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이유는 있는 법

   
 
 
"한 턱 쏘지?" "응?" "알면서~" "뭐가?"

잔인한 한 달의 끝이 지났다. '헉헉'거리던 월급통장에 겨우 숨통이 틔는 날. 생활자금을 관리하는 남편의 표정이 모처럼 밝다. 물론 꼬박꼬박 용돈을 타 쓰는 나는 월급 받는 날인 것조차 잊고 있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났구나. 용돈 얼마 준다고 정말. 벼룩이 간을 빼 먹어라. 당신이 사야지!"

"네 돈이 내 돈이고 내 돈이 네 돈이지."

물론 생활자금 관리와 융통이 귀찮아 경제권을 남편에게 넘기고 용돈을 받고 있지만 언제부터인가 통장에 찍히던 일곱자리 숫자가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다. 집구석 틈새에 비자금을 조성해 보고도 싶었다. 부부 사이에도 냉정할 땐 냉정해져야 하는 이유다.

"그래 내가 쏜다 내가. 함 보자."

남편은 마치 자기가 쏘는 양 알록달록한 '우리동네 배달요리'책을 뒤적거렸다.

"통닭…피자…감자탕…족발…. 뭐 색다른 거 없나. 참, 어제 닭 사놓은 거 있지. 우리 '웰빙' 차원에서 통닭을 한번 집에서 만들어 볼까?"

"뭐. 무슨 배달음식 무한도전도 아니고. 그냥 시켜먹지 배고픈데…."

남편은 말 꺼내기가 무섭게 닭 몸통을 거침없이 나누었다. 적당한 물에 튀김가루를 풀고 튀김옷 입히기 30분 → 식용유 충분히 붓고 온도가 오를 때까지 10여분 → 1차 튀기기 30여분, 바삭함을 더하기 위한 2차 튀기기 20여분.

30분이면 집 앞까지 도착할 통닭을 2시간을 꼬박 기다려서야 맞았다. 집 안이 온통 튀김냄새로 뒤덮였지만 참았다. 그래도 남편의 정성이고 누구 말대로 아이를 위한 '웰빙 간식'이지 않은가.

하지만 웬걸. 닭다리를 잡자 마자 튀김 옷이 쏙 빠지지 않는가. 한 입 베어 먹는 순간 닭은 양념이 하나도 안 돼, 비린 맛이 올라왔다. 무모한 도전이었다. 닭 비용, 식용유 값 등 점쳐 보니 약 2만원. 돈도 두 배요, 시간도 두 배나 들였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다.

"세상에, 기름에, 튀김가루에…. 부엌에 전쟁이 났네. 이거 누가 치워?"

"요리사가 설거지하는 거 봤냐?"

우후죽순 통닭 배달집이 생겨도 살아남는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다른 건 몰라도 통닭은 사 먹는 게 제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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