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전국의 웬만한 음식간판이나 출입문에는 방송국이나 일간지에 소개되었다는 내용이 하나쯤 안 붙은 집이 없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소개됐다는 집 치고 음식 맛있는 집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경기도 모 음식점은 3대 공중파 방송국에 한 번도 안 나온 집이라고 현수막을 붙일 정도다.

왜 그럴까? 음식 프로그램이나 별미 기사가 정확한 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개념 없이 시청자나 독자의 호기심만 유도하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맛 기행 작가랍시고 음식점마다 찾아다니며 금품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이제 맛집 기사 취재를 위해 찾아가면 말도 못 꺼낼 정도로 귀찮아한다. 별미 글을 쓴 지 어언 10년이 넘었는데, 지금은 차라리 글 쓰는 게 부끄러울 정도다.

거창의 '원동별미갈비찜' 주인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집을 창업한 고(故) 김귀례 할머니는 이미 돌아가시고 지금은 막내아들 강천석(41) 사장이 어머니가 운영하던 이 집을 대물림했다고 한다.

"글을 쓰는 건 좋지만, 나중에 돈을 요구하는 거 아니죠?" 참 모욕감이 들지만, 최근에는 흔히 듣던 이야기라 그냥 웃으며 어머니 이야기부터 물었다.

10년  익힌 손맛 100년  가업 밑거름

거창 갈비의 뿌리는 함양군 안의면에 두고 있다. 비록 거창 갈비가 뿌리를 함양 안의에 두고 있으나 거창 갈비찜과 안의 갈비찜은 양념에서 차이가 난다. 함양 안의 갈비찜은 예전부터 전통적으로 해먹던 것으로 1800년대 말 저자 미상의 <시의전서(是議全書)>에 나온 '가리(乫飛, 갈비) 조리법'과 유사하다.

1대 고 김귀례 할머니.
"가리를 한 치 길이씩 잘라 삶되 양을 튀한(털을 뽑으려고 끓는 물에 잠깐 넣었다가 꺼낸) 것과 부아(허파나 목줄띠에 붙은 고기), 곱창, 통무, 다시마를 함께 넣고 무르게 삶아 건진다. 가리찜 할 때의 무는 탕 무처럼 썰되 더 잘게 썬다. 다른 고기도 그와 같이 썰고, 다시마는 골패 쪽(납작하고 네모진)처럼 썰고, 표고·석이버섯도 썰어 놓는다. 파, 미나리는 살짝 데쳐 놓는다. 이상의 모든 재료를 갖은 양념에 가리를 섞어 주물러 볶아서 국물을 조금 있게 하여 그릇에 담고, 위에 달걀을 부쳐 석이와 같이 채 쳐 얹는다."

안의 갈비는 '정월 장(醬)과 엿기름으로 곤 물엿 등 갖은 양념으로 우선 갈비에 연하게 간하여 뭉근 불에 오랫동안 끓이다가 표고버섯, 양파, 당근, 파 등 채소를 넣어 고명으로 색깔을 맞추어 내' 놓는다.

고춧가루 · 배 넣어 감칠맛 낸 양념 비법

그러나 거창 '원동별미갈비찜'의 갈비찜은, 쇠갈비는 잘 숙성시킨 것을 하루하루 들여와 우선 물에 담가 핏물을 뺀다. 핏물 뺀 갈비를 큼직한 냄비에 담고, 잠길 정도로 물을 부어 한소끔 삶아 건진다. 고기를 삶을 동안 한쪽에서는 양념장을 끓이는데, 갈비찜의 제맛이 바로 여기에서 우러난다.

가업을 잇고 있는 막내아들 강천석 사장.
중요한 점은 고춧가루와 배가 맛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양념장이 잘 끓으면, 쇠갈비를 삶아낸 육수와 고기를 함께 넣고 지글지글 볶으면서 국물을 자작하게 졸인다. 고명으로 밤, 피망, 양파 등을 얹고 갈비찜이 식지 않도록 불에 달군 돌판에 얹어서 차려낸다.

궁중에는 고춧가루 들어간 음식이 없다. 다만, 숙성된 고추장을 이용한 '감정(甘精)'이라는 매운 찌개가 있다. 즉, 고춧가루가 들어간 음식은 적당히 숙성이 되어야 제 맛이 난다. 양념을 어떻게 숙성시키느냐가 갈비찜 맛을 좌우한다.

막내며느리가 전수해 옛맛 그대로 이어

1대 고 김귀례 할머니는 감칠맛 나는 손맛을 갓 시집 온 막내며느리 김희정(35) 씨에게 전수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어머니 김귀례 할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시는 바람에 장자에게 대물림해야 한다는 시아버지의 고집으로 큰아들 내외가 가업을 이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양념 맛의 비법은 하루아침에 얻어지는 게 아닌 것 같다. 갈비찜 맛이 달라서일까? 손님이 줄어들기 시작하자 큰아들 내외는 경영난을 이기지 못해 1년도 안 되어 장사를 포기하게 되고, 다시 막내아들 내외가 이 집에 들어와 장사하면서 예전 단골들도 다시 찾아온다고 한다. 10여 년 동안 시어머니 밑에서 배운 음식 솜씨가 오늘날 가업을 지탱할 힘이 되는 것이다.

갈비찜 2인분(소) 3만 원·3인분(중) 3만 5000원·4인분(대) 4만 원. 갈비탕은 특 1만 1000원·보통 8000원. 거창군 거창읍 서변리 31번지. 055-942-1850.

/김영복(경남대 산업대학원 식품공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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