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강한 농업 강소농을 찾아서] (1) 파프리카 재배 농업인 박중묵 씨

FTA·유가 상승 등으로 농촌이 힘겹다. 우리나라는 우수한 농업 기술력을 가지고 있지만, 현장 보급이 미흡하고 관행적으로 농사를 짓는 농가가 많다. 자금력이 부족하거나 한평생 지어온 작물을 선뜻 변경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도전 정신과 끈질긴 노력, 아이디어로 변화와 혁신을 꾀하는 농민들이 있다. 경쟁력 있는 강한 농촌, 강한 농업을 만드는 초석이 되는 강한 농민.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매주 경상남도 농업기술원과 시군 농업기술센터의 추천으로 강소농을 소개한다.

이 남자, 파프리카를 먹지 않는다고 했다.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 산적같이 생겼다. 나쁜 의미는 아니다. 딱 부러진 단단한 덩치다. 인상만큼이나 마음 속까지 '경상도 사나이'인 토종 한국인이라 낯선 파프리카를 싫어하는 것일까? 그런데 생고추도 싫어한다고 했다. 된장에 쿡 눌러 찍은 고추 몇 개로 밥 한 그릇은 뚝딱 할 인상이지만, 특유의 풋내 나는 향이 거슬린다고 했다. 당연히 그럴 수 있다. 식성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니까.

하지만, 이 남자. 파프리카를 키우는 농부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서 파프리카를 재배하는 농업인 박중묵 씨가 수확한 파프리카를 들고 웃고 있다. /김구연 기자

이 남자 이름은 박중묵. 나이 49세. 파프리카 수출업체 가고파수출영농조합 대표를 맡고 있다.

마산 진전면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하지만, 다른 일을 하고 싶었다. 창원대 수학과를 졸업했다. 창원에서 직장생활도 했다. 그런데 부모님 건강이 안 좋아졌다. 귀촌을 결심했다. 1996년의 일이다. 비록 직장생활이라는 '외도'를 했지만, 그는 농사꾼의 아들이었다. 핏줄 속에 농사꾼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전문적인 지식이 없었던 이 남자.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지역 선배 농사꾼들이 당시 영농조합을 결성하고 있었다. 여기에 합류하게 됐다. 개인은 정부 지원을 받기 쉽지 않았다. 조합원 5명으로 당시 마산원예영농조합법인이 설립됐고, 1997년 경상남도 수출농단조성사업 마산진전수출농단 대상자로 확정됐다.

귀촌 후 정부 지원을 받아 유리온실을 짓기까지 2년이 걸렸다. 그동안 농사일을 배웠다. 1998년 시험적으로 토마토를 재배해 국내 출하하다가 첨단 온실에서 부가가치를 향상시킬 수 있는 작물로 눈길을 돌렸다. 시중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파프리카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당시 경남에는 파프리카 농가가 창녕군에 딱 1곳 있을 뿐이었다.

"새로운 작물에 도전하고 싶었습니다. 전문적인 농사일은 처음이었습니다. 어차피 제겐 토마토나 파프리카나 모르긴 매한가지였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 비해 작목 전환이 쉬웠습니다. 무식하니까 용감했죠."

1년간 토마토를 키우고는 이듬해 파프리카로 갈아탔다. 1999년의 일이다. 2000년 첫 수출을 하게 됐다. 당시 국내 시장에 잘 알려지지 않은 파프리카는 전량 일본으로 수출됐다.

창원·마산·진주·의령·함안 등 경남 일대 파프리카 농업인이 모여 새로운 작물인 파프리카를 생산하고 공동판매하기 위해 '경남 파프리카 협의회'를 구성한 것이 1999년. 그 후 파프리카 재배가 확산되면서 지역별로 분리되고, 지금은 박 대표 등 11 농가가 회원으로 '가고파 수출영농조합법인'을 이끌고 있다.

박 대표는 새로운 기술 습득을 위해 매년 네덜란드 PTC+(네덜란드 국제공인농업 교육기관) 전문교육을 다녀온다. 조합과 계약을 맺은 벨기에 전문가를 매월 1회 초청해 회원 농가 컨설팅도 하고 있다.

조합 대표 등의 일로 바쁜 박 대표를 대신해 진전면 이명리의 농장에서 실질적인 농사일을 하는 이는 그의 아내 김재경(47) 씨다. 3년 전까지 직장생활을 하다 농사 규모가 확대되자 같이 농사일에 뛰어들었다. 부인이 많이 힘들겠다는 말에 강하게 맞장구를 치며 말을 쏟아낸다. 평소 미안한 점이 많았던 눈치다.

"아내가 많이 힘들죠. 사실, 부부는 서로 다른 일을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일을 하면 일하다가 힘든 부분이 많은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데, 막상 그 부분을 어떻게 해줄 수가 없잖아요. 그러다 보니 부딪치는 부분도 생기죠."

박 대표의 농장은 3군데.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에 2곳이 있고, 통영에 1곳이 있다. 3곳을 모두 합하면 1만 7520㎡(5300평)에 달한다.

지난해 박 대표는 320t가량을 생산, 100만 달러 이상을 수출해 올 3월 경남도로부터 '100만 불 수출탑'을 받았다.

보통 7월 말 파종하면 11월 중·하순에는 파프리카를 딸 수 있다. 다음 해 7월까지 열매를 맺는다. 파프리카는 땅에 심지 않는다. '암면(일명 하우스 솜)'으로 만든 가로·세로·높이 10㎝짜리 큐브에 파종하고, 비료 등 영양성분을 섞은 물(양액)을 공급한다.

파프리카는 마치 구름을 뚫고 하늘로 자라는 '재크의 콩나무'처럼 줄을 타고 위로 자란다. 박 대표 온실의 높이는 4m. 이곳에서 3m 30㎝까지 키운다.

"작물을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10년 이상 파프리카를 키워왔지만, 환경이나 성장이 똑같은 해가 한 해도 없었습니다. 매일 살펴 작물이 너무 커지면 순 작업으로 많이 안 자라게 하는 등 일조량이나 날씨 등에 맞춰 환경을 가꿔야 합니다. 작물은 손길이 가는 만큼 자랍니다. 경험보다 중요한 것이 관심입니다."

올 8월이면 가고파수출영농조합 대표 임기(3년)가 끝난다.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서 최고가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혼자 잘 먹고 잘 살겠다는 게 아닙니다. 귀농해서 새로 시작하는 사람들이 같이 정착해서 잘 살 수 있도록 도움이 되고 싶은 것이 꿈입니다."

◇추천 이유

△ 송종선(창원시 농업기술센터 서부지도과 원예작물담당주사) 씨 = 박중묵 씨는 수출 파프리카 재배 농민으로, 전문교육을 이수해 축적된 기술로 매년 파프리카 생산량이 늘고 있습니다. 또, 고품질 파프리카를 생산, 수출 증대로 우리 지역의 수출농업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습니다.

[강소농이란]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한국 농업 한계 극복

   
 
  최복경 원장.  

작지만 강한 농업 '강소농'은 경쟁국에 비해 작은 영농 규모를 가진 한국 농업의 한계를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강점으로 탈바꿈시키는 실천 프로젝트입니다.

우수한 농업기술력, IT 등 발달된 주변 과학, 소비 트렌드 변화 등 새로운 기회를 접목해 나가고, 농촌진흥 공무원은 농업 경영체가 요구하는 기술과 경영 등 입체적인 컨설팅을 통해 매년 소득 10%를 향상하도록 지원하는 것입니다.

경영을 혁신할 여정과 의지가 있는 모든 농업인을 대상으로 강소농 신청을 받아, 타 농가의 모델이 될 수 있는 잠재력 있는 경영체 등을 지역 여건이나 특화작목 여건 등을 고려해 강소농으로 선정, 맞춤형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경상남도농업기술원은 매년 강소농을 2000명 육성해 2015년까지 1만 호 강소농을 육성할 계획입니다.

/최복경 경상남도 농업기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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