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 창동이 겨우 예술촌조성으로 재생된다고 말씀하시면, '참 천진하시다!'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아직 출발도 하지 못한 창동예술촌의 미래에 대해서 미리 염려하는 것이 기우이길 바라지만 예술이라는 이름이 제물이 된 까닭에 그 그늘에 있는 자로서 미리 변명을 준비하고 있다고 봐 주시면 고맙겠다.

창동예술촌은 상당한 자원과 권한을 위임하는 혁신적인 도시재생프로그램도 아니고, 지속 가능한 캠페인도 아녀서 미리 염려하는 것이고, 예술촌에 입주하는 작가들에게 2년이라는 한정된 기간을 배려하면서 공간 인테리어는 입주작가들에게 부담을 지우고 있고, 입주작가들과 관람객들의 상호교류 프로그램도 여의치 않기 때문에 미리 염려하는 것이다.

마산 창동은 20세기 다른 근대도시처럼 고도경제성장기라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호황을 누렸다가 시대의 흐름과 산업구조의 변화, 신도시 창원으로의 인구이동으로 상대적으로 공동화가 진행되고 있는 곳이다. 그래서 이 구도심을 살리기 위한 도시재생은 새로운 기능을 도입하고 창출함으로써 경제적·사회적·물리적으로 부흥시키는 장기적인 사업이어야 하고, 그런 만큼 많은 자원을 지원해야 하는 사업이기도 하다. 물론 이유는 충분하다. 마산에서 창동은 창동 이상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여전히 창동의 부흥이 마산의 부흥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재생(再生·regeneration)이라고 하면 개체의 일부분이 상실되었을 때 그것에 해당하는 부분이 보충되고 개체성을 유지하는 현상을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마산 창동에서 재생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거리인가, 시장인가, 문화인가? 창동 프로젝트가 살려야 하는 것이 예술인가? 아니면 상권인가? 상권이라면 문화콘텐츠가 되는 예술인들에게 마땅히 적절한 배려가 따라야 한다. 문화상품을 팔려면 프로그램도 알차야 한다. 프로그램의 부재는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고 볼거리 제공이 아닌 일회성 구경거리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지금의 예산과 기간으로 마산 창동에 새로운 기능인 예술을 도입하고 창출함으로써 물리적으로 부흥시키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혹여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창동 부흥을 도모해보았지만, 예술로는 어렵더라는 결론을 만약에 얻게 된다면 마땅히 지원 부족을 탓해주시라는 말씀을 드린다.

   
 

마리안 페이스풀의 As Tears go by라는 노래는 흐르는 눈물에 대한 노래다. 듣는 사람마다 해석이 다르겠지만 흐르는 그 눈물은 아마도 돌아갈 수 없는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과 회한의 눈물일 것이다. 희망은 '희망이 있다고 믿는 능력'의 산물이라면, 아직도 많은 마산 사람들에게 창동은 추억 이상이며, 실현 가능한 희망이다.

/황무현(조각가)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