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속 생태] (47) 기러기

우리 반 아이들과 우포늪에 갔을 때 바로 눈앞에 기러기가 도망도 가지 않고 먹이를 먹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망원경으로 기러기 눈을 보여주었더니 아이들이 그만 기러기에게 반하고 말았다. 새의 맑은 눈을 보고 나면 마법에 빠져들고 만다.

주남저수지 아래 논에는 양계장에서 풀어놓은 닭보다 더 많은 기러기가 쉬고 있고 기러기를 대한민국에서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망원경 없이 맨눈으로도 기러기를 볼 수 있는 곳이 주남과 우포다.

경남의 대표적인 자연생태 스토리와 아이디어를 찾는다면 아마 기러기가 아닐까?

◇너무나 친숙하지만 본 적이 없는 새, 기러기

   
 

어려서 좋아했던 만화영화 닐스의 모험에서 거위 몰텐과 닐스가 기러기들과 함께 여행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기러기를 일찍부터 알았다. 하지만 정작 야생 기러기를 눈으로 보지 못한 사람이 너무 많다.

동네 친구들과 '쎄쎄세'를 하면서 일본 동요 "아침 바람 찬 바람에 울고 가는 저 기러기에게 엽서 한 장 써 붙이는" 기러기의 메신저 기능을 노래와 율동으로 익혔다. 왜 우체국은 기러기가 아니라 제비를 마스코트로 했을까? 하고 잠시 의문을 품어보지만 우리는 다시 기러기를 찾아 떠난다. 개구리 왕눈이를 보고 자란 어린이는 습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닐스의 대모험을 보고 자란 어린이는 철새를 좋아하는 애조가로 자랐다.

"달 밝은 가을밤에 기러기들이 찬 서리 맞으면서 어디론가 가나요? 고단한 날개 쉬어 가라고 갈대들이 손을 저어 기러기를 부르네." 학교에서 배운 기러기 노래로 우리는 기러기가 겨울이 되면 찾아오는 겨울철새임을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다.

영화 아름다운 비행을 보고 습지와 철새는 보호해야 하는 것이란 걸 알게 되지만 아직은 먹고 사는 것이 먼저다. 아기 기러기의 엄마가 되어 행글라이더를 타고 목숨을 건 대이동을 하는 것을 보고 감동받으며 습지를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아직은 사람 입에 풀칠하는 것이 먼저라고 애써 부인한다. 새만금을 매립하고 4대강을 망쳐도 건설 경기를 살려 경제를 살리는 것이 더 급하다고 생각해서 한 표를 찍고 만다.

만화영화 <닐스의 모험>의 한 장면.

◇기러기 아빠

나무 기러기를 상 위에 올려놓고 결혼식을 하진 못했지만 사랑하는 임과 함께 기러기처럼 지조와 절개를 지키며 한 평생 살아가고자 했으나 어느 순간 기러기 아빠가 되고 만다.

기러기 아빠라는 말이 나온 이유는 기러기는 홀로 되면 평생 재혼을 하지 않고 새끼들을 극진히 키우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가족과 어쩔 수 없이 떨어져 살아야 하는 모습이 부부애와 가족애가 좋은 기러기를 닮았다는 것이다. 물론 야생 기러기가 진짜 그렇다기보다는 사람의 희망사항이 기러기에게 투사된 것이다.

기러기 아빠에서 변형되어 나온 아빠로 독수리 아빠, 펭귄아빠, 참새 아빠가 있다. 독수리 아빠는 재력이 든든해서 언제라도 비행기 타고 외국에 아내와 아이를 보러 가는 아빠다. 기러기 아빠는 1년에 한 번 아이와 아내를 만나러 가는 아빠인데 겨울 철새인 기러기에 빗대어 표현했다. 펭귄 아빠는 비행기 삯과 유학비용 대기도 빠듯해 비행기 티켓값이 없어 이산가족으로 사는 아빠다. 날개가 있어도 날지 못하는 펭귄을 빗대어 펭귄 아빠가 나왔다. 참새 아빠는 해외 유학은 꿈도 못 꾸고 강남에 오피스텔, 원룸 하나 얻어 아이 유학 보내는 아빠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빠들은 애들 학원비 대기도 빠듯한데 나라를 경영하는 사람들은 기러기 아빠 타령이다.

짝 잃은 외기러기가 되어 저녁이면 동양화 기러기와 친하게 지낸다. 어른이 되고 화투짝 동양화를 감상하면서 우리는 기러기 세 마리가 그려진 패를 받으면 초반부터 초심을 잃고 5점을 꿈꾸며 흔들리기 시작한다. 화투도 일본에서 들어온 것이고 노름이라 생각하지만 8광 고도리 패를 잡고 나면 눈과 귀가 멀어버린다.

8월 보름 일본화투 원본.

◇기러기 리더십

요즘엔 기러기 리더십을 배우려고 하는 이가 많다. 누구나 잘 알 듯이 기러기는 대장이 V 자 맨 앞에 서서 뒤에 따라오는 기러기들이 편하게 날 수 있도록 하고 길안내를 한다. 그런데 대장 한 마리만 늘 앞에 서는 것이 아니고 대장이 힘들면 다른 기러기들이 교대를 해주면서 다 함께 리더가 된다. 결국 모든 기러기가 번갈아 가며 대장이 된다.

요즘처럼 모든 것이 인터넷에서 바로 바로 소통이 모아지는 사회에선 시민 누구나 사회의 리더가 될 수 있다. 엄청 빨리 변하고 바뀌는 세상에서 슬기롭게 살아가려면 기러기 편대처럼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소중한 리더가 되고 수평적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정대수(함안 중앙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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