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너무 거칠어졌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예총이 문제다.

사단법인 경남 예술 문화 단체 총연합회! 정체가 모호한 이 단체가 수십 년간 경남예술인들을 대표하면서 예술인들에게 돌아와야 하는 지원금을 가로채고 있었다면 그래서 경남예술발전의 걸림돌이라면 제목처럼 이제 예총이 죽어야한다.

한국에서 예총은 문화예술계의 구조적 딜레마를 생산하는 주된 출처다. 거기서 돌이킬 수 없는 방식으로 위계적 질서들과 패권주의, 집단이기주의의 밑그림이 그려진다. 경남예총도 예외가 아니다. 늘 송사가 끝나질 않는 소수의 이익집단이 된 지도 오래고 결국 예술인들 사이에서 불만들이 이어지고 있다. 경남지역에서 경남예총은 문화예술의 알파와 오메가이다. 출발과 종료의 모든 신경망이 통과하는 허브이면서 계속 면면의 인사들 사이에서 순환한다. 경남예술인들에게 돌아가야 하는 예산을 먹고 사는 공룡이면서, 예술인들 대부분이 회원이 아닌데도 회원인줄 알고 있고 가입한 적도 없지만 가입되었다고 생각하는 단체. 대의원이란 소수의 집단만이 발언하고 접근이 허락되는 단체. 경남 예술단체 총연합회란 단체가 존재함으로써 경남예술인들에게 무슨 이득이 있을까? 다만 부패한 예술권력만 남았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액튼 경(卿)의 경고를 떠올린다. 권력은 집중될수록 부패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했다. 물론 예술권력 또한 예외가 아니다. 소수의 이익집단으로 구성되어있고 만들어진 초기부터 언제나 몇몇의 사람들에 의해서 움직여왔다면 그래서 의사결정에서부터 대표선출까지 늘 몇몇의 바뀌지 않는 소수의 대의원들에 의해서 운영되고 있었다면 이것이 부조리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예술인의 대표를 맡고 있다면 이제 미술, 음악, 연극, 국악, 사진 등의 단체들이 각 단체의 특성과 현실에 맞게 경남도정에 참여하고 요구해야 할 것이다.

경남예총이 스스로 반성하기를 바라는 것은 이제 거의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미 특권적 모럴(moral)에 물든 그들의 자문에 의존하는 한, 경남도의 문화정책과 제도가 획기적으로 전환하는 것도 기대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화근 덩어리를 안고 어떻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오스카 와일드는 오직 불복종과 반발만이 앞으로 나아가는 실마리임을 충고했다. 경남예술의 미래에 조금의 기대를 한다면, 그래서 새로운 국면을 진정으로 보고 싶다면, 경남예술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경남예총은 이제 죽어야한다.

/황무현 마산대학 아동미술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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