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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하라면 못 하는 일, 그저 좋아서…

[피플 파워] 대규모 자선공연 기획하는 색소폰 연주자 권종수 씨

이승환 기자 hwan@idomin.com 입력 : 2011-12-10 08:45:47 토     노출 : 2011-12-10 08:45:47 토

권종수(59) 씨 공연을 처음 접한 것은 지난 7월이었다. 창원시 의창구 동읍공설운동장에서 열린 '현지야 사랑해! 희망 콘서트' 무대다. 모세포종양을 앓는 한 살배기 윤현지 양을 돕고자 마련한 행사였다. 3시간 남짓 이어진 그날 행사에서 권종수 씨는 마지막 공연을 맡았다. 앞서 2시간 동안 이어진 공연 때문인지 무대와 객석 사이 분위기는 시작 때보다 늘어졌다. 권종수 씨는 무대 전체를 활용하는 다양한 퍼포먼스와 애절한 연주를 선보였다. 밤 공기를 가르는 시원한 색소폰 음색과 웅장한 타악기 연주는 처진 분위기를 곧 추슬렀다. 그리고 2000명이 넘는 관객들에게 기어이 갈채를 받아냈다.

최근 권종수 씨 공연을 알리는 홍보물을 봤을 때 그날 공연이 떠올랐다. '색소폰 권종수 콘서트'라는 제목 아래 '자선공연'이라는 글귀가 보였다. 창원시 장애인, 소년·소녀가장, 고엽제 유가족을 돕고자 준비한 공연이었다. 가수 주현미 씨, 진행자 이용식 씨, 석훈이 이름도 보였다. 하지만, 눈길은 곧 홍보물 아래쪽으로 쏠렸다. '본인 공연만 고집하는 가수 나훈아도 자리 없어 조명실(부스)에서 관람한 공연'이라는 글귀 때문이다. 나훈아? 자기 공연 알리겠다고 그냥 쓸 수 있는 이름은 아니지 않은가. 홍보물을 들고 권종수 씨를 찾았다. 그는 창원시 대산면 모산리에 산다. 대산면은 단감이 유명하다.

◇"시민들이 잊지 못할 공연 만들 것" = 권종수 씨는 최근 일주일에 2~3일 정도는 서울에서 지낸다. 10월 28일에 있을 자선공연 준비 때문이다. 무대 출연진만 100명에 이르는 대규모 공연이다. 만족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고자 연출, 연주, 녹음 등을 출연진과 계속 점검하고 있다.

   
 
  /사진 박일호 기자  

"지난번 현지 양 돕기 콘서트보다 3배 정도 큰 규모라고 생각하면 돼요. 무용단, 밴드, 코러스 등 출연진만 100명 정도인데, 사람만 많다고 공연이 잘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이 사람들을 어떻게 엮어서 멋진 무대를 보여줄 것인가…. 계속 그 고민이지요. 창원에서 이런 대규모 공연을 접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이번 공연은 창원시장애인총연합회와 대한민국고엽제경남지부가 주최한다. 권종수 씨 무대를 본 장애인총연합회 관계자 부탁으로 이뤄진 공연이다. 권종수 씨는 어려운 이들을 돕는 일이라 흔쾌하게 받아들였다.

"제 능력이라고는 공연하는 것인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큰 무대를 마련해보자고 해서 그렇게 하자고 했지요."

별일 아니라는 듯 시원하게 웃었다. 홍보물에 나온 우정출연자를 훑어봤다. 가수 주현미 씨, 진행자 이용식 씨 그리고 올해 데뷔한 창원 동읍 출신 가수 석훈이가 눈에 띄었다.

"사람들이 저는 잘 몰라도 주현미·이용식 씨는 알 것 아니에요. 처음 시작을 이분들에게 맡기는 것이지요. 그리고 후반부 무대는 제가 준비한 대규모 악기 콘서트가 진행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잘 모른다고 했지만, 권종수 씨는 국내 대중음악계에서 나름 '지분'이 있는 음악인이다. 특히 전통가요를 부르는 국내 유명 가수들이 지방공연을 올 때면 권종수 씨 집을 들르는 것은 관행처럼 돼 있다. 스튜디오 시설과 각종 음향기기와 악기를 갖춘 권종수 씨 집 2층은 그의 작업실이자 음악인들의 사랑방이기도 하다.

"야외 공연은 준비부터 완전히 달라요. 특히 야외 공연에서 가장 신경 쓰이는 게 음향이지요. 아무리 훌륭한 연주와 시설을 갖춰도 기본적으로 소리가 퍼져버려요. 그런 것을 계산해서 라이브 공연과 녹음한 음원을 조정하기도 쉽지 않은 작업입니다. 이 작업이 제대로 되면 야외에서도 어느 자리에 앉은 관객도 만족할 수 있는 공연을 만들 수 있지요."

당연히 권종수 씨는 지금 준비하는 공연이 그런 공연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대중음악계와 인연 = 권종수 씨는 얼마 전까지 대규모 클럽을 운영했다. 창원, 부산, 대구, 울산, 제주, 광주까지 사업체를 두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공연하러 다니는 대중 가수들과 연을 맺게 됐다. 그와 대화 중에는 주현미 씨도 나왔고, 김수희 씨도 나왔다. 장윤정 씨 이야기도 아무렇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그래도 유난히 큰 자리는 가수 나훈아 씨가 차지했다. 안 그래도 공연 홍보물에 적힌 나훈아 씨 이름이 계속 걸렸다.

"누가 감히 자기 공연 알리겠다고 나훈아 씨 이름을 함부로 적을 수 있겠습니까. 홍보물에 적은 말은 사실입니다. 아주 가깝게 지냈고 제 공연을 참 좋아했습니다."

한동안 나훈아 씨와 얽힌 추억이 이어졌다. 좋았을 때, 섭섭했을 때를 떠올릴 때마다 권종수 씨는 마치 어제 있었던 일을 얘기하듯 무심하게 풀었다. 나훈아 씨는 내지르는 듯한 공격적인 색소폰 연주를 마음에 들어 했다. 클럽 무대 대규모 공연에서 다른 악기들에 묻혀서는 안 되는, 그렇게 쌓인 의지와 기교가 나훈아 씨 마음을 움직인 듯했다.

마침 공연 홍보물에 우정출연자로 나오는 석훈이 얼굴이 눈에 띄었다. 올해 데뷔한 신세대 트로트 가수 석훈이가 이곳 창원 동읍 출신이다. 대중음악 세계를 누구보다 잘 아는 권종수 씨 눈에 트로트 소년은 어떻게 보일까.

"이번 공연에도 같이 무대에 서요. 재능 있는 아이지요. 저도 무대에 대해서는 자존심이 있는데 아무나 세우겠습니까. 다만, 재능만으로는 안 되지요. 이 세계가 그래요. 가수 한 명이 뜰 때까지 재능이 30% 정도라면 나머지 70%는 뒷받침이지요. 대중음악계는 매니저 역할이 정말 중요해요."

권종수 씨는 석훈이 재능에 대해서는 '괜찮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재능을 받쳐줄 수 있는 배경에 대해서도 '부족하지 않다'고 했다. 재능과 배경이 맞물려 적절한 시기에 피어나면 좋은 가수 한 명이 또 나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자신 역시 그런 후원자 역할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진 박일호 기자  

◇권종수 씨와 음악 = 20대 중반을 넘어서 음악을 접했다. 늦어도 한참 늦은 시작이다. 정식으로 교육을 받을 기회도 없었다. 그저 악기를 쥐고 연습, 무조건 연습이었다. 공연을 마치고 홀로 남을 때도 연습은 이어졌다.

"누가 하라고 했으면 못했지요. 좋아서 할 수 있었던 일이에요. 클럽을 한창 운영할 때도 다른 일에 신경 끄고 무조건 공연 연습에만 매달렸어요. 그러다 보니 길이 보이더라고요."

시간이 흐를수록 대규모 공연에 매력이 느껴졌다. 연주자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공연에 점점 한계를 느꼈다. 다른 사람들이 '여기까지'라고 선을 긋는 그 지점에서 한 발 더 나아가고 싶었다. 그렇게 한 발 더 나아갔을 때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왜 색소폰 연주는 카페 같은 실내에서, 몇 명 모여서, 재즈 같은 곡만 연주하며 손님 몇 명에게 분위기를 맞춰줘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었지요. 대규모 공연을 만들자, 우리 가락을 살려보자, 다른 악기들도 써보자, 밖에서도 소리가 퍼지지 않고 제대로 들리는 음악을 한 번 해보자.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대규모 악기 공연 쪽에서는 누구에게도 질 생각이 없습니다."

색소폰 연주자를 늘리고, 타악기를 놓고, 코러스도 늘리고…. 새로운 시도는 어김없이 클럽에서 공연으로 이어졌다. 사람들은 유흥 수준을 넘어서는 대규모 악기 공연에 압도당하면서 열광했다. 새로운 시도와 대가처럼 따라오는 환호는 권종수 씨에게 다시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었다.

"이제는 색소폰 연주자라기보다 대규모 악기 공연 연출자 쪽이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네요."

권종수 씨가 다시 시원하게 웃었다.

   
 
  /사진 박일호 기자  

◇음악에서 얻은 힘 다른 이들에게 베풀고 싶어 = "늦게 음악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년 넘게 나이트클럽을 운영했습니다. 결코, 평탄한 삶이 아니었고, 깨끗한 삶만 살아왔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훨씬 어린 나이에 되돌아올 수 없는 길로 잘못 빠져도 이상할 게 없는 삶이었지요. 음악이 모든 것을 바꿨습니다."

몸과 마음이 가장 밑바닥까지 떨어졌던 그때 권종수 씨에게 벼락같이 파고든 음악은 모든 것을 바꿨다. 희망이 됐고, 생업이 됐으며, 이제는 다른 사람을 둘러볼 수 있는 저력이 됐다.

"벌 만큼 벌었어요. 돈 버는 것에는 미련이 없어요. 그래서 운영하던 클럽도 모두 정리했습니다. 이제는 제 능력으로 어려운 이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삶이었으면 좋겠어요. 음악의 힘은 강렬합니다. 제가 체험했지 않습니까. 제 공연을 보신 분들이 뭔가 힘이 솟는 그런 무대를 늘 만들고 싶어요. 더는 바랄 게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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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년 1월부터 언론노조 경남도민일보지부 일을 맡았습니다. 상담은 010-3593-5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