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로 참담했다. 대한민국 권력 핵심층을 자부하는 자들의 엽기적행각을 확인하는 순간 밀려드는 분노보다 더한 허탈감이란~. 그가 주미대사직에 임명되었을 때도, 수순처럼 부동산잡음이 일었어도 그러려니 했다. 그래, 털어 먼지안나는 사람있겠어? 그런데, 먼지가 나도 너무 많이 난다. 그 먼지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도청내용속 그들은 가히 엽기 그 자체였다. 값비싼 옷 입고, 비싼 식당에 앉아, 고급 음식을 먹으며 하는 대화란 게, 어떡하면 돈으로 나라를, 권력을 맘대로 요리할까 하는 것들이었다. 멋진 승용차에, 근사한 양복을 입고, 남들 눈치챌까 이리저리 눈굴리며 돈가방을 져다 날랐을까. 그 돈인들 개인재산이었을 리 없다. 재주는 밑사람이 넘고 돈은 그들이 요리했으니 더 통탄스럽다. 물론 그들은 능수능란하게 부정한다. 유들유들 웃으면서 눙친다. “여러분은 9년 전 밥먹은 것 기억해요?”

‘워터게이트’ 사건의 교훈

정치권 수사기관 기업 언론 할 것없이 전전긍긍한다. 어떡하면 모면하고 줄여볼까 한다. 도청내용이 검찰마저 불법으로 수집되어 증거능력없다는 말을 흘린다. 대통령도 불법도청행위부분을 강조한다. 중앙일보는 기다렸다는 듯 대통령이 옳다고 사설에서 거든다. 언제부터 그런 사이였나 싶다.

본질을 호도말라. 도청행위보다 그 속의 내용이 문제임을 모른 척 말라. 반드시 명명백백하게 가려라. 외화드라마 <X파일>처럼 흐지부지? 안될 말이다. 홍대사는 큰 여론의 흐름을 지켜보고 또 보더니 결국 사의를 표했다. 그 삶의 잣대는 여론인가. 여론이 누그러지면 은근슬쩍 묻어 지나가고, 여론 따가우면 아픈 척하나. 정말 이러지말자. 하기는 어디 그뿐이랴. 자신이 도청피해자라던, 전직‘대통령’이라는 수식어가 아까운 김영삼씨의 두 얼굴, 기억안난다로 일관하는 이회창을 비롯한 관련자들, 우리만 잘못했냐며 물귀신 사죄하는 중앙일보, 회사를 위해 그랬다며 알맹이없는 사과해놓고 이건희씨 안위가 더 걱정인 삼성 등등. 아, 각설하자. 이 더운 여름 화병난다. 그러나 한가지만은 꼭 짚고 넘어가자. 언론사 사주나 되는 사람이, 돈가방을 스스로 알아서 져다나르겠다고 한 사실, 이건 해도해도 너무했다.

그래선가. 불법도청 엽기스토리를 들었을 때, 반사적으로 <워터게이트>사건이 떠올랐던 건. 워터게이트가 무엇이던가. 닉슨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린 워싱턴 포스트의 세기적 특종, 신출내기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기자의 기자정신 등이 떠오르는, 언론인의 정도를 깨우치는 사건이다. 그 중에도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편집국장 벤 브래들리의 용기와 사주 캐서린 그레이엄의 결단력이다. 캐서린과 홍석현을 대비하는 건 그런 이유다. 46세에 남편사망을 계기로 <워싱턴 포스트>경영을 맡은 캐서린. 그는 사주로 있는 동안 워싱턴포스트를 가장 영향력있는 매체로 성장시켰다. (현재의 워싱턴 포스트 논조는 논외로 하자) 캐서린의 가장 큰 덕목은 신뢰다. 취재기자에 대한 전적인 신뢰. 일화도 있다. 충분히 알 수 있었음에도, 그는 워터게이트사건의 제보자가 누군지 알려고 하지않았고, 그 상태로 유명을 달리했다.

어려움인들 왜 없었겠나. 닉슨은 워싱턴 포스트의 TV방송권을 뺏겠다고 위협했고, 재정몰락을 꾀하는 음모 탓에 주가가 폭락하기도 했다. 하지만 캐서린은 어렵지만 언론본연의 임무를 지키는 것이 최선이라고 믿었다. 대조해보라. 어떤 언론사 사주는 불법도청사건을 천하에 알려 대통령이라는 절대권력자도 끌어내려 언론을 반석위에 올려놓고, 또 비슷한 시기(45세) 화려한 이력으로 주목받으며 언론계에 발을 들여논 어떤 언론사 사주는 불법도청내용속의 당사자가 되어 자신의 옷을 벗는 것은 물론 총체적인 언론망신에 세계적으로 나라망신까지 시켰으니.

끊어지지 않는 권언유착 고리

우리나라의 현실과 미국이 다르지않냐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역사가, 물적 토대가 다르다고? 두말 하면 입아프다. 하지만 적어도 알아서 자본에 기고, 그도 모자라, 언론 스스로 권력의 일선에 서기 위해 별의별 짓을 다하는 작태는 더 이상 용납되어선 안된다. 무슨‘한 여름밤의 꿈’같은 소리냐고? 현실을 직시하라고? 친일청산도 안되었고, 천민자본주의는 판치며, 정신적 괴리현상이 심각한 대한민국과 선진국에 어찌 견주냐고? 그렇다면 묻자. 왜 그리 달라야 하는데? 미국은 일등국이고 우리는 하등국이라서? 그건 누가 만드는데? 지레 포기하는 당신부터 주인정신은 팽개치고 스스로 굴종의 삶을 사는 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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