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기 잘잘~지금이 젤 꼬시제~”

“멸치야 봄에도 가을에도 잽히제, 그래도 살이 통통하고 기름기 잘잘 흘러서 고소한 봄멸치가 최고제.”

마산 어시장 입구부터 봄멸치를 다듬는 할머니들이 눈에 띈다. 비늘이 봄 햇살에 반사돼 반질반질하다. 할머니가 재빠르게 내장을 떼고 대가리를 다듬고 착착 체에 올려놓지만 쌓였다 싶으면 무섭게 팔려나간다.

   
“한 접시에 3000원. 찌개 해먹고 국 끓여 먹으면 입맛 확 당긴다.”

어떻게 먹으면 맛있을까. 젊은 주부들이 많이 물어서 그런가 할머니는 요리 전문가가 다 됐다. “고등어 지져 먹듯 멸치 넣고 신김치 넣고 약한 불에 푹 끓였다가 먹어도 맛있고, 멸치 육수를 쫙 내서 고추장·된장 풀어 끓인 다음에 생멸치 넣고 거기다가 양파·마늘·고추 듬성듬성 넣어서 끓여서 쌈에 싸 먹으면 진짜로 맛있다. 참, 국물에 멸치 젓갈 쪼매 넣으면 비린 맛도 없고 고소하다.”

수온 오르는 4월부터 두달 간 절정

수온이 올라가기 시작하는 4월부터 두 달 간 봄멸치는 절정이다. 멸치 하면 부산 기장멸치를 떠올리기 쉽지만 통영·남해·마산 진동면 남포리 바닷가에서도 멸치가 전성기를 맞고 있다.

“새벽 5시 되면 수협 공판장 앞에 차들이 들어온다 아이가. 빨리 안가면 가져오도 못한다. 멸치잡이 배에서 나온 것들 중에서 대가리 떨어져 나간 놈들은 바로 소금 뿌려지고 비닐포대에 담겨서 젓갈용으로 나가고 대가리·몸통 제대로 붙어있는 놈들이 이쪽으로 온다 아이가.”

생멸치회를 먹으려면 산지에 가야 한다. 멸치회는 살살 녹는 고소한 맛이 그만이지만 멸치라는 놈이 성질이 급해 잡아 올리는 순간 곧바로 죽어버리기 때문에 횟감으로 먹으려면 잡은 즉시 먹어야 한다.

생멸치회, 산지서 잡은 즉시 먹어야

그렇지 않으면 금세 멸치 살이 물컹해지면서 발효를 시작한다.

5월말이나 6월초가 되면 동네마다 생멸치를 나무박스에 담은 트럭들이 골목골목을 누빈다. 겨울 김장때 쓸 멸치젓을 주로 6월에 담그기 때문이다. 비록 멸치는 4월부터 5월까지 전성기를 누리지만 4월에 멸치젓을 담그면 제대로 삭지가 않아 알맹이가 남으며 묵은 맛이 덜해 6월에 담가야 제일 맛있다.

6월에 멸치젓을 장독대에 넣어두면 두 달 정도 지나 푹 삭으면서 국물이 우러나는데 멸치액젓과는 구별되는 진국이다. 집집마다 김치 담글 때 꼭 이 멸치젓 진국을 썼는데, 색깔은 좀 거무튀튀하지만 멸치젓 국물이 제대로 김치에 스며들어 구수한 맛이 감돈다. 생새우를 갈아 국물과 함께 버무려 김장을 하면 시원한 맛이 곁들여져 더욱 맛있다.

겨울 김장 젓갈 6월에 담가야 제맛

멸치젓 국물은 다 따르면 멸치뼈가 소복이 남는데 이를 문종이를 올려놓은 소쿠리에 담아 두면 맑은 국물이 뚝뚝 떨어진다. 이것이 시중에 파는 멸치액젓이다.

젊은 주부들이야 김장을 많이 하지 않는 데다 시중에 나와 있는 맑은 멸치액젓이나 새우젓을 쓰는 경우가 많아 멸치젓을 담그는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요즘에는 차에 멸치를 실어오는 사람들이 알아서 씻어주고 소금도 쳐줘 장독만 준비하면 된다. 멸치젓은 화학조미료에 대한 경각심과 토종 먹거리가 떠오르는 요즘, 아직까지 옛날 정서와 맛이 남아있는 순수 조미료인 셈이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