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년 95세…마산 출신, , , 등 작사

<산장의 여인>, <소양강 처녀>, <울고 넘는 박달재> 등을 작사한 반야월(半夜月·본명 박창오) 씨가 26일 오후 3시 20분께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5세.

반야월 씨는 1917년 마산에서 태어나 20대 초반 1937년 충북 청주 삼촌 댁 양복점에서 일하다 전국가요음악 콩쿠르에서 1등을 하면서 가수 겸 작곡가의 길을 걷게 됐다. 1938년 태평레코드사 전속가수로 생활을 하면서 '진방남'(진나라의 꽃다운 사나이)이라는 예명을 썼고, <불효자는 웁니다> 등으로 유명해졌다. 한국전쟁 직후 마산 결핵병원에 위문 공연을 왔다가 인근 산 속 병동에서 지내던 여인을 보고 <산장의 여인>을 작곡하기도 했다. 반 씨는 평생 5000여 곡을 작사했다. 1942년 <넋두리 이십 년>, <꽃마차> 등으로 작사가로 본격적으로 활동하면서, '밤에 뜬 반달'이라는 뜻의 '반야월'이라는 이름을 썼다. 그가 지은 <울고 넘는 박달재>, <삼천포 아가씨>, <만리포 사랑> 등은 전국 14곳에 노래비로도 만들어졌다.

지난해 11월 〈경남도민일보〉와 인터뷰에서 환하게 웃던 고 반야월 선생. /경남도민일보 DB

고인은 지난해 11월 생전 마지막 인터뷰가 된 <경남도민일보>와 인터뷰에서 "가요계 73년 동안 기쁨은 적고, 슬픔이 많았다. 그래서 슬픈 노래를 많이 지었다. 슬픔을 극복하고, 오래 살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고인은 과거 <결전 태평양>, <일억 총 진군>과 같은 군국가요 작사에 참여한 친일 행적으로 지난 2008년 <친일인명사전>에 올랐지만, 지난 2010년 6월 이주영 한나라당 의원 초청간담회에서 공개적으로 이에 대해 사과의 뜻을 밝혔다.

고인의 셋째 딸 박희라(59) 씨는 "무슨 말을 하더라도 핑계다. 있었던 것은 어쩔 수 없이 인정을 하고, 공개적으로 사과하셨다"고 말했다.

고인은 고향에서 열린 반야월가요제로 속앓이를 하기도 했다. 한국연예협회 마산지부가 지난 1994년부터 2002년까지 가요제를 열었고, 이후 마산MBC가 2006년 가요제를 다시 열었지만 양측의 주최권 공방이 오가다 중단됐다.

반 씨는 별세 전까지 한국전통가요사랑뿌리회 회장으로, 각종 노래 대회 등의 대외활동을 하며 지냈다. 한국전통가요사랑뿌리회는 한국인이 최초로 작사·작곡을 한, 1932년 발표된 대중가요 <황성옛터>부터 잊힌 작사가, 작곡가, 가수를 찾는 모임이다. 가수로도 활동한 경력이 있는 박희라 씨가 고인을 모시고, 각종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도왔다.

고인은 지난 22일 내년에 준공할 충북 제천시의 한국가요사 기념관 건립을 위해 음악 관련 소장품 158종을 무상으로 기증하기도 했다. 한국가요사 기념관에는 반야월 전시관도 포함돼 있다.

박희라 씨는 "아버지는 평소 지병도 없이 정정하셨다. 오늘 새벽에 갑자기 심장 대동맥이 터졌는데, 회복하지 못하셨다. 얼마 전 제천 박달재에 들렀는데, 박달재가 예전과 달라졌다며 안타까워하시던 모습이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 됐다. 생전에 박달재에서 수목장을 하길 원하셨는데, 제천의 한국가요사기념관이 내년 10월 준공이어서 지금 공사가 한창인 탓에 바로 그리로 모시기는 어려울 것 같다. 우선은 가족과 논의해서 다른 곳에 모시려고 한다. 지금 가족이 미국에서 오는 중이어서 장례 일정, 장지를 확정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고인의 유족으로는 부인 윤경분(93), 딸 미라(작사가·68)·애라(주부·62)·희라(작곡가·59)·보라(주부·55), 아들 미호(작곡가·66)·민호(작곡가·53)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시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이다. 장례는 한국가요작가협회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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