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5월이면 성년의 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등 여러 기념일들이 끼어 다양한 모임과 행사들로 바쁜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이런 5월은 나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돌아보며, 서로에게 감사하고 정을 나눌 수 있는, 가슴이 따뜻함을 느끼게 하는 감사의 한 달인 듯하다. 특히, 음악을 전공한 나에게 스승의 날은 남들과 다른 의미를 갖는다.

스승의 날의 의미를 되새기다보니 우리지역 음악계, 나아가 문화계의 원로들이 문득 떠오른다. 원로란 일반적으로 '한가지의 분야에 오랜 시간 종사함으로써 경험과 공로가 많은 사람이나 관직, 연령, 덕망이 높은 공신' 등을 일컫는다. 이 뜻을 깊이 생각해 보면 어르신들에 대한 우리들의 부끄러운 태도를 조금은 느낄 수 있으리라. 나 자신부터도 원로 예술가들을 보며 그저 나이 들어 은퇴했기에 원로의 한 부류로 포함시켜버릴 때가 있다. 아니, 그렇게 해왔다. 그런데 되돌아보니 이 분들은 우리 문화를 이끌어 왔던, 지금의 수준 높은 우리 문화를 있게 만든 공신들이다. 지난날 대활약을 했건, 평범했건 간에 이 분들은 나름 최선을 다한 것이고, 지역의 문화토양을 만들고자 평생을 애쓴 분들이다. 우리의 배움의 자리를 지켜오신 분들이고, 교육을 위해 오랜 시간을 함께해 온 평생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살아가야할 분들이다.

가끔 원로 음악가들을 만나면 공연장에 가지 않겠다고 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초대받지도 못한 공연장에 가서 뭐하냐는 원망 섞인 말씀에서부터 초대를 받았지만 아무도 챙겨주는 이가 없어 힘들다는 넋두리였다.

지난 5월 31일 저녁 마산회성동 성당에서는 우리 지역출신의 제1세대 성악가라고 할 수 있는 소프라노 전정자(창원대학교 예술대학 음악과 명예교수) 교수의 특별한 무대가 있었다. 여러 순서 중 한 순서에 불과하고, 이탈리아 작곡가 루찌의 '아베마리아' 한 곡을 부를 뿐이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가득했다.

벌써 은퇴한 지 10여 년이 훌쩍 넘어버렸지만 이제 선생이 되어 있는 제자들 앞에서 아직까지 보여주실 것이 남았다는 듯이 무대에 올랐다. 흐린 날씨로 허리의 통증이 있음에도 애써 몸을 바로 세우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시는 모습에 자리에 참석한 젊은 제자들은 숙연해졌다. 그리고 말씀은 하지 않으셨지만, 젊은 예술가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셨다. 우리에게는 너무 아름다운 수업이었다. 어떻게 보면 이제 무대위에서 보여주시는 마지막 수업같아 기분이 묘해지기도 했다.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 역사적인 순간에 내가 증인으로 있음이 행복하기도 했다. 행사가 끝난 뒤에는 가까운 시일내에 꼭 만나서 이런 저런 이야기도 나누자고 하신다.

   
 

오늘날 우리지역의 음악계, 나아가 공연예술계가 이만큼의 위치에 있는 것은 우리들의 아버지, 어머니라고 할 수 있는 원로예술인들의 노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수십 년 전부터 힘들여 닦아놓은 그 터전 위에 우리의 오늘이 있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우리 공연예술계가 그분들에 대한 예우와 체계적인 연구에 속히 나서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전욱용(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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