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들판엔 오렌지 빛으로 익은 보리와 막 모심기가 끝난 무논의 조화가 한 폭의 그림입니다.

그제는 아침 햇살이 퍼질 즈음에 국도를 타고 진동을 지나가는데 들판에 자욱한 연기가 마치 안개 낀 날 같았습니다. 창문을 타고 퍼져 드는 보릿대 향기가 너무 정다워서 마음이 추억 속으로 달립니다.

보리타작 끝나고 나면 까끄라기와 잘 마른 보릿대를 태웠는데 그 향기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고소한 듯 하면서도 마른 풀냄새가 섞인 그 향기를 맡고 있노라면 '이제 보리 거두는 일은 끝났구나' 하는 안도감과 함께 그윽한 향을 맡으며 산딸기를 따곤 했지요. 산딸기 붉게 익는 산기슭 언덕이나 개울가 덤불에는 찔레꽃 풋풋한 향기가 보릿대 향과 어우러져 초여름의 향연이 펼쳐집니다. 그 속에서 산딸기 한 줌 따 먹는 그 맛은 노동의 피로를 모두 씻어주곤 하였습니다.

약간 떫으면서도 싱그런 꽃내가 나풀대는 찔레꽃.
찔레꽃 몇 송이 따서 입에 넣으면 약간 떫으면서도 싱그런 꽃내가 나풀대는 소녀의 웃음 같습니다. 찔레꽃 벌꿀향을 맡고 달려든 꿀벌들을 피해 하얀 꽃 한 다발 꺾어다 산그늘 아래 점심 바구니 덮어놓고 낮잠 든 엄마의 머리맡에 두면 그 향내에 곧장 깨어난 엄마는 손가락 안 다쳤느냐고 먼저 묻곤 하셨지요. 장미과의 갈잎 떨기나무로 마디마다 짧고 날카로운 가시를 가져서 아름다운 자태를 보호하려 해보지만 유월 언덕의 찔레꽃 유혹은 소녀의 발길을 붙들고 놓지 않습니다.

이른 봄에 순이 나면서부터 사람들의 손에 시달려야하는 찔레나무는 가시를 많이 가질 수밖에 없겠지요. 재주가 많아서 가을 지나 겨울 열매까지 모두 인간과 새들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랍니다. 어린 순은 옛날 보릿고개 시절에 귀하디귀한 간식이자 비타민의 보급처였습니다. 통통하게 잘 자란 찔레순을 꺾어 껍질을 벗기면 싱그럽고 향긋한 속살의 그 맛이란 표현할 수 없는 행복감을 안겨주곤 했지요.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이란 노래 가사처럼 찔레꽃은 분홍빛을 띠기도 하나 주로 하얀색이 많답니다. 요즈음은 그 찔레순을 따서 김치를 담가 먹기도 하고 꽃을 따서 화전을 부치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한방에서는 뿌리를 '장미근' ,열매를 '영실'이라 하여 귀하게 쓰입니다. 열을 내리고 피를 잘 돌게 하며, 몸 속의 노폐물을 배출시킬뿐더러 이뇨작용과 신경안정·노화방지, 신장염·생리통에까지 다양한 증상에 약재로 쓴답니다. 가을걷이 지나고 나면 빨갛게 익은 열매를 따서 막걸리를 뿌린 후 쪄서 햇빛에 말려 사용합니다. 열매 10g에 물700ml쯤 넣고 달여서 아침저녁으로 복용하면 제반의 증상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유월은 꽃보다는 신록이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장미가 도시 화단을 붉게 장식한다면 찔레꽃은 들일하는 어머니의 흰 치마 같이 산과 들 곳곳을 아름답게 장식합니다. 고려 때 원나라에 볼모로 잡혀 갔던 큰딸 찔레가 가족을 찾아 떠돌다가 죽어 피었다는 슬픈 전설을 가진 찔레꽃의 꽃말은 '가족에 대한 사랑'이랍니다. 들길 지나는 길 있으면 찔레꽃 그늘아래 한 걸음 쉬어가는 여유로 여름을 맞으시길 바랍니다.

/박덕선(경남환경교육문화센터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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