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렇게 결혼했어요] 오은정(33)·이주윤(33) 부부

6~7년 전 일이다. 남자, 연애 한 번 해보겠다고 회사 친구를 좀 들볶았다. 그냥 예사로 넘겼던 친구, 요구가 잦아지자 결국 초등학교 동창 한 명을 떠올린다.

"은정아, 부담 갖지 말고 한 번 만나 봐라. 그냥 편하게 저녁이나 한 끼 하자."

오은정(33·사진 왼쪽) 씨는 오랜만에 동창과 저녁 한 끼 한다 생각하고 허락한다. 그런데 그 남자, 약속 시각이 한참 지났는데도 나타나지 않는다.

"사람이 기본이 안 돼 있잖아요. 기분이 많이 나빴지요. 소개팅이고 뭐고 그냥 밥이나 먹고 가자 생각했어요."

한참 시간이 흘러서야 헐레벌떡 그 남자가 들어온다. 그리고 고작 한다는 변명이….

   
 

"깜박 잠이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어이가 없었지요. 동창 직장 동료니까, 그리고 계속 볼 사람도 아니다 싶어 그냥 좋게 넘기자 했어요. 그리고 미련 없이 돌아섰지요."

돼먹지 못한 사람으로 도장 찍힌 남자 이름은 이주윤(33)이었다. 첫 만남부터 은정 씨에게 점수는커녕 채점조차 들어가지 못한 주윤 씨, 그래도 근성(?)은 있었다. 다음날부터 주윤 씨는 은정 씨에게 끊임없이 전화를 하기 시작한다.

"계속 만나자고 하더라고요. 아마 두세 달 정도 그랬을 걸요. 제가 일 때문에 바쁘다고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피했어요. 그 정도 하면 알아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첫인상부터 좋지 않았던 주윤 씨는 졸지에 눈치조차 없는 사람이 됐다. 은정 씨는 급기야 시간 나면 전화할 테니 연락을 하지 말라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이 눈치 없는 남자, 매일 전화할 테니 시간 나면 만나자고 답한다. 그리고 은정 씨와 주윤 씨는 약속을 정한다. 주윤 씨 처지에서는 끈기로 얻은 열매였지만, 은정 씨는 확실하게 관계를 정리하고자 허락한 만남이었다.

"보통 그렇게 만나면 저녁 먹었는지, 그런 것부터 물어야 하지 않나요? 바로 술부터 마시자고 하더라고요. 좋다, 시간도 오래 끌 것 없겠다 싶어 술 한 잔 했지요. 그리고 집에 데려다 준다는 것도 끝까지 마다했어요."

그렇게 털어버리고 싶었던 남자에게 다음날부터 또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싫다고, 됐다고 하다가 겨우 만나면 술 한 잔 하고, 또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가 만나면 술 한 잔 하고…. 그렇게 함께 보내는 시간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만나기만 하면 술 한 잔 하자던 주윤 씨 주량은 은정 씨가 보기에 약한 쪽이었다. 물론, 그 덕분에 주윤 씨 어머니, 즉 지금 시어머니와 대면이 빨라지기는 했지만….

"술 마시고 헤어졌는데 만취가 돼서 집에서 난리(?)를 쳤나 봐요. 그때 시어머니께서 저에게 전화를 했지요. 술이 떡이 됐는데 계속 네 이름을 부르니 잠깐 와 줄 수 없느냐고…."

은정 씨는 그렇게 주윤 씨 어머니를 만났고, 주윤 씨 어머니는 처음부터 은정 씨를 마음에 들어 했다. 은정 씨는 지금도 주윤 씨보다 시어머니와 쌓은 정 때문에 결혼까지 왔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주윤 씨 어머니는 아들과 예비 며느리가 29살이 됐을 때부터 결혼했으면 했다.

"제가 대놓고 얘기했어요. 주윤 씨 직장도 변변찮고 집도 없고 아직은 준비가 덜 됐다면서, 또 아홉수에는 결혼하는 거 아니라고 버텼지요."

31살이 되자 시어머니 결혼 재촉은 더욱 잦아졌다. 주윤 씨 어머니는 은정 씨 부모님을 만나야겠다는 뜻을 전했다. 그리고 결국 주윤 씨와 은정 씨가 살 집까지 준비하고 결혼을 밀어붙였다. 그리고 지난해 가을 주윤 씨와 은정 씨는 가정을 이룬다.

"정이 많이 들었지요. 또 나이가 차니까 선을 보라는 얘기도 많이 들었는데 언제 사람을 만나서 정이 들고, 그런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게 안 되겠더라고요. 결국, 좋으니까 결혼했겠지요."

주윤 씨는 최근 남들 보기에 더 번듯한 사람이 되고 싶다며 3년째 시험을 준비 중이다. 공부만 하겠다는 제안은 은정 씨가 단호하게 거절해 일과 공부를 함께 하고 있다. 신랑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을 부탁했다.

"담배 좀 끊었으면 좋겠어요. 술은 저도 마시니까 이해하지만 담배를 그렇게 싫은 소리 들어가며 피울 이유가 없을 것 같은데…. 그리고 빨래는 빨래통에! 세탁기를 돌리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빨래통에 넣으라는 건데 아무 데나 옷을 벗어요. 남자들은 다 그렇다면서…. 정말 다 그렇나요?"

절대 다 그렇지 않다. 주윤 씨는 담배도 끊고, 빨래는 반드시 빨래통에 넣어야 할 듯하다. 험담 잔뜩 했지만, 통화가 끝나고 문자로 절대 이 말은 빼지 말라고 당부하던 신부를 위해서.

"많이 사랑한다고 전해주세요."

※결혼 기사를 매주 월요일 6면에 게재하고 있습니다.

사연을 알리고 싶은 분은 이승환 기자(010 3593 5214)에게 연락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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