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년의 맛 갈치식해 이대로 잊히면 아깝지 않소시어머니 솜씨 지키려 창업한 며느리…전통 이으려 호텔조리학 전공하고 비법 익히는 손자

◇옛 문헌 속 '갈치' = 갈치를 한문으로는 '도어(刀魚)'라고 한다. 그래서 강원·경남·전남·충북 등지에서 지금도 방언으로 '칼치'라고 발음하고 있다.

이 '갈치'는 '칼(刀)'의 옛말 '갏'에서 'ㅎ'이 탈락하고서 물고기나 물고기 이름을 나타내는 접미사 '치(넙치·날치·꽁치·버들치 등)'가 붙어 만들어졌다. '갈치'는 표준어가 돼 있다.

지금은 갈치 값이 비싸 귀한 대우를 받는다. 하지만, 1960~70년대까지만 해도 "값싸고 맛 좋은 갈치자반이다"라는 말이 있었듯이 갈치는 수확량이 많아 값이 싸고, 맛도 좋아 서민들의 반찬으로 갈치자반만 한 게 없을 정도였다. 또한, 갈치자반은 농번기 두레 음식에 빠지지 않던 것이기도 했다.

이런 갈치가 조선시대 요리서에는 보이지 않으나 조선 정조 때 실학자 서유구(1764~1845)가 각종 물고기에 대해서 쓴 <난호어목지(蘭湖魚牧志)>에 '葛魚(갈어)'로 나온다.

조선 후기 학자 정약전(1758~1816)이 천주교 신도로 1801년(순조 1년) 신유사옥(또는 신유박해(辛酉迫害)) 때 흑산도(黑山島)로 귀양 갔다가 1814년 중국과 우리나라의 문헌을 참조해 흑산도에서 직접 보고 들은 것을 토대로 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어류 연구서인 <자산어보(玆山魚譜)>에도 '군대어 속명 갈치어(裙帶魚 俗名 葛峙魚)'라고 쓰여 있다.

그런데 갈치에 대한 기록은 위 고문헌 이전에도 찾아볼 수 있다. 고려 때 문인 김부식(金富軾)이 1145년(인종 23년)에 완성한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신라시대부터 기장(지금은 부산) 쪽 연안이 갈치의 산지로 잘 알려져 "기장 갈치가 서라벌(경주)로 진상"되었다고 쓰여 있다.

▼2대 아들 권현(왼쪽) 씨와 1대 김기순 사장.
◇갈치식해의 맛 대물림, 김해 어방동 '두레마을' = 갈치에다 소금과 쌀밥 등을 섞어 삭힌 것으로 반찬으로 즐겼던 갈치식해가 안타깝게도 시대의 변화를 이기지 못해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유일하게 그 옛 맛을 이어가는 집이 있으니 김해 갈치요리 전문점 '두레마을'이다.

서남해 연안에서 잡히는 갈치로는 주둥이가 마치 꽁치와 같은 물동갈치·꽁치아제비·항알치가 있다. 이 갈치들은 5월께 해초 위에 산란을 하고, 연해에서 어류를 잡아먹고 살면서 내만(內灣)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

여름철에 산란하는 갈치는 늦가을까지 충분한 먹이를 섭취한 후 초겨울에 남쪽 월동 장소로 이동한다. 갈치의 이동 통로는 부산 기장군 앞바다, 남해 연근해, 제주도를 거치고 태평양으로 향한다.

이렇게 월동 장소로 이동하는 갈치를 중간에서 잡는데, 이때 잡는 갈치가 제 맛이 난다고 해서 '가을 갈치'라고 한다. 가을에 부산 기장군에서 잡히는 갈치는 자반용(생선을 소금에 절여 만든 반찬)과 식해용(생선에 소금 약간과 쌀밥을 섞어 숙성시킨 것)으로 좋고, '고지기'라고도 불리는 제주 갈치는 조림용과 속젓용으로 좋다.

그래서 부산 기장군·김해 등지에서는 예로부터 갈치식해를 담가 먹었다. 갈치식해는 쌀·엿기름·소금·파·고추·마늘과 함께 갈치를 넣고, 일정 기간 삭힌 발효 음식이다.

매미 울음이 우렁찬 늦여름에 항아리에 담아 놓은 갈치식해를 꺼내 물에 만 찰보리밥에 먹는 맛도 일품이지만, 초가을에 따뜻한 밥에 곰삭은 갈치식해를 넣고 비벼 먹는 맛은 어떤 말이나 글로도 쉽게 나타낼 수 없다.

시어머니의 갈치식해 담그는 솜씨가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워 그 맛을 지키려고 창업한 김기순(53) 사장은 이제 서서히 식해 맛을 호텔조리학과를 졸업한 아들 권현(27) 씨에게 가업으로 전수하고 있다.

"식당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어머니가 그랬듯이 저도 할머니의 손맛을 후대까지 이어가려는 생각으로 대학 전공도 호텔조리학을 선택했습니다. 지금은 어머니에게 갈치 손질하는 것부터 시작해 식해 담그는 비법 등을 하나하나 전수하고 있습니다." '두레마을' 2대 권현 씨의 말이다.

맛을 잇고자 하는 권씨의 마음이 있기에 한 천 년 곰삭은 우리의 맛, '갈치식해'는 멀지 않은 장래에 일본의 '스시(초밥)'보다 앞선 세계적인 맛으로 발전할 것이다.

갈치요리전문점 '두레마을'. 갈치식해 1만 3000원(1㎏). 김해시 어방동 1103-7번지(신어볼링장 옆). 055-324-2233, 2324.

/김영복(경남대 산업대학원 식품공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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