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물에 육회 얹어 비비면 입안에 도는 감칠맛 그만

밥, 국, 반찬으로 구성되는 쌀 문화권의 공간전개형(空間展開型) 식단에서나 가능한 최고의 응용 요리가 바로 비빔밥이다. 간편식이면서 균형 잡힌 식단이고, 종합 영양식인 비빔밥은 한식이 서구인들의 문화와 입맛으로 다가가는 데, 그 가능성을 엿보는 데, 필요한 바로미터(barometer)다. 이미 항공기 기내식으로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으며, 진주비빔밥과 쌍벽을 이루던 전주시는 비빔밥의 세계화를 외치면서 전주비빔밥세계화추진단을 구성하고, 전주비빔밥연구센터를 설립했다.

제례 문화에 뿌리를 둔 숙주나물을 비롯한 숙채(熟菜) 중심인 진주비빔밥과 농경문화에 뿌리를 둔 콩나물 중심의 생채가 들어가는 전주비빔밥의 경계가 허물어진 지금, 많은 식도락가는 비빔밥 하면 '전주비빔밥'으로 알고 있을 만큼, 진주비빔밥의 존재는 미미해지고 있다.

그러나 반세기 동안 진주비빔밥의 손맛을 이어오고 있는 집들이 진주비빔밥의 명맥도 이어간다는 사실만으로도 다행이다.

진주 중앙시장 내 있는 제일식당 주방 내부, 왼쪽부터 2대 며느리 이윤자 씨와 3대 손자며느리 유진선 씨가 음식을 하고 있다. /김영복 교수
진주 중앙시장 내 제일식당

◇진주 전통 맛의 중심 '중앙시장' =
특히, 진주의 중앙시장은 진주 전통 맛의 중심이다. 진주비빔밥은 물론이고, 일본 사람들이 그 맛을 못 잊어 진주에서 떠나는 것이 아쉽다고 했던 '진주유과', 시원한 단팥죽에 앙증맞은 찐빵을 찍어 먹는 '진주찐빵'과 달콤하며 아삭한 '진주꿀빵', 진주 특유의 '선지해장국', '진주냉면' 등이 모두 이 중앙시장에 뿌리를 둔다.

진주의 상인들이 중앙시장 자리에 저잣거리를 이루면서 선지해장국, 밀국수냉면 등 서민 음식점들이 차양(천막)을 치고, 시골에서 장을 보러오는 농민들이나 장사꾼들을 상대로 음식을 팔았다고 한다.

50여 년 며느리서 며느리로

이와 더불어 구한말 관아에서 일하던 숙수(熟手)나 기생들이 생계 수단으로 중앙시장 주변에 요정을 차리고, 일부는 진주비빔밥, 진주헛제삿밥, 진주냉면을 파는 음식점을 열면서 진주의 맛이 이곳으로 집중되기 시작한다.

이 당시 수정식당, 은하식당, 평화식당, 부산식육식당 등 식당 다수가 중앙시장에 터를 잡고 있었다. 그러나 1966년 2월 6일 오후 9시께 발생한 중앙시장 화재 이후 많은 식당이 없어지거나 다른 곳으로 이전했다.

◇3대째 진주비빔밥의 명맥을 이어가는 '제일식당' = 중앙시장에 화재가 난 이후 시장이 현대적 형태를 갖추면서 고(故) 윤수연 할머니가 해장국을 주 메뉴로 문을 연 '제일식당'은 50년에 이르는 세월 동안 진주비빔밥의 대표적인 음식점으로 자리하고 있다.

'제일식당'의 비빔밥은 감칠맛과 절제미가 있다. 달랑 세 가지 반찬에 보탕국 한 그릇, 아울러 감질나는 비빔밥 양은 그래서 더 입맛을 당기게 한다.

'제일식당'의 진주비빔밥 위에는 쇠고기 육회가 올라앉는다. 육회도 아무나 무친다고 맛이 나는 것은 아니다. 숙채 나물이기 때문에 나물을 까무러지게 무치되 색감과 향이 살아 있어야 하고, 육회와 숙채 나물을 밥과 비벼 감칠맛이 나게 하려면, 보통 비법을 가지고서는 힘들다.

삼찬에 보탕국 한 그릇

고 윤수연 할머니가 해장국을 주 메뉴로 문을 연 제일식당은 50여 년간 진주비빔밥의 대표적인 음식점으로 자리 잡았다. 배추김치와 동치미 등 세 가지 반찬과 보탕국 한 그릇으로 밥상이 단출하지만 그 감칠맛은 으뜸이다. /김영복 교수
단출하면서도 입맛 당겨

이러한 윤수연 할머니의 비법을 2대 며느리 이윤자(58) 씨가 물려받고, 그 손맛이 지금은 3대 손자며느리 유진선(28) 씨에게 전해지고 있다.

50년 동안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맛의 비결은 윤수연 할머니가 그랬듯이 좋은 재료 쓰고, 일상 되풀이되는 일이지만, 성실함이 배어 있는 비법 때문이다.

대부분 식당 하는 분들은 일이 힘들기 때문에 자식들에게 대물림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전통적인 맛의 맥이 끊어지게 마련인데, '제일식당' 진주비빔밥이 며느리 3대로 이어지는 것은 칭찬받을 만한 일이다.

비빔밥 소 6000원·대 7500원, 해장국 소 3500원·대 4500원, 국밥 5000원, 육회 소 3만 원·대 4만 5000원. 진주시 대안동 중앙시장 8-291번지. 055-741-5591.〈끝〉

/김영복(경남대 산업대학원 식품공학과 초빙교수)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