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바꾸는 건 어리석은 자의 우직함”

31일 저녁, 진주로 향했다. 마산에서 진주까지 피서철이라 왕복 4시간 이상 걸렸다. 왜? 더워서 산과 계곡으로 유명한 진주에 휴양차 갔냐구? 아니다. 진주에서 자연과 합일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연 속에서 인간은 한낱 짐승(?)에 지나지 않음을 일찍이 깨닫고 이에 순응하고자 하는 이들이 있다고 해서 찾았다.

▲ 왼쪽부터 진주환경운동연합 대학생 모임 ‘흰내’ 박아름 대표, 이연하 부대표, 김민수 회원.

그들은 진주환경운동연합 대학생 모임 ‘흰내’ 회원들. 사실 인터뷰할 학생을 꼭 집어서 갔는데, 기자가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회원들이 두 명 더 모였다. 그래서 모인 이가 ‘흰내’ 대표 박아름(진주산업대학교 조경학과 04학번), 부대표 이연하(진주 보건대학교 간호학과 05학번), 김민수(진주산업대학교 산림자원학과 4학년) 회원. 진주환경운동연합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가 방담처럼 돼버렸다.

‘흰내’가 ‘무색’, ‘무취’, ‘무향’의 의미 아니냐는 질문에 박 대표는 그런 해석은 처음이라며, ‘깨끗한 물이 흐르는 시내’ 라는 뜻이라며 또박또박 응수했다.

‘흰내’에서의 활동 기간이 1년차, 2, 3년차로 모두 달랐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자연을 내 몸같이 생각하고 아끼는 것. 부대표인 이연하 씨를 빼고 두 명은 모두 원래 시골 지역에서 나고 자라서 딱히 생태운동이라고 규정하지 않더라도 생태(생물이 살아가는 모양이나 상태 )를 생각하는 삶이 이미 몸에 체득돼 있었다고. 그러면서 대학 와서도 자연스레 생태 운동하는 곳으로 이끌렸다고.

본격적으로 인터뷰 아니, 방담이 시작돼 갈 즈음 진주환경운동연합 간사가 목이라도 축이라며 식탁에 우뭇가사리 면의 콩국과 따끈따끈한 고구마를 한 소쿠리 내놓았다. 역시 뭔가 다르다. 그들은 주로 과자나 인스턴트식품 대신 감자, 고구마, 단호박 등을 즐겨먹는 단다.

대학 내 쓰레기 치우기 캠페인 ‘작지만 큰 변화’

진주환경운동연합 내 대학생 모임은 생긴지 10년이 다 돼 가는데, 이들의 활동이 대학가에서도 반향이 크다는 게 그들의 자체적인(?) 평가다. 활동 내역을 묻자 이연하 부대표와 김민수 회원은 지구의 날 캠페인, 생태농활, 지리산 로드킬(Road Kill·도로 위 동물 살상) 조사, 에너지캠프, 초록캠퍼스 운영 등을 열거했다.

특히 박 대표는 “지리산 로드킬 조사를 할 때 걸으면서, 차를 탔고 갔으면 몰랐을 걸 알게 됐다. 야생동물이 도로 위에서 느꼈을 위협을 같은 동물 입장에서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대학 내에서 손쉽게 실천할 수 있는 걸 하나둘씩 해나가는 것이 가장 기뻤다고. 쓰레기분리수거통 조차 없던 대학가에서 자발적으로 쓰레기를 치우는, 작지만 큰 변화를 일으켰다고. ‘흰내들’은 이번 대학 가을대동제 때도 총학생회와 연대해 축제 기간 쓰레기 제대로 치우기 캠페인을 벌인다고 한다.

초저녁에 찾아간 사무실이 어둑어둑해지고, 등에 땀이 흘렀다. 형광등 불도 안 켜고, 선풍기 한 대도 켜지 않은 사무실. 창문이 모두 활짝 열려있었지만, 후텁지근하긴 마찬가지. 원래 이렇게 불도 안 켠 채 생활하느냐고 물었다.

“사실 꼭 그렇지는 않아요.(웃음) 남들과 비슷하게 생활해요. 에너지가 없는 나라에서 에너지 이용을 조금 줄이자는 정돕니다. 다만 일상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부분을 최대한으로 만들어 가려고 해요.” 그러면서 박 간사가 불을 켰다.

지리산 로드킬 조사·에너지캠프 등 왕성한 활동

회원들은 이를 위해 에너지 소비가 많은 교통수단은 가급적 자제한다고 한다. 그래서 걷거나 혹은 달린다고. 조금 먼 거리를 가는 데는 자전거를 마련해 뒀단다. 정 힘들면 버스를 이용한다고 한다.

어랏. 만날 약속을 정하려고 전화했을 때 박 대표는 버스 안이라고 하지 않았냐고 따지자, 사실 현실에서 생태운동과 괴리되는 지점이 많다는 게 이들의 설명. 이연하 부대표는 “세제를 줄이기 위해 비누로 머리 감기를 6개월 정도 하다 머리 빗질이 안 될 정도로 머릿결이 뻣뻣해져서 최근엔 그만뒀다”고.

그렇지만 생활에서 생태운동을 실천하고 있는 사례로 김민수 회원은 “친구들과 족발, 통닭 같은 거 시켜먹을 때, 나무젓가락을 아예 쓰지 않는다. 늘 수저를 휴대하는데, 없으면 그냥 손으로 먹는다”는 것을 꼽았다. 이연하 부대표는 “설거지할 때 퐁퐁 같은 세제를 쓰지 않고, 물로 헹구거나 밀가루를 이용해서 씻는다”고.

최근 노력을 기울이는 부분에 대해 물었다. 김민수 회원은 “지렁이를 길렀다. 지렁이한테 지금 먹는 고구마껍질 같은 것을 먹이로 주면 자체적으로 분해시킬 수 있다고 해서 ‘짜파게티 프로젝트(지렁이를 화분에 놓아두면 시커먼 자장면 같이 보인다고 해서 붙인 별칭)’를 진행했다. 그런데, 아직 기르는 방법 면에서 서툴러서 그런지 키우던 4마리가 다 죽어버렸다”고 말했다.

‘가능한 한 걷기’를 실천해 매달 1kg씩 살을 빼고 있다는 박아름 대표, 산이나 들에 핀 꽃, 풀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한다는 이연하 부대표, 매일 집 앞에 있는 비봉산에 올라가 굴참, 갈참, 졸창, 신갈, 떡갈나무 등의 이름을 외운다는 김민수 회원.

“조금 불편하지만, 좀더 부지런해지면 가능한 것들이 참 많아요. 긴 호흡으로 봐야 해요. 생태운동으로 인해 개발을 못한다는 말은 너무 가혹하지 않나요? 세상을 바꾸는 것은 어리석은 자의 우직함이 아닐까요?”

‘흰내’ 회원들은 8월 중순 경 올해 두 번째 로드킬 조사에 나선다. 이들은 매주 정기모임을 하며, 흥에 겨워 생태운동을 해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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