두 개와 몸체의 뼈대가 수영만 바람에 따라 회전한다. 매머드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전혀 무섭지 않다.

'조각배 군무'

그의 작품은 '어디서 본 듯하지만 본 적 없는 것'이다. 백 작가는 푸른 심연, 암흑 속에서 고요히 움직이는, 신비로운 생명체를 만나는, 즐거운 상상을 한다. 그의 상상력은 언제나 힘이 세 관람객의 흥미를 돋운다. 고등학교 친구인 김태욱 씨는 "학교 때부터 만화책을 즐겨 봤다. 대부분 만화책을 빌려서 봤는데 (성)근이는 꼭 만화책을 사서 벽면을 채웠다"며 백 작가의 상상력이 만화책에서 시작됐다고 했다.

지난 2004년 세 번째 개인전이 열렸던 조현화랑에서는 금속재료만을 사용한 이전 작업에서 벗어나 금속과 실의 조합을 선보였다. 유선형의 스테인리스 스틸 뼈대 위에 다양한 색감의 인견사(전통매듭에 쓰는 인조비단실)를 촘촘하게 엮어 올렸다.

당시 조현화랑 큐레이터였던 이영준 팀장은 "작품 그 자체로도 완벽한 균형을 가졌다. 그 균형이 너무도 완벽해 미세한 공기의 흐름에도, 관람객의 부드러운 자극에도 움직였다"고 설명했다. 즉 기계적인 동력이 아닌 '자연의 힘'과 연관이 있었다.

창원시 봉암동 그의 작업실은 현재 굳게 문이 닫혀 있다. 그의 작품을 또다시 볼 수 없을까? 백 작가의 대학교 선배이자 6년 동안 작업실을 함께 쓴 문병탁 작가는 "현재 유작전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비록 백 작가는 가고 없지만, 그의 작품이 또다시 관람객을 즐겁게, 재미있게 북돋아 주길 바라본다.

'군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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