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삼만큼 귀한 약초…염증·종양에 특효

겨울비가 수상쩍게 내리더니 포근한 기운이 도는 듯하다가 싸늘하니 얼어붙었습니다. 숲이 없는 도시에서는 은행나무 가로수 벗은 옷으로 겨울의 깊이를 재어봅니다. 연말의 풍경은 아직 보이지 않고 한산한 거리가 올해 겨울을 더 춥게 합니다. 호롱불 아래 화로 속에 묻어 놓은 고구마가 익어가는 겨울이 아니라 장사가 안 되어 일찌감치 문을 닫는 요즘 같은 날은 눈이 내려주면 참 좋을 텐데요. 산 숲에도 눈이 내리면 찔레 덩굴에 붉게 익은 열매 따는 새 떼들이 눈가지를 털고 행복한 겨울 풍경을 만들어내곤 합니다. 내가 자라던 어린 날 이맘때쯤이면 할아버지 약초 캐는 발걸음을 따라 눈 산에 오르곤 했습니다.

눈 내린 후의 산 속에서 지치를 캐기 위해서였지요. '지초' 또는 '주치' 라고 불렀던 이 약초는 뿌리가 붉은 색인데다가 그 기운이 강해서 지치가 있는 자리에는 그 주변이 붉게 변해 있어서 찾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지치는 할아버지가 영약 중의 영약으로 치는 약초라서 전설처럼 이야기만 들으며 자랐습니다. 할아버지를 따라 황매산에 올랐지만 한 번도 그것을 캐는 것은 보지 못했을 정도로 귀한 약재입니다.

단지 잎이 참깻잎처럼 생겼고 흰 단추 같은 작은 꽃이 핀다는 얘기만 들었을 뿐입니다. 할아버지가 젊었을 적에 황매산 깊숙이 풀 베러 가셨다가 수 십 년 된 지치를 발견하고 그 뿌리를 뽑아서 반 뿌리를 먹고는 그만 기절하여 잠이 들었다 합니다. 깨어보니 해가 져서 내려왔다가 이튿날 나머지를 찾으러 그곳을 가서 아무리 헤매도 나머지는 찾을 수가 없었으며 다른 지치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할아버지는 그것을 먹고 한평생 잔병치레 없었으며 힘이 장사였다고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지치는 산삼보다도 더 귀한 약재로 여겼습니다. 지금은 재배하는 곳이 많아서 꽃을 자주 볼 수 있지만 그때는 꽃도 한 번 보지 못 했지요. 어른이 되어서야 그 꽃을 처음 보면서 감회에 젖어 할아버지 생각을 한참이나 했었습니다.

다년생 초본으로 산지 깊숙한 초원에서 잘 자라며 뿌리가 깊이 박혀 캐기가 어려운 이 지치는 야생을 보기는 거의 힘들며 요즘은 주로 재배를 합니다. 야생과의 약효 차이가 너무 많이 나기 때문에 야생을 산삼처럼 귀하게 여깁니다. 5~6월에 하얗고 자그마한 꽃이 피었다가 7월에 열매 맺으며 뿌리가 붉다 못해 자색을 띠어서 '자초'라고도 불렀으며 약명은 '자근'입니다.

그 뿌리의 짙은 색깔로 염색제로 썼으며 식용 색소나 화장품의 원료로 쓰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지치의 큰 효과는 항염증, 항종양 작용이 뛰어나서 많은 병증의 치료제로 쓰였으며 건위·강장·황달·습진·피부염·화
 
   
 
상·창종·이뇨 등의 약재로 많이 쓰였으며 특히 부인병을 치료하고 부기를 빼는 데도 탁월하다고 합니다. 요즘은 다이어트에도 효과가 좋다 하여 많이 쓰이고 있으며, 진도의 특산물 '홍주'를 담그는 주재료이기도 합니다.

잘 말린 뿌리 10g에 물700ml를 넣고 반이 되도록 달여서 아침저녁으로 마시면 좋으며, 뿌리를 고아 고약을 만들어 환부에 바르면 난치성 종창도 거뜬히 낫게 한다고 합니다.

/박덕선(경남환경교육문화센터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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