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이렇게 짓는 것이고, 사람은 이렇게 사는 것입니다.'

요즘 TV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모 아파트 브랜드의 이미지 광고 카피다. 한동안 최고 몸값의 연예인을 앞세워 아파트 브랜드가 곧 신분인 양 계급사회를 조장하고, 이어서 첨단 IT기술이 접목된 기능주의가 유행하는가 싶더니, 급기야 '인간다운 삶'에 주목하는 광고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어차피 감성을 앞세운 상업주의에 불과하겠지만 카피 하나만큼은 기가 막히게 뽑았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한국 사회도 이제 이런 광고가 먹히는 시대가 되었다는 점이다. 원래 그렇게 짓고, 원래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거늘. 참 오랜 세월을 돌고 돌아 왔다. 아닌 게 아니라 최근 들어 건축과 공간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고 정기용 건축가의 생애 마지막 여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말하는 건축가〉의 한 장면.

〈건축학개론〉이라는 생뚱맞은 제목의 멜로 영화가 400만 관객을 돌파하며 대박행진 중이다. 96학번인 주인공 남녀는 건축학개론 수업에서 만나 첫사랑의 추억을 엮어 간다. 연인은 15년 후에 다시 만난다. 여자는 이혼소송 중인 건축주고 남자는 결혼을 앞둔 건축가다. 첫사랑의 재회는 '영화 같은 로맨스' 대신 번듯한 집 한 채를 남긴다. 관객은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에 애달파하기보다는 제주 바다가 한눈에 펼쳐지는 집에 매료된다.

KBS 〈개그콘서트〉의 '풀하우스'라는 코너는 보기에도 답답할 정도로 좁은 방에 엄마와 9남매가 부대끼며 산다. 가난해서 슬프기 이전에 좁아서 슬프다. 한데 이 좁은 공간 자체가 웃음의 소재가 된다. 공간이 인간의 삶에 어떤 비극과 희극을 주는지 보여주는 셈이다.

〈남자의 자격〉에서는 '남자 건축을 말하다'라는 미션을 수행했다. 7명의 멤버에게 각자가 생각하는 집을 모형으로 제작하도록 한다. 멤버들은 '저 푸른 초원 위의 그림 같은 집' 대신 자신의 꿈과 소망이 담긴 기발한 집을 선보인다.

건축과 공간에 대한 대중문화의 시선은 다큐멘터리 영화 〈말하는 건축가〉에 이르러 그 격을 달리한다. 〈말하는 건축가〉는 공공건축의 대가인 고 정기용 건축가의 생애 마지막 여정을 다루었다. 고인은 "건축가는 집을 짓는 사람이 아니라 문화를 생산하는 사람, 한 시대를 걱정하는 사람, 한 사회의 모순을 지적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소명의식을 30여 채에 이르는 무주프로젝트, 계원조형예술대, 기적의 도서관,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봉하마을 사저 등을 통해 구현했다.

뜻밖에도 생의 마지막에 건축가에게 허락된 공간은 102㎡(31평)짜리 월세 다세대주택이 전부였다. 하지만 생전에 고인은 '나의 집은 나의 시선이 닿는 데까지'라며 본인의 집을 100만 평이라 소개했다. 그러고는 건넛방 창가를 통해 거실로 내려앉은 한 줄 빛을 보며 감동한다. 관객들은 그 짧은 순간을 통해 건축가의 철학을 이해한다.

건축이 변하고 있다. 올림픽 구호처럼 더 넓게, 더 높이, 더 근사하게를 지향하던 건축이 인간을 위한 공간을 지향한다. 입는 것(衣)과 먹는 것(食)이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라면, 공간(住)은 보다 공공적이고 문화적인 차원의 문제다.

'그림 같은 집'보다는 사람이 머물러도 좋을 공간을 그려보자. 나의 삶이, 나아가 공동체의 수준이 달라진다. 담장을 허무는 사소한 시도만으로도 도시의 풍경은 바뀐다. 건축은 결국 어디서 살 것이냐보다는 어떻게 살 것이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그래서 건축은 지극히 인문학적이다.

/박상현 맛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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