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사람]신세계백화점 앞에서 푸성귀 파는 유순덕 할머니

신세계백화점 마산점 앞을 지나던 아주머니가 걸음을 되돌린다. 그리고 길바닥에 주저앉는다. 눈길이 멈춘 곳은 바닥에 깔린 가지·고추·깻잎 같은 채소. 하나씩 가리키자 좌판 주인인 할머니가 주섬주섬 비닐봉지에 담는다. 봉지 세 장을 가득 채우고 나서 셈이 시작된다. 대형마트 셈법으로는 어림잡아 1만 5000원 정도다. 아주머니도 미리 만 원짜리 한 장과 천 원짜리 몇 장을 지갑에서 빼놓는다.

"9000원만 줘."

머쓱하게 만 원을 내민 아주머니는 봉지와 1000원을 받아든다. 표정은 밝다. "고추는 그냥 찍어 먹으면 돼." 할머니는 인사 대신 당부를 보낸다. 아주머니는 돌아보며 웃음으로 답한다.

텃밭 채소 10년 한 자리 장사 "자식들한테 기댈 수만 없잖아"

   
 
유순덕(76·사진) 할머니는 그렇게 깔아놓은 채소를 3분의 1 정도 처리한다. 

"부산에서 마산 온 지 18년 정도 되네. 여기서 장사한 것은 10년 정도 됐고."

할머니는 창원 마산합포구 해운동에 산다. 채소는 집 뒷산에 텃밭을 만들어 키운 것을 가지고 나온다. 가지·고추·깻잎·호박·콩잎·고구마 줄기 같은 것들이다. 무친 콩잎이나 오이소박이 같은 간단한 반찬도 있다. 잘 되면 하루 3만~4만 원 정도 벌이다.

"집에 할아버지가 계셔. 거동이 불편해 아무 일도 못해. 이렇게라도 해서 할아버지 약값이라도 벌어야지. 자식들에게 기댈 수만은 없잖아."

대형마트 반도 안 되는 셈법

한 곳에서 오래 장사하다 보니 나름 단골도 있다. 다른 음식재료는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서 사더라도 채소는 할머니에게 사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한 묶음이나 한 바구니나 대부분 1000원, 2000원이다. 호박은 크기에 따라 500원이 붙었다가 떨어졌다가 했다. "뭐 특별히 대단한 거 팔아서 그렇겠나. 노인 고생한다 생각하고 사주는 것이겠지."

고정석처럼 돼 있어서 자리다툼 같은 것도 없다고 했다. 길에서 장사하는 사정이 모두 거기서 거기다. 서로 알아서 배려하며 장사하는 것이다.

"이거 해서 영감 약값이라도"

고추 한 바구니와 깻잎 몇 묶음을 챙겨달라고 했다. 얼마 전 대형마트에서 딱 절반 되는 양을 샀는데, 6000원 정도 줬던 기억이 났다. 할머니는 4000원만 셈했다.

"신사 양반이 비닐봉지를 들고 다녀도 괜찮을지 모르겠네. 결혼했수? 마누라한테 쓸데없는 거 사왔다고 한마디 듣는 거 아니야? 이렇게 들고 다니면 안 되는데, 미안하네,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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