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렇게 사랑했어요] 진위웅·황혜진 부부

하르도노 스단도(Hartono Sutanto). 이 이름을 몇 번이나 되뇌었다. 한 글자씩 읽어달라고 했고, 발음도 몇 차례 들었다. 그래도 귀에 쏙 들어오지는 않았다. 우리 이름으로 진위웅(33) 씨. 지난 11월 24일 황혜진(33) 씨와 결혼한 화교 3세 인도네시아인이다.

"인도네시아에서 화교에 대한 차별이 심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한자 이름을 인도네시아식으로 바꿔서 쓰지요."

설명을 듣고서야 복잡한 이름 얼개가 그려졌다. 그러니까 한자 이름을 우리식으로 발음하면 '진위웅'이 되는 것이다. '우리 이렇게 결혼했어요'에 처음 등장한 외국인이다. 황혜진 씨에게 당장 첫 만남에 대해 물었다.

진위웅(33)·황혜진(33) 부부

"2002년 9월에 처음 만났어요. 제가 부산외국어대학에 다니다가 중국 화중과학기술대학 중문과에 편입을 했어요. 그때 남편을 처음 만났지요. 남편은 학사 마치고 석사 1학년 과정을 하고 있었고 저는 2학년으로 편입했어요."

처음 만난 위웅 씨는 한국말을 곧잘 했다. 2001년 한국에서 한 달 정도 지내고 나서 나중에 답답해서 한국말을 6개월 정도 따로 공부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혜진 씨가 위웅 씨에게 각별한 감정을 느꼈던 것은 아니다. 교내 유학생들끼리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았고 위웅 씨는 많은 친구 중에 한 명이었다.

"특별한 감정은 없었어요. 그냥 계속 좋은 친구로 지냈던 것 같아요. 유학생들은 기숙사 생활을 하니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았고 남편과는 교내 헬스클럽에서 자주 만나면서 친해졌던 것 같아요."

혜진 씨 감정은 그 정도였지만 위웅 씨는 조금 달랐다. 실제 위웅 씨는 혜진 씨를 만난 지 오래 지나지 않아 진지하게 사귈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별다른 확신이 없던 혜진 씨는 제안을 거절한다. 이후 결혼을 결정하기까지 위웅 씨는 혜진 씨에게 비슷한 제안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9년 남짓 그저 늘 혜진 씨 주변에 있었을 뿐이다. 지나고 보면 위웅 씨는 나름대로 장기전(?)을 펼친 셈이다.

"그러고 보니 계속 함께 지냈네요. 2005년 졸업하고 남편과 독일 친구 한 명이 중국에서 창업을 했어요. 계속 함께 일을 했지요. 무역업인데 지금도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3명이 함께 창업? 하지만, 흔히 생각하는 '동업'과는 다른 의미였다. 3명이 공동으로 법인을 만들었을 뿐 각자 맡은 프로젝트에 따라 수익을 배분하는 형식이다. 같은 회사 이름으로 묶여있을 뿐, 개인이 맡는 프로젝트 중심으로 돌아가는 형태였다. 어쨌든 위웅 씨와 혜진 씨 연은 그렇게 꾸준하게 이어진다. 그리고 누가 먼저 시작이라고 할 것도 없이 혜진 씨와 위웅 씨는 점점 가까워졌다.

"연애를 하게 된 계기라고 할만 한 게 없네요. 어떻게 늘 같이 있다 보니 그렇게 됐더라고요. 늘 함께 지내다 보니 저도 모르게 마음을 열게 됐던 것 같고요."

장기전(?)의 효과라고 할 수 있겠다. 사람 관계는 적극적인 돌진보다 끝없는 인내가 더 효과적인 때도 있다. 그리고 오랜 기간 위웅 씨는 혜진 씨에게 믿음을 심어줬다.

"저는 사람에게 이것저것 간섭하고 요구를 하는 편이에요. 남편은 그런 게 전혀 없어요. 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지요. 그대로 인정해주고…. 이게 당시에는 모르겠는데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더라고요."

위웅 씨는 올해 3월 혜진 씨에게 프러포즈를 했다. 하지만, 혜진 씨는 거절했다. 아직 준비가 덜 됐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위웅 씨는 다그치지 않았다. 기다렸다가 10월이 되자 다시 프러포즈를 했다. 혜진 씨도 더는 미룰 이유가 없었다.

"결혼을 한다면 이 사람과 해야 한다는 생각은 했어요. 다만, 결혼 준비가 덜 됐다고 생각했지요. 사람에 대한 불신은 전혀 없었어요."

인도네시아 사위를 맞는 혜진 씨 부모님은 어땠을까. 혜진 씨 어머니는 얼굴도 보지 않겠다며 선을 그었다. 원래 잘라서 말하는 법이 없는 아버지는 그저 묵묵하게 지켜보기만 했다. 혜진 씨는 어머니에게 "마음고생은 하지 않고 살 수 있을 것 같다"며 설득했다. 어머니는 얼굴은 한 번 보겠다고 했다.

"동생이 결혼할 때 남편이 한국에 왔었어요. 아버지께서 그때 얼굴을 처음 봤는데 '얼굴에 착한 사람이라고 써놓았더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이후로는 다른 말씀이 없으셨어요."

'착한 사람'이라고 써놓고 다니는 얼굴, 마음을 열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력, 뭐 하나 다그치는 법이 없는 마음 넓은 위웅 씨. 그런 남편에게 혜진 씨는 '하나뿐'이라며 불만 한 가지를 전했다.

"술을 너무 좋아해요. 술을 절대 거절하지 않아요. 그렇다고 술버릇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혜진 씨는 아직 가족계획이 없다고 했다. 다만, 인도네시아는 자녀 4명이 기본이라고 한다. 혜진 씨는 곧 중국으로 가서 위웅 씨와 하던 사업을 계속할 계획이다.

결혼 기사를 매주 월요일 6면에 게재하고 있습니다.

사연을 알리고 싶은 분은 이승환 기자(010 3593 5214)에게 연락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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