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곳이 불구덩이인 것을….’
불은 살아 움직이고 부산의 침례병원이나 영도대교, 주유소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폭발과 화염은 실사인지 그래픽인지 구분이 안갈 정도로 사실적이다.
하지만 이미 할리우드 영화나 <싸이렌>에서 한바탕 불구경을 해 본 사람들에게 불의 잔치는 식상하다. 오히려 이 불구덩이를 헤치며 벌어지게 될 인간들의 두뇌싸움이 볼거리를 제공해야 한다.
감독은 처음부터 범인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이 범인이 왜 끔찍한 방화를 저지르게 되는지 둘의 추격전이 얼마나 흥미진진할 지가 관건이다.
차승원은 처음으로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제대로 분석한 것 같다. 흰자위를 번뜩이며 죽음의 향연을 벌이는 것은 인상적이다. 하지만 마치 <레옹>의 형사 게리 올드먼을 연상케하는 목놀림이나 죄의식이 없는 듯한 무표정은 이젠 자신만의 독특한 캐릭터를 연출해야 하는 과제를 남겼다.
이에 반해 소방관들은 전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최민수의 카리스마는 여전하지만 아이들을 구하고 처연히 죽음을 맞는 박상면은 작위적인 성격이 짙고, 유지태·정준도 맥이 없다.
오히려 관객을 움츠러들게 하는 것은 엽기 코드다. 송곳으로 자신의 손바닥을 찌르며 웃고 있는 아이나 잔인하게 펼쳐지는 가정폭력의 실상은 눈을 돌리게 한다.
결국 허공에 둥둥 떠있는 진부한 스토리보다는 가정폭력에 시달린 아이들 사진을 한컷 한컷 보여준 것이 극장을 나와 현실에 부딪힐 때 씁쓸함을 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